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시기 칼자루 뽑아…수사 결과에 따라 선거판 ‘요동’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에서 시작된 바람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울산과 하남이 대표적인데, 경찰은 현 시장들의 비리를 각각 수사하는 과정에서 눈치를 본다거나, 과도하게 수사를 강행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정치권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결과. 두 지역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경찰이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과 사정당국의 중론이다.
울산부터 짚어보자. 3월 16일 울산경찰청은 울산시청 비서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아파트 건설현장 비리 수사 과정에서 김기현 울산시장의 동생 A 씨가 관여한 혐의가 포착됐기 때문. A 씨가 아파트 시행권을 따주면 30억 원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지난 2014년 건설업자와 용역계약서를 체결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A 씨가 시장 동생이라는 신분으로 시공사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집중 추궁했고, A 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검토 중이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경찰을 ‘미친개’에 비유해 맹비난을 받았다.
문제는 압수수색이 예민한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이 현 시장인 김기현 시장의 전략공천을 확정한 날,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한 것, 자유한국당은 이를 정치공작으로 규정하고,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울산경찰 게이트’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경찰을 “미친개”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모욕을 당한 경찰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은 “심한 모욕감으로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다”고 반박했고, 장제원 의원 사무실 앞에서 경찰이 1인시위를 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장제원 의원은 “경찰을 사랑한다”며 한 발 물러서며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황운하 청장의 ‘위법 행위’ 정황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또 급변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황 청장은 지난해 11월 울산 울주군 울산CC에서 청소년안전추진위원회 회원들과 골프를 쳤는데, 당시 음식값과 그린피 등 25만 원 상당의 황 청장 골프 비용을 다른 회원이 결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황 청장은 “그린피는 내가 내겠다며 차량에서 15만 원을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나머지 차액 부분에 대한 김영란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됐고, 경찰도 황 청장에 대한 감찰에 들어가는 등 ‘울산시청 압수수색’ 사건은 점점 게이트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경찰 수사가 울산시장 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전략공천 당일 압수수색을 하는, 적극적인 수사 의지로 잡음이 있었던 곳이 울산이라면, 하남은 사뭇 다르다. 하남경찰서는 이보다 두 달여 앞서 수사를 시작했지만 후보를 결정지어야 하는 시점까지도 결과를 내놓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하남경찰서가 수사를 시작한 것은 시청 직원의 폭로에서부터였다. 하남시는 지난 1월 산불감시원 30명을 채용했는데, 이를 맡은 주무관은 하남시청 내부 게시판을 통해 “합격시켜야 할 23명의 명단을 상급자로부터 받았으며 이들은 전원 합격됐다”고 폭로했다. 경찰은 1월 30일, 곧바로 시청 공원녹지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수봉 현 하남시장이 채용과정에 개입한 단서를 확보하고 2월 25일, 오 시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오수봉 시장이 직접 13명의 명단이 적힌 쪽지를 비서실장에게 건넸고, 이 쪽지가 해당부서에 전달돼 인사에 반영된 정황을 확인했다.
하지만 하남경찰서는 현직 시장을 처리하는 데 미적거렸다. 압수수색 시점에서부터 두 달, 시장을 소환 조사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오 시장에 대한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확인할 부분이 더 있다”는 게 경찰의 해명이었다. 결국 3월 23일에서야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오수봉 하남시장 등 7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채용 비리에 관여했다는 의혹 때문에 오수봉 현 시장의 공천 가능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던 민주당은 검찰 송치 1주일 전인 3월 16일 오수봉 시장의 선거 참여를 승인했다. 검찰 수사, 더 나아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현직 시장이 선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오 시장의 혐의가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채용 비리는 최근 검찰 안팎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결과가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적 비난이 큰 사안이다. 사건을 건네받은 검찰은 “사건을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는데,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재판까지 넘겨질 경우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자체장은 선거법을 위반했을 시 벌금 100만 원, 그 외 범죄의 경우 금고형 이상의 형이 재판에서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채용 비리의 경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가 되는데, 직권남용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이 가능하다. 재경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채용 비리의 경우 최근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사회적 공분이 큰 사건이라서 공무원의 채용 비리에 대해 벌금을 선고하기는 다소 어려운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오 시장이 민주당 내 경선을 통과해, 연임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당선무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공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가 능력 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검찰은 대통령 선거 등 선거 수사 경험이 많지 않나. 선거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면 미리 조심스럽게 피해가며 수사를 하는 반면, 경찰이 지나치게 원칙적으로 나섰다가 논란을 더 만드는 것 같다”며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수사가 선거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점, 수사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한다는 점은 검찰이 오랜 기간 권력의 옆에 있으면서 배운 노하우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