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 ‘개명효과’ 뒤 롯데 개명 바람…“병원 신세 그만” 안병원 개명 신청했지만 불허
손아섭은 2009년 1월 법원에서 정식으로 개명 허가를 받았다. 주민등록부터 KBO 선수 등록명, 유니폼 이름까지 모두 손광민에서 손아섭으로 바꿨다. 손아섭의 어머니가 작명소에서 직접 받아 온 이름이다. “아섭이라는 이름을 쓰면 부상 없이 야구선수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손아섭도 개명 뒤 의욕을 불태웠다. “야구를 잘하려고 이름까지 바꿨는데 못하면 안 되지 않나. 더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 이후 성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이제 손아섭은 KBO 리그 개명선수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 야구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개명 효과’를 본 인물들을 꼽을 때마다 손아섭의 이름을 빼놓지 않을 정도다.
손아섭은 ‘개명’ 뒤 잘 풀린 대표적인 선수다. 연합뉴스
#롯데가 ‘개명 자이언츠’로 불렸던 이유
손아섭의 성공 이후 KBO 리그에는 ‘개명 바람’이 불었다. 특히 손아섭의 소속팀인 롯데 선수들이 줄줄이 개명 대열에 동참했다. 한때 ‘개명 자이언츠’라는 별명이 붙었고, 한 관계자가 “선발 라인업 아홉 명 가운데 여섯 명이 개명 선수였던 적도 있다”고 귀띔했을 정도다. 손아섭이 이름을 받아온 작명소는 특히 롯데 선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손아섭은 2009시즌을 앞두고 이름을 바꿨지만, 개명 첫해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당시 손아섭은 “작명소에서 ‘이름을 바꾼 첫해에는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두 번째 해부터 잘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0년 거짓말처럼 데뷔 후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 선수가 됐다. 타율도 3할을 넘겼다. 이후 그는 롯데 1군 붙박이 멤버로 새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야구에 절박했던 선수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고 용기를 냈다. 박준서(개명 전 박남섭), 박종윤(개명 전 박승종), 문규현(개명 전 문재화), 이우민(개명 전 이승화)처럼 쟁쟁한 선수들이 손아섭이 찾았던 작명소에서 새 이름을 얻었다. 이들 모두 팀에서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거나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해 백업이나 2군 선수로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 이후 모두 1군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유틸리티 내야수였던 박준서는 특히 인기 드라마 <가을동화> 속 남자 주인공과 같은 이름으로 개명해 주위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총 네 차례 수술을 받고 해마다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고생을 했다. 2009시즌에는 한 시즌에 두 번이나 부상으로 1군으로 이탈하게 되자 결국 큰 결심을 했다. 그는 당시 “어릴 때부터 ‘남섭’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집에서 원래 ‘남섭’이 아닌 ‘지민’으로 불렀다”고 털어 놓으면서 “이전부터 아내가 이름을 바꾸라고 권유했고, 장모님과 함께 작명소에 가서 이름 몇 개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그 가운데 아내가 고른 이름이 ‘준서’였다. 그는 개명 후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얻었고, 은퇴 전까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새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문규현. 사진 출처=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1호 개명선수 김바위, 개명에 실패한 안병원
프로야구 역대 첫 개명 선수도 롯데와 인연이 있다. 김바위 전 롯데 전력분석원이다. 롯데 외야수 전준우의 장인이기도 한 김바위 씨의 원래 이름은 김용윤. 1982년 MBC 청룡 시절 같은 팀 주전 포수 김용운의 이름과 너무 비슷해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혼란을 사곤 했다.
결국 이듬해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개명의 진짜 원인은 아니다. 그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충남 부여) 동네 뒷산에 있던 바위처럼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 손자를 ‘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그 이름을 좋아했던 김바위 씨도 프로 첫 시즌이 끝난 뒤 앞으로 선수 생활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예 이름을 바꿨다.
김바위 이후 21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다른 개명 선수는 좀처럼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당시 개명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2005년 대법원에서 “이름을 바꿀 권리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에야 선수들의 개명이 비교적 쉬워졌다.
그 사이 개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안병원 전 넥센 코치는 LG에서 현역으로 뛰던 시절 유독 부상에 많이 시달렸다. 뜻은 전혀 다른 이름이었지만, 자꾸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결국 1999년 ‘성용’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시도했다. 과격한 액션 연기를 해도 절대 다치지 않는 영화배우 성룡처럼 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법원이 “개명 사유가 불충분하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이름도 바꾸고 팀도 바뀐 선수들
이름을 바꾼 직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선수들도 있다. kt 왼손투수 김주원은 2011년 ‘민식’이라는 이름으로 SK에 입단했다. 그러나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지인의 충고를 듣고 2013년 11월 개명했다.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난 11월 22일 kt가 김주원에게 2차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사용했다.
한화 외야수 장민석은 넥센 시절 장기영이라는 이름으로 주목 받았다. 빠른 발을 앞세워 팀의 주요 전력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점점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얼굴에 공을 맞고 중도 귀국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는 그해 말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뜻에서 이름을 ‘민석’으로 바꿨다. 그 후 두산 내야수 윤석민과 트레이드돼 팀을 옮겼다. 당시 ‘장민석’이라는 낯선 이름의 선수가 윤석민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는 소식에 잠시 야구계가 술렁이기도 했다. 장민석은 2015시즌이 끝난 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또 다른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KIA에서 뛰었던 김태영은 두산 시절 김상현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 두산 소속이던 2012년 7월 ‘크게 영화로워진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개명 절차를 마쳤다. 그러나 이듬해까지는 KBO 등록명을 바꾸지 않고 이전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그런데 KBO 등록명 변경 신청을 준비하던 2013년 말 KIA가 2차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다. 자연스럽게 새 팀에서 새 이름으로 출발하게 됐다.
롯데 장시환은 넥센 시절 장효훈이라는 이름을 썼다. 늘 ‘공만 빠르고 제구가 안 되는 유망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4시즌을 앞두고 조용히 개명을 했고, 신생팀 kt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면서 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했다. 2017년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다. 이제 장효훈이라는 이름은 잊힌 지 오래다.
kt 내야수 오태곤은 더 극적인 케이스다. 그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지난 4월 18일 오승택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태곤으로 다시 출발했다. 롯데 동료 손아섭의 새 이름을 지어줬던 바로 그 작명원에서 ‘태곤’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오태곤 역시 1군 데뷔 후 매 시즌 부상에 시달렸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KBO에 새 이름이 등록된 바로 그 날 트레이드 소식이 발표됐다. kt 투수 장시환이 포함된 2대2 트레이드였다. 그렇게 장시환은 롯데로 갔고, 오태곤은 유니폼에 새 이름을 새기자마자 또 다른 새 유니폼을 입게 됐다.
#김세현과 오주원 그리고 다양한 사연들
김세현. 사진 출처=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KIA 김세현은 2015년 9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넥센에서 김영민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시기였다. 시즌을 일찍 마감하고 병마와 싸웠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면서 ‘세현’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그해 그는 팀의 마무리 투수를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구원왕에 올랐다.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 7월 KIA로 트레이드돼 새 소속팀 불펜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다.
넥센 오주원은 오재영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 신인왕까지 차지했던 선수다. 그러나 그 역시 오랜 부상에 시달렸다. 2012년 8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고 1년 후에야 복귀했지만 2015년에는 시즌 개막 직전 고관절 부상을 당해 다시 발목을 잡혔다. 결국 널리 알려진 이름을 바꿨다.
이들 외에도 개명 선수는 많다. SK 전유수(개명 전 전승윤), kt 윤요섭(개명 전 윤상균), LG 진해수(개명 전 진민호)와 김재율(개명 전 김남석), 삼성 김건한(개명 전 김희걸) 등이 대표적이다. KIA 고장혁(개명 전 고영우), NC 문수호(개명 전 문현정)와 윤호솔(개명 전 윤형배), 넥센 김건태(개명 전 김정훈) 등도 있다.
두산 박건우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에 이름을 바꾼 케이스다. 고교 2학년 때인 2007년 박승재라는 이름 대신 ‘건우’로 개명했다. 한화 강경학도 프로 입단 직전인 고3 때 강시학에서 강경학으로 새 출발했다. 한화 장민재는 2014년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면서 이름 마지막 글자를 ‘제’에서 ‘재’로 바꿨다. 워낙 발음이 비슷해 개명 사실을 잘 모르는 팬들도 많다. 한화 심수창은 2013시즌이 끝난 뒤 한글은 그대로 놔두고 ‘창’의 한자만 ‘밝을 창(昶)’에서 ‘창성할 창(昌)’으로 교체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 ‘스즈키’ 대신 ‘이치로’를 쓰는 사연 스즈키 이치로(44)는 아시아가 낳은 최고의 야구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넘어 메이저리그에서도 특급 선수로 활약하며 숱한 역사를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13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단 30명만 해낸 빅리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훗날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는 다른 일본인 선수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인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은 한자로 된 성과 이름을 등록명으로 사용하지만, 이치로는 성(姓)을 빼고 이름 ‘이치로’를 가타카나로 표기해 사용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도 다르지 않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이름을 선수 등록명으로 사용한 선수다. 유니폼 뒤에 ‘스즈키’가 아닌 ‘이치로’를 영문으로 새기고 뛴다. 
스즈키 이치로. 사진 출처=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페이스북 사연이 있다. 이치로는 1991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오릭스에 입단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한자 표기된 ‘스즈키(鈴木)’라는 이름을 썼다. 그해 2군에서 타격왕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2군 올스타전 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그러나 좀처럼 1군에 올라가지 못했다. 1군 코칭스태프가 이치로의 변칙 타법을 못 미더워했기 때문이다. 대신 1994년 오릭스 감독으로 부임한 오기 아키라가 단번에 이치로의 천재적인 타격 재능을 알아봤다. 곧바로 이치로를 1군으로 불러올리면서 등록 이름을 스즈키 이치로에서 가타카나 ‘이치로(イチロー)’로 바꾸게 했다. 스즈키라는 성은 일본에서 한국의 김 씨와 마찬가지로 흔한 성이다. 오기 감독은 “앞으로 엄청난 스타가 될 선수를 이렇게 흔한 이름으로 각인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치로는 그해 단숨에 오릭스 1번 타자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인 69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200안타도 달성했다. 일본 최다안타 초대 타이틀 홀더가 바로 이치로다. 그해 타율은 무려 0.385에 달했다. ‘이치로 신화’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것이다. 스즈키라는 이름으로 2군을 전전하던 원석이 이치로라는 이름을 달고 다이아몬드로 진화했다. 엄밀히 말해 ‘개명’은 아니지만, 유일무이한 등록명을 쓰기 시작하면서 리그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로 올라선 것이다. 이치로가 엄청난 성공 가도를 달리자 이듬해 무려 11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등록명 교체를 신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치로는 신화적인 존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있다. NC의 장수 외국인 투수 에릭 해커는 한국에서의 첫 2년간 ‘에릭’이라는 이름을 유니폼 뒤에 달았다. 그러나 2015년부터 스스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싶다”며 구단에 자신의 성인 ‘해커’로 재등록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는 대성공. 수준급 외국인 투수였던 해커는 이후 NC의 굳건한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