가상 인물 창조 1인 2역 활동…사후에도 살아있는 ‘분신’ 너는 누구냐
1970년대 전설적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
그는 1975년 SNL을 통해 각광 받았고 1978~83년에 <택시>라는 TV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텔레비전 이외에도 클럽이나 극장 무대의 투어 코미디를 통해 수많은 쇼를 선보였는데, 무례하면서도 기발한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토크쇼 게스트로도 유명했는데 특히 데이비드 레터맨의 심야 쇼 단골로 유명했다. 쇼가 아닌 실제 프로레슬러로도 활동했으니, 카우프먼의 오지랖은 상상 이상의 영역이었다.
가장 독특한 건 또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는 분장을 통해 토니 클리프튼이라는 캐릭터로 변신해 활동했는데, 대중은 한동안 그가 앤디 카우프먼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실제 자신의 모습과,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통해 두 사람 엔터테이너로서 사람들과 만났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병 때문이었다. 1983년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그는 거친 기침을 쏟아낸다. 가족들이 걱정하자 카우프먼은, 몇 달 동안 기침이 이어지긴 했는데 의사는 별 문제 없다고 했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LA로 돌아온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정밀 검사를 받는데 이때 그가 폐암이며, ‘대세포암’ 혹은 ‘수질암종’이라는 매우 희귀한 형태의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그의 암 투병 생활이 시작되는데 일시적인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겐 자연 요법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고 과일이나 채소를 통한 식이요법으로 암을 다스리려 한다.
그가 대중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1984년, 자신이 출연한 영화 <블래시와 나의 아침 식사>(My Breakfast With Blassie) 시사회장이었다. 심하게 야위고 삭발한 모습의 카우프먼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당시 그는 폐에서 시작된 암 세포 증식이 뇌까지 퍼진, 기적을 바랄 수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고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심령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필리핀 심령술사 준 라보. 희귀암을 앓던 앤디 카우프먼은 준 라보에게 마지막 삶의 희망을 걸었지만 그의 치료술은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당시 필리핀의 바기오 지역에서 활동하던 준 라보는 이른바 ‘심령 시술’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시술은 믿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피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암 세포를 빼내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피부엔 그 어떤 상처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의 마지막에 온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악용한,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이었다. 그는 손 안쪽에 짐승의 내장 같은 것을 몰래 숨기고, 짐승 피를 흘리면서 마치 피부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쇼를 벌인 후, 손에서 몰래 꺼낸 내장이 암덩어리라고 사람들을 속였다. 영화 <맨 온 더 문>엔 준 라보의 이런 사기극에 카우프먼이 실망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준 라보의 시술은 1980년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가수 김수희가 준 라보에 의해 유방암을 완치했다는 뉴스가 언론을 도배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돌아 수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의 바기오로 찾아갔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말 김수희는 준 라보에 의해 병을 고쳤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수희는 암에 걸린 적이 없었다. 당시 그는 가정사를 비롯한 복잡한 문제로 필리핀 지역에서 쉬며 재충전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 매체가 그를 암 환자로 만들면서 소설을 써댔고,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자 계속 루머가 확장된 것이었다.
앤디 카우프먼의 생존 논란은 LA 검시소에서 다시 한 번 사망 진단서를 발급하며 일단락됐다.
한편 사람들은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카우프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우프먼은 살아 있으며, 죽음마저 그의 쇼라고 생각했던 것. 게다가 카우프먼의 또 하나의 자아였던 토니 클리프튼은 1990년대까지 이따금씩 활동했다. 그의 30주기가 가까워오자 그의 생존설은 더욱 가속되었는데, 자신이 카우프먼의 딸이라는 어느 배우가 나타나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짐 캐리는 카우프먼의 추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까지 토니 클리프튼 캐릭터로 활동하는 사람은 매우 흡사하게 분장한 밥 즈무다라는 코미디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즈무다는 카우프먼 사망 당시 애인이었던 린 마굴리스라는 여성과 함께 <앤디 카우프먼: 마침내 진실>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카우프먼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사망 30년을 맞이해 2014년에 다시 나타날 거라고 얘기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카우프먼 라이브>라는 다큐멘터리까지 등장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는 걸 판단한 LA 검시소에선 다시 한 번 카우프먼의 사망 진단서를 발급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