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보와 수상 소감 소홀히 한 ‘죄’로 캐스팅 번번이 물먹어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감동적 순간 중 하나는 여우조연상 수상 무대였다. 시상자 로빈 윌리엄스가 트로피를 건넨 사람은 모니크. <프레셔스>(2009)에서 악질적인 엄마 역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메리 리 존스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오스카와 골든글로브를 포함해 44개의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었다. 단상에 오른 그녀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해티 맥대니얼에게 영광을 돌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하녀 역으로, 흑인 최초로 오스카를 수상한 맥대니얼처럼 모니크 역시 ‘뚱뚱한 흑인 여배우’로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것. 사람들은 이제 모니크의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1967년에 태어난 모니크 안젤라 임스는 마약 딜러였던 아버지 밑에서 거칠고 힘들게 성장했다. 전화 상담원 일을 하면서 코미디언의 꿈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모니크’라는 이름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도전했고 고생 끝에 시트콤 <파커스>(1999~2004)의 ‘니키 파커’ 캐릭터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코미디 무대와 TV와 영화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인종 차별과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놓는 발언을 했다. 2004년엔 <말라깽이들은 사악하다>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며, 2006년엔 <말라깽이들을 위한 요리는 신뢰할 수 없다>는 요리 책을 내기도 했다. 영화 쪽에서 주목 받았던 첫 작품은 <팻 걸즈>(2006). 빅 사이즈 전문 패션 디자이너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만난 <프레셔스>는 그녀의 인생을 바꾼 작품. 그런데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스카를 수상한 배우에겐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개런티로 수많은 캐릭터가 제안되어야 한다. 그런데 <프레셔스>로 수상한 후 지금까지 7년 동안 모니크가 출연한 영화는 <블랙버드>(2014) <인터우븐>(2014) <올모스트 크리스마스>(2016) 단 세 편이다. 이 중 <블랙버드>와 <인터우븐>은 모니크가 남편 시드니 힉스와 함께 직접 제작한 영화이니, 오스카 이후 할리우드에서 거의 퇴출당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러브콜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최종 결정에서 족족 낙방했을 뿐이다.
무슨 이유였을까? 그 이유에 대해 모니크는 2015년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2014년 말 그녀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프레셔스>의 리 대니얼즈 감독이 건 전화였다. 그는 다짜고짜 모니크에게 “당신 지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냐고 묻자, 대니얼즈 감독은 “당신이 게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모니크가 도대체 무슨 게임이냐고 물었지만, 대니얼즈는 대답이 없었다.
이후 대니얼즈는 모니크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에 대해 “비협조적 태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프레셔스> 홍보 기간에 모니크는, 세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케팅 스케줄에 잘 따르지 않았던 것. 그렇다고 일절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배급사인 라이온스게이트가 만족할 수준은 못 되었다. 특히 오스카 투표를 앞둔 시기는 PR에 전력을 기울이는 시기인데, 상 타는 데 그다지 관심 없었던 모니크는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오스카의 주인이 되었는데, 무대에서도 작은 실수를 했다.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때 업계 관계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 이런 사소한 이유로 그녀는 미움을 샀고, 그 결과 캐스팅에서 번번이 물을 먹었다는 게 대니얼즈 감독의 분석이었다.
이 분석은 설득력 있었다. 대니얼즈 감독은 <프레셔스> 이후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2013)를 연출했는데 주인공의 아내 역할에 모니크를 강력 추천했지만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에서 거절했고 결국 오프라 윈프리가 그 역을 맡게 된 것. 이후 흑인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의 전기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모니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그 내막을 살피던 중 모니크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어떤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할리우드도 의외로 좁은 동네여서, 파티에 가면 웬만한 스튜디오 사람들은 모두 만날 수 있었고, 이런 카르텔 속에서 배우 하나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닌 상황이기 때문. 어느새 “모니크는 까다롭게 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출연 섭외를 하면 남편이 개런티를 턱 없이 높게 부른다”는 ‘카더라 통신’도 일조했다. 그렇게 모니크는 서서히 할리우드에서 멀어졌고, 거의 영화계를 떠나 연극과 TV 쇼와 코미디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인터뷰를 한 후에도 그녀에겐 이렇다 할 영화 제의가 없는 상태. 현재 그녀는 제작하고 주연까지 맡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바로 해티 맥대니얼에 대한 전기 영화. 감독으로는 리 대니얼즈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