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로 수강생 울리는 학원가 허위·과장광고 실태 추적...취재 들어가니 서둘려 광고 바꾸기도
H업체의 ‘0원 강의’ 광고. 공식 홈페이지 캡처
2016년 12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거짓·과장·기만 광고로 소비자들을 유인한 C 업체 등 10개 온라인 강의 사이트를 적발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3050만 원을 부과했다.
당시 주요 유명 학원들은 ‘12개월 전 강좌 프리패스’ ‘12개월 무제한 수강’ 등 거짓·과장·기만 광고로 비난을 받았다. 일부 업체는 수강생이 출석을 하면 ‘0원 강의’ ‘100% 현금 환급’이라는 문구로 광고했지만 제세공과금 22%를 차감하고 수강료를 돌려주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일요신문’ 취재 결과, 온라인 강의 업체들은 여전히 허위·과장 광고로 수험생들을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다수 업체들이 시정명령을 받았던 “0원 강의”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는가 하면 과거 적발 당시보다 더 다양한 ‘꼼수’를 쓰고 있었다.
유명 어학원 H 업체는 최근 공식 홈페이지에서 “영어회화, 전 강좌 평생 수강료 0원”, “출석만 해도 수강료 100% 현금 환급” 등의 광고를 하고 있다. 수강생이 수강료를 납부한 뒤 출석 요건을 충족하면, 학원이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광고를 살펴보면, 큰 글씨로 명시된 광고 문구 사이로 ‘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교재비, 태블릿 비용 환급 제외’라는 작은 문구를 볼 수 있다. 또 H 업체 측은 ‘인강학습에 최적화된 태블릿 PC 제공’이라는 광고로 수험생을 현혹하고 있지만 태블릿 PC와 교재비는 수강료 환급에서 제외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강생이 돌려받을 수 있는 수강료는 ‘0원’이 아니다. 환급 가능한 수강료에서 제세공과금, 태블릿 PC, 교재비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수강료 0원’ 광고를 허위·과장 광고로 볼 수 있는 까닭이다.
H 업체의 0원 강의 광고. 사진 중간 부분에 작은 글씨로 ‘제세공과금 본인 부담’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홈페이지 캡처
이뿐만이 아니다. H 업체는 또 다른 홈페이지를 통해 취업 준비생들을 상대로 “대기업 공기업 모든 강좌, 0원 프리패스”라며 “취업은 전략이다. 취업성공 맞춤형 커리큘럼을 0원에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광고하고 있다. 광고 문구 속엔 찾기 힘들 정도의 작은 글씨로 “제세공과금 본인부담” 문구가 적혀있긴 하다.
H 업체는 그동안 이같은 방식으로 수강생에게 불리한 문구는 축소하고 업체에게 유리한 문구는 확대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해왔다. 하지만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사업자는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거짓·과장·기만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H 업체의 광고 방식이 현행법에 위반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H 업체는 과거에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학원이다. 2016년 12월경 H 업체는 처음엔 “0원 강의”로 광고한 뒤 나중에 수강료에서 제세공과금 22%나 결제수수료 3.5%를 차감하고 남은 금액을 돌려줬다. 공정위는 H 업체가 거짓·과장·기만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뛰는’ 공정위 앞에 학원들이 ‘날고’ 있는 것일까. 2016년 당시 제재를 받았는데도 H 업체의 광고는 성행하고 있다. ‘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문구를 작게 표시하는 광고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H 업체가 “0원 강의” “100% 현금 환급” 광고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 안전정보과 관계자는 “위법성에 대한 제재는 신중해야겠지만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기만 광고는 기업이 소비자 선택에 중요한 사실을 축소한 배경에 ‘기만성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학원 수강생에게 불리한 ‘제세공과금’ 문구를 더욱 크고 눈에 띄게 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속을 수도 있다. 깔끔한 광고는 절대 아니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H 업체 측은 “과장 광고는 아니다. 광고를 하면서 제세공과금, 태블릿 PC 비용 등이 수강료 환급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이미 명시했다”며 “홈페이지 하단 유의사항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법무팀에 확인한 결과 법적 문제도 없었다. 광고 문구와 동일한 글자 크기로 명시됐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고 해명했다.
유명 어학원 Y 업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Y 업체도 H 업체와 함께 2016년 12월경 “0원 강의”를 내걸었지만 환급 조건을 충족한 수강생에게 제세공과금을 차감한 수강료를 돌려줬다는 이유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Y 업체도 여전히 ‘0원 강의’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Y 업체는 최근 홈페이지에서 “45일 완성 초단기 환급반을 모집한다”며 “출석 요건을 충족하면 교재 0원, 인터넷강의 0원, 응시료 0원”이라는 내용의 강좌를 개설했다.
Y 업체는 홈페이지 가장 하단에 작은 글씨로 “환급금에는 실 결제 금액을 기준으로 교재 금액을 차감한 나머지 금액에서 22% 제세공과금이 부과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홈페이지 상단에서 “응시료 100% 환급, 교재 총 4종 무료 제공”이라는 광고 문구와 상반된 내용이다.
수강생들이 학원 측이 제시하는 출석 요건을 충족시켜도 100% 환급을 받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일요신문’ 측은 해명을 듣기 위해 Y 업체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 업체의 소방공무원 ‘0원’ 강의 광고(좌), ‘일요신문’ 취재가 시작된 이후 ‘제세공과금’ 부분이 명시됐다(우)
종합교육기업 E 업체도 최근 홈페이지에서 “소방공무원 0원 평생회원반”을 모집하면서 “평생회원반의 압도적 혜택, 합격할 때까지 무제한 수강, 합격 시 수강료 환급”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E 업체는 “합격자에게 제세공과금 22%를 공제하고 수강료를 환급한다”는 내용을 홈페이지 가장 하단에 작은 글씨로 명시하고 있다. ‘0원 강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과장 광고 우려가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E 업체 관계자는 “‘0원 강의’ 부분은 2016년에도 공정위의 지적을 받지 않았다. 다른 업체에 비해 법 테두리 안에서 명확하게 고지해 왔기 때문이다”며 “다만 소방공무원 평생 회원반은 제세공과금 표시가 잘 보이지 않는데 바로 고치겠다”고 설명했다. E 업체 측은 ‘일요신문’ 취재 도중, 홈페이지 상단에 ‘제세공과금 22% 제외’라는 문구를 서둘러 삽입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로 20~30대 취업 준비생들이 학원가의 과장 광고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4년∼2016년) 접수된 ‘조건부 수강료 환급형 인강 상품’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72건이었다. 연령별로 20대는 48.6%(35명), 30대 18.1%(13명), 10대 13.9%(10명) 순이었다. “0원 강의”와 같은 과장 광고가 20~30대 ‘취준생’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공정위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상조호 공정위가 편법을 일삼는 학원들을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학원들이 ‘0원 강의’를 광고하면서 ‘제세공과금’ 부분을 소비자가 알아보기 어렵게 표시하는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다만 시정명령을 내리려면 공정위 내부에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재벌과 학원 등 피해 규모와 사안의 차이 없이 불공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야하는 곳이 공정위인 만큼 학원가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조사 착수가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