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량보다 상승률이 중요…평소 검색어 아닌 ‘총선 때 보자’ 네티즌 합심해 1위 올라
이는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하면서 벌어진 ‘사이버 시위’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20만 명 이상이 특정 사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해당 부처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 이 때문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암호화폐 규제 반대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이 부풀었다. 하지만 정작 기획재정부가 “특별히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자 이에 분노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검색어를 통해 의지를 밝힌 셈이다.
# 키워드로 정치 소신 밝히는 네티즌
왜 하필 ‘총선 때 보자’였을까? 이는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긴 것이라 풀이된다. 총선 때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면 권력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는 법안 및 정책 입안 과정에서 특정 정당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암호화폐를 둘러싸고 담당 부처가 명확하고 시의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해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투표를 통해 성난 민심을 증명하겠다는 것을 ‘총선 때 보자’라는 문구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이버 시위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세상이 더욱 확장되고,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과거에는 개개인이 자신의 사회·정치적 소신을 피력하고 싶을 때 광화문, 청와대, 법원 등 상징적인 공간에서 피켓을 드는 등 1인 시위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적인 SNS를 비롯해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모은 뒤 사이버 공간에서 손쉽게 이를 피력할 수 있게 됐다.
네이버 검색어 순위 캡처
이런 사이버 시위의 또 다른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1월 말에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란에 난데없이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이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등장했다. 2월 개막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둔 단어일 텐데 ‘평창’이 각각 ‘평화’와 ‘평양’으로 바뀌었다.
이는 평창올림픽을 개최하며 북한을 적극적으로 보듬고, 여자 하키대표팀을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하는 단계에서 불거졌다. 평창올림픽 직전까지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를 하던 북한을 참가시키기 위해 우리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자 하키대표팀에 북한 선수들을 참여시키면서 그동안 올림픽을 대비해 구슬땀을 흘리던 남한 대표 몇몇이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 위에 설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해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이는 ‘평양올림픽’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졌다.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서 남북 선수들이 공동훈련을 하면서 이런 비판은 더 거세졌다. 지나치게 북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차라리 ‘평양올림픽’으로 하라는 일침이다.
하지만 대승적 차원으로 봤을 때 북한을 끌어안기 위해 어느 정도 유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올림픽이 기본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만큼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을 참가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북한에 명분과 실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견에 동참하는 대중들은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이라 검색하며 ‘평양올림픽’이라는 키워드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 검색을 통한 검색어 시위, 가능한가?
사이버 시위의 주체는 네티즌이다.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특정 검색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검색어 순위가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몇 명이 몇 번 정도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검색어 순위 톱10에 드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검색량’이 아니라 ‘상승률’이다. 절대적인 검색량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해당 키워드가 기존 검색량에 비해 얼마나 많은 상승률을 기록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유재석’이라는 이름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검색량이 많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사안이 발생해 수많은 네티즌이 동시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 상승률이 폭발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1위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총선 때 보자’는 평소 네티즌이 자주 검색하는 문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공식 발표가 없다는 입장 발표 직후 수많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이 문장으로 검색하자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지난해 8월에는 ‘고마워요 문재인’이라는 문구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정상을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그의 지지자들이 동시에 이를 검색했기 때문이다.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문재인’으로만 검색했으면 상승률이 높지 않아 1위가 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으나 ‘고마워요 문재인’은 평소 검색량이 많은 키워드가 아니기 때문에 순위가 급격히 올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수많은 이들이 평소 검색량이 많지 않은 특정 키워드를 동시에 검색한다면 충분히 검색어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의미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