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파일 넘어 문재인 파일까지 보관”…파괴력 있을지는 회의적
11월 15일 오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에 대해 그동안 친이계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불만을 털어놨다. 취재진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뭐 할 게 없어서 가만있는 줄 아느냐” “MB가 입을 열면 문재인도 끝이다” “문재인도 퇴임하면 정치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들 대부분 ‘맞불작전’을 주장했지만 MB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입을 굳게 닫았다. 한 친이계 전직 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MB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에 대해선 특별히 걸릴 게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박근혜 때 다 뒤지지 않았느냐. 또 살아 있는 권력과의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런데 다스와 BBK 등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MB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MB가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길에 정치보복 프레임을 꺼내 든 것도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문재인 파일’ 있긴 한데, 파괴력은 글쎄
정치권 최대 관심사는 MB가 과연 어떤 카드를 꺼내느냐다. 여권에서는 MB 측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기류다. 한 친문 의원은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 (반격을) 할 거였으면 진작 했겠지. 우리 쪽에서도 다 나름대로 사전 조사와 대비를 했을 것 아니냐. MB와 그를 따르는 친이계라는 정치세력은 지금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과 사정당국에선 MB 측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을 폭로할 것으로 추측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북정책,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불거진 노 전 대통령 일가 금품수수 의혹 등이 거론된다. 그동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장해왔던 것들과 비슷한 내용들로 그리 큰 파괴력은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자유한국당은 10월 13일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을 뇌물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MB 측근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의혹들을 공개하겠다며 벼르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파일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사실일까. MB 정권 청와대 민정실에서 근무했던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문재인 파일’은 분명 있다.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 샅샅이 조사해서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 MB 측근 역시 “문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든 후 사돈의 팔촌까지 스크린을 했다. 당시 자료들 중 상당수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문재인 파일’엔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아들 준용 씨 취업 문제를 비롯해 문 대통령 본인과 가족, 친·인척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수임했던 사건들도 정리돼 있다. 그러나 MB 측 내부에선 회의적 반응도 적지 않다. 갖고 있는 파일의 내용들이 현직 대통령과 맞서기엔 질적으로 턱없이 모자란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의 MB 정권 사정당국 관계자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 겨뤘던 박근혜 캠프에서 이 파일을 요구해서 건네주긴 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MB 최측근, 현 정권 사정기관 간부들 접촉
MB 측의 또 다른 고민은 반격을 위한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친이계라는 정치조직은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다. MB 대선 승리 공신 중 하나였던 외곽단체와 팬클럽들 활동도 전무하다. 친박 의원들과 박근혜 팬클럽들이 지금도 목소리를 내며 박 전 대통령을 지원사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때 친이계였던 정두언 전 의원은 11월 14일 한 인터뷰에서 “MB가 무슨 힘이 있겠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태극기집회도 열고 그러잖나. 그런데 국민 중에서 MB를 그렇게 옹호하고 보복이다 나서는 세력이 없다. 참모들 몇 명이 모여 가지고 그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MB 측이 문 대통령을 겨냥한 ‘히든카드’가 있다한들 이를 활용하고 유통시킬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사정당국의 또다른 관계자는 “MB 측이 문 대통령 관련 내용을 직접 폭로해 이슈를 지피는 방법도 있지만 이보다는 언론과 사정기관 등이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MB를 위해 나서줄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일방적인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MB로서는 무엇보다 우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최근 MB 측 인사들이 검찰과 국정원 등 사정기관 간부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들 대부분이 지난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 현 정권 들어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MB 측이 지원사격에 필요한 인력들을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사정기관 내부에서 청와대 주도의 적폐 청산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때라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MB 측근을 만났다는 사정기관 인사는 “MB 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했다. 조심스러웠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밝힐 수 없다”면서도 “자료들을 몇 개 가지고 있다더라.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또한 MB 측은 사정기관 간부들을 상대로 DJ와 노무현 정권 때의 특수 활동비 용처 등과 관련된 내용들도 수소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정치적 해법 원하는 MB, 끝까지 간다는 문재인
일단 MB 측은 정치적 해법을 최우선 시나리오로 세웠다. 바레인 출국 때의 ‘정치보복’ 발언, 연이은 올린 SNS 글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사건을 진보 정권의 핍박으로 규정하고, 보수층 결집을 노린 행보다. 친이계 인사들이 “박근혜에 이어 MB까지, 보수 정권의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할 경우 보수층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흘리고 있는 것도 장외 여론전 성격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적폐청산에 대한 회의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MB가 이를 적절히 활용할 것이다. 안보와 경제 문제를 집중 부각하지 않겠느냐. MB를 비롯해 측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안보 얘기를 꺼내고 있는 장면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MB 측근도 “MB는 폭로전으로 흐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 아니겠느냐. 우리가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전직 대통령을 탈탈 터는 것은 정치 보복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여권에서도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긴 하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적폐 청산의 ‘행동대장’ 격인 검찰에서의 이상기류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강경론이 주를 이룬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에 대한 열망으로 탄생했다. 지난 9년간의 잘못을 바로잡기만 해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적폐청산을 멈추면 지지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중심엔 MB가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