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실형 불가피…2심서 반전 노릴 듯”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또한 신 회장의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징역 7년에 벌금 2200억 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에게도 징역 7년에 벌금 1200억 원이 구형됐다. 지난 1일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도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 원을 구형하면서 총수 일가 전원이 징역형을 구형받았고 초고액 벌금이 떨어졌다.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도 있는 상황이 임박한 셈이다.
여기에 황각규 경영혁신실장과 채정병 전 롯데카드 대표,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도 각각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총수 일가를 넘어 가신그룹까지 전원 중형을 선고 받을 수 있는 처지다. 검찰은 “총수 일가 비리 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다”라고 규정했다.
이번 검찰의 구형 배경에는 부당 급여가 핵심이다. 롯데 총수 일가가 근무하지도 않았는데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가져갔다는 혐의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시하고 신동빈 회장이 실행했다고 봤다. 지난 1일 신 총괄회장에 중형을 구형하면서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범행을 최초로 결심해 지시했다는 점에서 실행 과정을 주도한 신동빈 회장과 함께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은 신 전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 500억 원대 무상 급여를 지급한 것을 두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신영자 이사장과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주면서 부실화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타 계열사를 동원하면서 1300억 원대 손해를 입혀 특경법상 배임에 해당하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2006년 차명 보유하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6.2%를 서 씨 모녀와 신 이사장이 지배하는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에 액면가에 넘겨 증여받은 이들이 706억 원대 증여세 납부를 회피하게 한 혐의도 있다.
롯데 일가는 모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신동빈 회장 변호인은 “기소된 범죄 사실은 10년 전에 일어난 일들로 그동안 국가기관에서 조사받고 처분받아 공개된 사실”이라며 “대부분의 범행도 절대 권한을 가진 신 총괄회장이 직접 지시해서 일어났고 신 회장은 관여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신동주 회장 측도 “급여를 받은 건 신 총괄회장의 지시와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이사장 측도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며 양형에 반영해달라고 호소했다.
일단 롯데 측에서는 ‘재판부의 선고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줄줄이 중형을 선고받자 벌써부터 ‘충격에 빠졌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왜 롯데가 충격에 빠졌다고 하는지 오히려 의문인 시선도 나온다.
서초동 A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호를 누구에게 맡겼는지 모르겠다. 양형 기준대로 나왔을 뿐인데 뭐가 충격이라는지 모르겠다. 만약 나라면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돈을 갚고 나서 선처를 바라거나 억울함을 주장하겠다. 부당이득이 있다고는 소극적으로라도 인정하면서 돈을 왜 돌려놓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충격에 빠졌다는 말도 믿지 못하겠다.”
또 다른 변호사도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을 변호했던 B 변호사는 “어차피 (고령이라) 수감이 힘든 신격호 총괄회장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몰아가는 게 변론 요지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받은 것은 돌려놔야 설득력이 있고, 판사도 깎는 게 가능한데 왜 억울하다만 주장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변호하는데 어차피 1심에서는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서 전략적으로 이런 방법을 썼을 수도 있다. 1심에서는 안 갚다가 2심에 갚아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전략이다”고 주장했다.
롯데 경영비리 사건은 오는 12월 22일 재판부의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판결을 예측해보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서초동 변호사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의 생각을 종합해보면 1심에서는 대부분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두 형제는 최소 3년 이상의 실형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형제의 난’이 터지면서 다른 기업 수사와 달리 형제가 서로 증거를 검찰에 갖다 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 때문에 중형이 구형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다만 초기 고강도 수사로 그룹 총수의 비자금이나 MB정부와 이어졌다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 등 화려했던 재료는 다 빠지고 결국 탈세 하나만 나온 것을 보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수사로 선고된 이번 재판과 별개로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롯데는 가시밭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7년 7월 청와대의 캐비닛 일제 점검에서 제2롯데월드 인허가 내용을 포함한 다량의 이명박 정부 문건이 발견됐다. 최근 이를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한 국회에서는 친문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일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 비리 이야기가 터져나오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취임하자마자 민관합동 회의를 열고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해결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당시 인허가 문제는) 감사원에 의해 감사돼야 하고 검찰에 의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제는 잠잠해질 줄 알았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가 다시 터져나올 수 있게 됐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은 “과거 가족중심경영이나 경영불투명성을 해소하고자 기업공개, 지주회사 전환, 순환출자 해소 등 갖은 노력을 해온 당사자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롯데 관계자는 “재판부의 선고가 아직 남아있어 지켜보는 중이다. 향후 선고가 난 이후 입장을 언급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회사인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검찰 구형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이 어떤 입장을 전한 바 없다. 1심 판결을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