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으려는 자 vs 지키려는 자…누가 웃을까
문무일 검찰총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왼쪽부터)이 지난 12월 28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전 포스터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법무부
분위기는 훈훈했다. 2시간 15분의 러닝 타임 내내 김 장관과 문 총장 등은 진지하게 영화를 관람했다. 특히 경찰 수장인 이 청장은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장면 등이 나올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뒤 문 총장은 “우리가 배워나갈 부분이라 우리 경찰청장과 함께 왔으니 국민 염원을 배우고 깨닫고 가겠다”고 말했고, 이 청장 역시 “잘못된 공권력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 시대에 맞는 인권 가치를 잘 표현하는 경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둘이 올해 다시 만난다면, 이번 ’영화관 데이트‘처럼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될 가능성은 없다. 늦어도 올해 하반기에는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 검찰과 경찰 모두 각각의 개혁위원회를 통해 ‘얻어낼 권한과 내려놓을 권한, 그리고 지킬 권한’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데, 결과에 따라 두 기관 모두 적지 않은 내부 진통이 예상된다.
먼저 ‘수사권’을 뺏으려는 쪽의 입장을 살펴보자. 경찰의 오랜 꿈은 ‘단독 수사 권한 확보’다. 그동안 경찰은 모든 수사에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했다. 특정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무조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했고, 검찰에서 ‘부족하다’고 반려하면 다시 수사를 보완해 검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조였다. 구속 외에도 ‘압수수색 영장’도 검찰에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경찰의 움직임을 검찰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경찰 실무 라인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많았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팀장은 “소환에 응하지 않는 피의자를 며칠 잠복 수사 끝에 체포한 뒤,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더니 검찰에서 ‘연락이 안 됐다고 하고, 도주도 안한다고 하지 않냐’며 돌려보낼 때 힘이 쭉 빠진다”며 “직접 검사들이 와서 우리가 고생하듯 수사를 해봤으면 그렇게는 못 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찰청의 목표는 이런 내부 민원을 감안, 수사 권한을 넓히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경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발표한 권고안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의 밑그림을 먼저 제시했다. 이 안의 핵심은 ’수사는 경찰이 할 테니,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만 담당하라‘는 것이다. 검사의 수사지휘권 및 직접수사권 폐지를 담았다.
‘구속영장 청구권’도 가져오겠다는 심산이다.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규정한 헌법 조항도 개헌 과정에서 삭제하자는 내용을 권고안에 넣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과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검찰과 별도의 독립된 수사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주변 상황은 경찰에 유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국정 핵심과제로 제시했고 수사권 조정 의지도 강하게 피력했다. 국회 역시 올해 6월 말까지 입법권이 부여된 사법개혁특위를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분위기를 몰아가기 위해서일까. 이 청장은 신년사를 통해서도 수사권 조정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민주주의 기본 이념인 권력분립 원리에 따른 분권형 수사구조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검찰은 경찰의 주장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이제 하나씩 논의를 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히지만, 뒤에서는 ‘경찰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을 치는 분위기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는 “일부 수사권 조정은 불가피한 분위기라는 것을 안다”면서도 “경찰도 검찰만큼 잘못한 게 한둘이 아닌데, 혼자 깨끗한 척하면서 수사권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경찰 권고안 가운데 검찰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구속영장 청구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경찰이 올리는 구속영장 신청서를 보면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실하다”며 “뻔히 기각될 걸 알면서도 피의자들 겁을 주려는 건지, 수사 인권적인 측면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경찰이 구속영장 청구권을 달라고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신년다짐회에 참석해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문 총장은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것은 검찰의 기본 사명”이라며 경제범죄에 대해 엄단할 뜻을 밝혔다. 고성준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수사 권한을 그대로 빼서 옮기는 것만으로는 국가 전체 수사 구조를 개혁하기에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인권 친화적 수사 과정이 얼마나 확립될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소극적인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에 적폐로 몰렸으니 권한을 최소한으로 내주는 선에서 막자’는 게 중론이다. 앞선 대검 관계자는 “형사부 검사들의 업무가 과중한 점도 있다”며 “벌금형 수준의 단순 범죄는 우리 검찰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고 넌지시 언급했다. 일부 ‘단순 사건’만 경찰에 넘겨주자는 것. 그는 “음주운전과 같은 단순 사건은 경찰에게 기소권을 주되, 구속이 필요한 특수수사와 강력 사건, 또 전국적 주요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와 기소권을 기존처럼 가지고 가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검경 수사권 70년 해묵은 논쟁 끝나나 “검찰은 한 번도 뺏긴 적 없어” 검경 수사권 조정은 대한민국 건국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논쟁이다. 일제시대 순사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된, 검사의 단독 수사·기소권 유지는 자연스레 경찰의 반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70여 년 전인 1962년 5차 개헌 때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 조항’을 형사소송법과 헌법에 명시하면서부터 법 개정의 필요성까지 첨부됐다. 경찰은 그동안 교통과 절도, 폭력 등 민생범죄를 비롯해 일부 수사권을 법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의 뇌물 수수, 피의자 폭행 등이 논란이 되면서 번번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검찰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른바 ‘검찰 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수사권 조정협의체’와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를 꾸려 검찰의 권한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검찰의 강한 반대 끝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1년에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결됐다. 경찰이 원하던 수준도 아니었지만, 검찰은 또 완강히 반대했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홍만표 당시 대검찰청 기획조정실장 등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하는 끝에 검찰은 권한을 지켜냈다. 그리고 7년여가 지난 2018년, 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법조계는 ‘검찰은 한 번도 경찰에 진 적이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의 가장 큰 허점은 15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며 “그 중 일부 경찰의 부패 범죄는 항상 벌어지고 있고, 그런 부분이 수사권 조정 때 자연스럽게 언론에 터지면 경찰의 권고안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