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대타가 끝내기 안타 ‘송회장’(진우)이 처음이야~
김강률은 8월 22일 인천 SK전에서 5-6으로 뒤진 8회말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어 팀이 9-6 역전에 성공한 9회초 2사 1·2루에서는 마운드가 아닌 타석에 들어섰다. 선수 교체 과정에서 김강률이 지명타자 자리에 들어가면서 지명타자 포지션이 소멸되고, 투수 포지션이 9명의 야수 가운데 하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산의 9회초 공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김강률 타순까지 차례가 오고 말았다. 야수를 많이 소진한 두산은 대타 교체 없이 김강률을 타자로 내보내는 모험을 선택했다. 강속구 투수 김강률은 그렇게 프로 데뷔 10년 만에 첫 타석에 나섰다.
# ‘률타니’ 김강률의 적시타 후일담
결과는 최고였다. 김강률은 볼 3개를 골라낸 뒤 3-0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4구째에 시원한 헛스윙을 했다. 그러나 곧바로 5구째에 안정된 타격폼을 뽐내며 SK 투수 백인식을 상대로 우중간 적시타를 때려냈다. 2루 주자 박세혁이 홈을 밟으면서 스코어는 10-6. 사실상 승리를 확정하는 쐐기 타점이었다. 두산 더그아웃의 선수들과 관중석의 팬들은 동점타와 역전타가 나올 때보다 더 큰 환호와 웃음을 터트렸다. 9회말 소방수 이용찬이 등판해 승리를 지켜내면서 이 경기는 김강률에게 시즌 네 번째 승리와 첫 타점을 동시에 안겼다. 동시에 김강률은 ‘률타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됐다. 투타를 겸업하는 일본인 괴물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성과 김강률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합친 신조어다.
타석에 선 김강률. SPOTV 중계 화면 캡처.
후일담도 풍성했다. 김강률은 이날 타자로 변신하면서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의 헬멧을 쓰고 민병헌의 각종 보호 장비를 착용한 뒤 류지혁의 배트를 빌려 들었다. 세 선수는 서로 김강률에게 “나의 기를 받아 안타를 쳤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김강률이 중학생 시절 이후 처음 타석에 서는 터라 주변 반응도 뜨거웠다. 경기 후 지인들의 연락이 쏟아진 것은 물론, 다음 날 야구장에서도 여러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아냈을 때보다 더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더 재미있는 것은 경기 후 동료들에게 예기치 못한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있다. 김강률이 안타를 치지 않고 아웃됐다면, 두산은 9-6으로 3점 리드를 유지한 채 9회말을 시작했을 터다. 그렇다면 그때 마운드에 오른 이용찬에게 세이브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김강률이 점수를 하나 추가하면서 세이브 상황이 눈앞에서 날아가 버렸다. 김강률은 “선수들이 ‘나 때문에 용찬이가 세이브 하나를 날렸다’면서 ‘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다’라고 난리가 났다”고 껄껄 웃어 보였다.
# 송진우·선동열·최동원·한용덕, 타석에서도 명불허전
‘투수의 적시타’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같은 이유로 더 큰 화제가 되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역대 유일한 200승 투수인 송진우는 타석에서도 엄청난 기록 하나를 남겼다. 웬만한 타자들도 현역 생활 내내 하나 치기가 어렵다는 대타 끝내기 안타다.
송진우는 2001년 6월 3일 청주 LG전에 대타로 출전했다. 심지어 7-7로 맞선 9회 1사 2·3루 상황이었다.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이광환 감독은 절호의 끝내기 기회에서 용병 투수 브라이언 워렌의 타석이 돌아오자 동국대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했던 송진우를 대타로 내보냈다. 송진우는 LG 신윤호의 공 2개에 연거푸 헛스윙한 뒤 3구째를 반사적으로 때려 1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끝내기 우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끝내기 안타를 친 투수는 KBO 리그 역사에서 송진우가 유일하다. 특히 송진우에게 안타를 내준 신윤호가 그해 다승왕에 오른 특급 투수였다는 점에서 더 놀라운 결과였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도 프로에서 안타를 친 경험이 있다. 해태 시절이던 1988년 7월 21일 광주 빙그레전에서 1-1로 맞선 9회말 2사 1루서 타석에 등장해 빙그레 투수 한용덕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쳤다.
다만 데뷔 첫 안타의 기쁨이 오래 가지 않았다. 선동열은 연장 13회초 재일교포 고원부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됐다. 개막 약 4개월 만에 내준 첫 홈런이었다. 선동열은 이후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 뛰면서 종종 타석에 섰다. 1999년에는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KBO 리그에서 때려낸 안타는 그때가 유일했다.
선동열에게 안타를 맞았던 투수 한용덕은 4년 뒤 다른 투수를 상대로 안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1992년 4월 19일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제2경기였다. 빙그레 선발로 등판한 한용덕은 4-3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8회말 1사 2루서 태평양 투수 정명원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때려 2루주자 이강돈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9회초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가 김인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한 점을 더 잃었다. 이 타점을 올리지 못했다면 완투승이 무산될 뻔했던 위기였다. 스스로 올린 타점으로 스스로의 완투승을 일궈낸 드라마였다.
또 다른 전설적 투수인 고(故) 최동원은 아예 1승과 결승타를 동시에 기록하는 기쁨도 맛봤다. 롯데에서 뛰던 1984년 8월 16일 구덕 MBC전에서 1-1 동점이던 8회말 1사 만루서 유종겸을 상대로 2타점 적시 2루타를 터트려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현역 시절의 유일한 타석에서 천재 투수다운 명장면을 남기고 떠났다.
# 승리와 세이브는 기본? 타점까지 챙겨간 투수들
피칭은 물론 타격으로도 존재감을 알렸던 투수들은 최동원, 선동열, 송진우, 한용덕 같은 레전드들 외에도 많다. OB 윤석환은 1985년 6월 9일 삼성 권영호를 상대로 9회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렸다. KIA 임창용도 해태 시절이던 1998년 4월 27일 잠실 OB전에서 9회 상대 마무리 투수 진필중을 상대로 펜스를 직접 맞히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작렬했다. 임창용의 이 2루타는 지금까지 KBO 리그 투수들이 친 안타 가운데 가장 홈런에 가까웠던 타구로 남아 있다.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윤석환과 임창용은 각자 안타를 기록한 경기에서 타점과 함께 세이브까지 챙기는 일거양득에 성공하기도 했다.
타석에 선 정찬헌. SPOTV 중계 화면 캡처.
가득염 역시 SK 시절이던 2008년 5월 27일 광주 KIA전에서 유동훈과 맞대결해 안타를 쳤다. 0-2라는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3구째를 가볍게 밀어 쳐 좌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지난해 말 삼성에서 방출된 조현근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던 2005년 6월 7일 대구 삼성전에서 2타점 적시 3루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투수가 기록한 역대 유일한 3루타로 남아 있다. SK 김광현은 입단 첫 해인 2007년 8월 30일 수원 현대전에서 타석에 섰다가 안타 대신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 타점을 올렸다.
올해 역시 김강률보다 먼저 LG 정찬헌의 타격이 화제에 올랐다. 정찬헌은 7월 21일 대구 삼성전에서 2-2 동점이던 연장 10회말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어 LG가 4-2로 앞선 연장 11회초 2사 만루서 타석에 들어서 이승현을 상대로 승리에 쐐기를 박는 2타점 좌전 적시타를 작렬했다.
# ‘보복성’ 투수 대타 기용이 일으킨 해프닝
그러나 타석에 들어선 투수들이 모두 좋은 기억만 남긴 것은 아니다. 현재 KIA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기태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이던 2012년 9월 12일 잠실 SK전에서 투수를 대타로 기용하는 의문의 용병술을 썼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김 감독은 0-3으로 뒤진 9회 2사 2루 박용택 타석에서 SK가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마운드에 올리자 박용택이 아닌 신인 투수 신동훈을 타석에 세웠다. 대기 타석에 있던 다음 타자 정의윤까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게 했다. 신동훈은 타석에서 배트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채 공 4개를 서서 지켜보고 삼진을 당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김 감독은 이튿날 “한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기분이 언짢았다. 상대 팀이 우리 선수들을 기만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경기를 지켜본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팀의 수장으로서 비판을 받을 각오를 하고 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SK의 투수 기용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신동훈을 내보냈다는 사실을 직접 인정했다.
당시 SK 사령탑이었던 이만수 감독은 9회 한 이닝에만 세 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박희수가 첫 타자 최동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투수를 이재영으로 교체했다. 이어 이재영이 2사 후 다음 타자 정성훈에게 2루타를 내주자 다시 정우람을 기용했다. 승부의 추가 상대 쪽으로 사실상 기울었다고 여겼던 LG 더그아웃이 이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KBO는 경기 이틀 후인 14일 곧바로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김 감독에게 벌금 500만 원을 부과하고 엄중 경고했다. LG 구단도 경고를 받았다. 징계 이유에 대해선 “9회말 경기 중 승리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소홀히 해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스포츠정신을 훼손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징계를 놓고 야구인들 사이에는 “프로 팀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렸으니 당연한 조치”라는 의견과 “선수기용 문제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 KBO가 간섭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대립각을 이루기도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이도류’ 오타니처럼? ‘양다리’ 걸치다 탈 난 선수 몇 있다 니혼햄의 ‘괴물’ 오타니 쇼헤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선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속 160㎞ 강속구를 던지는 3할 타자’라는 설명 한 줄이면 충분하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면서 양쪽에서 모두 괴물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도류’의 정석이다. 데뷔 이후 줄곧 소속팀 니혼햄은 물론 일본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올 시즌에는 이런저런 부상으로 인해 투수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지만, 대신 타석에서 3할을 훌쩍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8월에는 4할 안팎을 오가는 타격감을 뽐내며 진가를 보여줬다. 8월 31일 소프트뱅크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투수 복귀전을 치른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는 더 난리가 났다. 미국과 일본 언론은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들이 삿포로돔에 집결한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투수도 타석에 서는 내셔널리그 소속 구단들로선 그 누구보다 탐이 날 수밖에 없는 인재다.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다저스는 그런 그의 투타 겸업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에서 불펜 피칭을 여러 차례 시켰다. 직구 외에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만한 변화구도 연마하게 했다. 주 포지션은 외야수로 유지하되 경기 후반 투수를 모두 소모했을 때 첫 번째 대안으로 아이브너를 내세우겠다는 복안이었다. 릭 허니컷 다저스 투수코치가 <LA타임스>에 “대단한 팔을 가진 선수다. 투수로서도 가능성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역시 도전은 쉽지 않았다. 투수로 실전에 데뷔하기도 전에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다. 8월 초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고 시즌 아웃됐다. 현지 언론은 “아이브너가 내년 스프링캠프에 외야수로 돌아올 예정”이라며 “투타 겸업 도전을 이어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썼다. 토미존 서저리 이후 투수로서 공을 던지려면 야수로 뛰는 것보다 더 긴 재활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초 아이브너에 앞서 투타 겸업에 도전했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샌디에이고) 역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투구와 타격 가운데 어느 한쪽도 제대로 되지 않아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한국 역시 투타 겸업 선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프로야구 원년에 활약한 해태 김성한이 유일한 모범 사례로 남아 있다. 그는 선수 수가 부족했던 1982년 해태에서 10승과 3할 타율(0.305)을 올렸다. 타자로는 한 시즌 80경기에 모두 출장해 69타점을 쌓아 올리면서 프로야구 초대 타점왕에 등극했다. 홈런 13개와 도루 10개도 대단한 기록이었다. 또 투수로는 26경기에 등판해 10승 5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88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완투 세 번과 완봉승 한 번도 그 안에 포함됐다. 김성한은 두 차례나 승리 투수와 결승타를 동시에 기록하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김성한이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해태는 선발 라인업에서 지명타자 자리를 없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