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담배 페인트 등 냄새에 알레르기 반응…미국인 12~16% 고통받아
상상도 하기 싫지만 실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일종의 알레르기 증상인 이런 질환을 가리켜 ‘화학물질과민증(MCS)’이라고 한다. 향수, 세탁 세제, 샴푸, 디퓨저, 담배 연기 등 일상용품 속에 함유된 극미량의 화학물질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MCS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 사이에서 더 흔하게 나타나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연구나 임상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 정확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인 격리다. 일상생활은 물론이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CS는 아직까지 의학계에서는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태.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주장도 팽배한 가운데 환자들은 이렇다 할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
일상용품 속의 화학물질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MCS 환자들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실직, 외로움 등 사회적, 심리적 박탈감도 호소하고 있다.
현재 미 LA에 거주하고 있는 니콜 패리시의 직업은 예술가였다. 지난 20년 동안 스크린 프린트 위주의 작품 활동을 해왔던 그녀는 이런 까닭에 늘 페인트, 잉크, 솔번트 등 유독성 화학물질을 가까이 둔 채 생활했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미세하지만 이상한 신체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턱 막히는 증상 등이 그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언제부턴가는 친구가 뿌리고 나온 향수 냄새를 맡을 때마다 눈이 충혈되거나 두통이 생겼고, 급기야 어지럼 증상까지 나타났다. 작업을 할 때면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비닐 잉크와 세척제를 다룰 때마다 목구멍이 막히고, 숨이 가빠졌으며, 급기야 호흡 곤란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던 2003년 어느 날, 그녀는 세탁실에서 세제 뚜껑을 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를 덮친 강력한 세제의 꽃향기 때문이었다. 세제 냄새를 맡자마자 숨이 턱 막히더니 심한 두통이 느껴졌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 당시 세탁실 안에는 세제 냄새 외에는 다른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패리시는 “세탁실에서 정신을 잃은 그날 이후로 모든 인공향과 솔번트, 물감, 플라스틱, 배기 가스 등의 냄새를 맡으면 몸이 아팠다”고 말하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고, 눈이 흐릿해졌으며,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또한 걷기도 힘들었다. 한 번 시작된 두통은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까지 지속됐다. 기절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패리시는 MCS 환자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예일대의 마크 컬렌 교수가 처음 명명한 MCS는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하면서도 희귀한 신체 증상 가운데 하나다. 향수, 세탁 세제, 담배, 살충제, 카페트, 페인트, 건축 자재, 방향제, 배기 가스 등에 노출될 때마다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며,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화학물질마다, 또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때로는 의약품, 음식물, 꽃가루, 곰팡이 등에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로는 관절통, 근육통, 두통, 구토, 피로감, 설사, 호흡 곤란, 현기증, 뇌졸중(발작), 부정맥, 비염 등이 있으며, 심리적으로는 짜증, 집중력 저하, 불안감, 우울증, 수면 장애 등이 있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안면 홍조, 활동항진증, 눈 밑 다크서클, 학습 및 행동 장애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한 번 나타나면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지속되며, 심한 경우에는 몇 달 동안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에 MCS는 새 건축자재에서 배출되는 포름알데히드에 대해 반응하는 새집증후군의 극단적인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대부분 후천적으로 나타나며, 한 번 발병하면 완치가 쉽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경우,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전체 인구의 12~16%가 MCS와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0%는 중년 여성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더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규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MCS 전문의인 마틴 폴은 “이 질병은 호르몬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빈번하게 발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폴 박사는 “MCS 증상이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증거는 MCS 연구가 아니라, 오히려 관련 질병인 만성피로증후군(CFS)의 연구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CFS의 경우, 성숙기 이전에 진단을 받은 경우의 성비율은 거의 일대일이다. 하지만 성숙기 이후에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네 배 더 많다. 이는 호르몬 영향 때문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의 경우, 임신을 하거나 혹은 출산한 후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MCS 환자들의 고통은 비단 신체적인 것뿐만은 아니다. 심리적인 박탈감도 이에 못지 않다. 셰리 파워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MCS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부터 늘 집안에 틀어박힌 채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파워스는 “시장은 남편이 보고, 딸은 화학 세제를 사용하지 않은 채 집안을 청소한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생활한다.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외출을 해서 세제 냄새라도 맡으면 혹시 증상이 나타날까봐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이 이루말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이런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그들만의 ‘안전한 카페’도 있다. 애리조나주 나바호 카운티에는 MCS 환자들 서른 명이 모여 만든 공동 카페가 있다. ‘스노우플레이크’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이 안에서만큼은 모든 냄새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 안에서는 어떤 냄새도, 어떤 향기도, 그리고 어떤 화학물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기나 와이파이도 없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 고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가령 패리시는 MCS 질환의 가장 큰 부작용은 혹독한 외로움과 실직이라고 말했다. 패리시는 “나는 MCS에 의해 감금당했고, 장애를 얻었다”고 말하면서 “가장 큰 고통은 생활비를 벌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혼자여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MCS 환자들이 개탄스러워하는 점은 또 있다. 바로 사회적 인식의 부족이다. 사실 MCS는 아직까지 세계보건기구(WHO)나 미의사협회로부터 공식적인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이따금씩 독극물학 논문에서 희귀 증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MCS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환자들에게는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MCS를 가리켜 ‘논란이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여기에 덧붙여 ‘심리적’으로 ‘모호한’ 증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질적인 질병이 아니라 정신적 혹은 심리적인 요인에서 기인하는 심인성 질병이라는 것이다.
심인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MCS로 나타나는 증상을 ‘소마토포름’이라고 일축한다. ‘소마토포름’이란 정신적인 원인으로 나타나는 신체 증상을 말한다. 가령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혹은 심리적인 거부감 때문에 반응하는 것일 뿐 신체 이상 징후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994년 한 논문에서는 이런 주장도 제기됐었다. “MCS환자들은 ‘현저하게 비정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때문에 히스테리 환자나 우울증 환자와 같은 ‘정신신경증 환자’다”라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사회적인 지원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공공장소나 직장에서 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이나 서비스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지원 단체나 자선 단체도 현재 영국과 미국에 각각 한 곳씩 존재할 뿐이다.
또한 의사들의 늑장 진단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명확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까지 하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패리시의 경우에는 MCS 진단을 받기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했다. 패리시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이로제, 혹은 심기증이라고만 추측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폴 박사는 MCS가 심기증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MCS가 심인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유용하면서도 중요한 유전적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MCS 전문가들은 만일 어느 날 갑자기 락스 냄새가 나는 수영장이나 바닥 청소를 막 끝낸 마트 복도를 걸을 때나, 혹은 향수를 뿌린 사람을 만나거나, 공공장소에서 담배 냄새를 맡을 때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볼 것을 권했다. 다만 MCS 진단을 받더라도 이렇다 할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공포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