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조상우 성폭행 혐의에 이장석 ‘옥중 경영’ 논란…넥센타이어 “내년 연장계약 검토 안해”
넥센 히어로즈 박동원과 조상우가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가운데 넥센 선수들이 23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차라리 사람을 때렸거나 싸움을 했다면 이토록 참담한 심정이 아닐 것이다. 성폭행이라니, 그것도 다른 선수들과 함께 사용하는 숙소로 여자를 불러들였다는 게 말이 되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성폭행 혐의에 연루된 선수의 가족 중 한 사람과 전화 연결이 됐다. 계속 한숨만 내쉬다 어렵게 입을 연 그는 “모든 게 허물어진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오죽할까 싶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모든 걸 참고 뒷바라지했던 가족들로선 아들이 성폭행 혐의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다. 평상시 단 한 번도 의심을 해보지 않을 만큼 착한 사람이었는데 어떤 연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잘 모르겠다는 탄식도 이어졌다.
넥센 히어로즈의 박동원, 조상우는 주전 포수와 마무리 투수의 관계다. 배터리를 이룬 선후배로 그동안 좋은 호흡을 자랑했다.
박동원은 2009년 2차 전체 19순위로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다. 강민호, 양의지 같은 리그 최고의 포수는 아니지만 공수에서 부족함 없이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구성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전 포수 경쟁을 벌이다 2015년부터 넥센의 안방살림을 책임졌다. 조상우는 201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선수였다. 넥센이 계약금으로 2억 5000만 원을 안길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자원이다.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로 최고 구속이 158km/h. 패스트볼의 구위는 국내 투수 가운데 손꼽힌다.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터라 조상우의 일탈은 너무나 뼈아프다.
경기 중 마운드에서 상의 중인 마무리 투수 조상우와 포수 박동원 배터리. 연합뉴스
“그동안 프로야구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승부조작 혐의를 받거나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는 등 공인답지 못한 행동에 비난받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박동원, 조상우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팀의 주전 포수와 마무리 투수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여자를 호텔로 데려왔고 일을 벌였다. 이건 선수단을 우롱하는 처사나 마찬가지다. 선수단을 우습게보지 않고선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없다. 선수단에는 선배들도 있고 주장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안중에 없었기 때문에 여자를 숙소까지 끌고 온 게 아닌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넥센의 한 고참급 선수 B도 박동원, 조상우의 일탈이 선수단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잘못된 행동으로 넥센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 얼굴을 못 보겠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야구선수로 살아가는 데 회의를 느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다. 야구하면서 이토록 팀 분위기가 엉망진창인 적도 처음이다.”
넥센 히어로즈가 잡음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이장석 전 대표의 도덕적 해이도 큰 몫을 차지한다. 사기와 배임·횡령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표는 구치소에서 여전히 구단 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장정석 감독과 이 아무개 전력분석팀장이 사외이사를 겸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회사와 무관한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게 목적인 사외이사 제도에 선수단 감독과 전력분석팀장을 앉힌 건 구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과의 지분 분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이 전 대표가 홍 회장에게 40%의 지분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이 전 대표 측은 투자금 20억 원에 이자 명목의 돈을 얹어 갚겠다는 입장이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최근 이장석 측 변호사가 홍성은 회장의 변호사를 찾았고, 그 자리에서 ‘돈으로’ 변제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이 전 대표의 지분 중 40%를 받겠다는 내용이다. 양측 변호사의 만남은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마무리됐다는 후문이다.
바람 잘 날 없는 히어로즈 사태에 메인 스폰서인 넥센타이어의 입장이 궁금했다. 넥센타이어는 히어로즈 구단의 파행 운영이 계속되자 구단 운영 정상화와 개선 방안을 요구하며 한동안 스폰서비 지급을 중단했다가 재개한 바 있다.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 제고를 위해 히어로즈와 손잡고 메인 스폰서로 나선 넥센타이어로선 일련의 사태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넥센타이어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히어로즈 관련 공식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히어로즈 선수단에 문제가 생긴 건 알지만 그와 관련해 우리가 입장을 표명하진 않을 것이다. 현재로선 스폰서비 중단도 검토하지 않는다. 올해까지 계약된 스폰서비는 지급하겠지만 내년 연장 계획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KBO는 23일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박동원과 조상우가 1군에서 말소되자 이후 두 선수에게 KBO 규약 제152조 제5항에 의거 참가활동정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곧장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서 “아직 정식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명을 알 수 있거나 실명이 거론되는 추측성 보도, 혐의가 확정된 것처럼 나오는 루머나 선정적 표현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서 “KBO리그 참가활동정지 등 제재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사실 확정을 기준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허구연 MBC스포츠해설위원은 “박동원, 조상우 문제를 놓고 선수협이 대중이 아닌 너무 선수 입장에서만 사태를 파악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현재 히어로즈 사태는 KBO리그에서 매우 심각한 일일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가 10개 회원사로 구성된 상황에서 하나의 회원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있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장석 전 대표는 여전히 자신의 지분을 내놓지 않으려고 유상증자에 따른 신주발행을 공고하지 않았나. 홍성은 회장과의 지분 분쟁이 계속 보도되면서 KBO리그 전체 위상은 물론 히어로즈 팬들한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럴 때는 KBO가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현재 이 전 대표에게 직무정지를 내렸지만 그 이상의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리그의 품위를 해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간을 끌지 말고 빨리 수습해야 한다. 정운찬 KBO 총재가 ‘클린 베이스볼’을 천명했는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편 넥센은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안우진의 1군 등록을 발표했다. 안우진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올해 1차지명으로 넥센에 입단했지만 고교시절 후배 폭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3년간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고 구단도 자체 징계 5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동안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했던 안우진은 50경기 출전정지 시점이 지나면서 1군으로 복귀한 셈인데 야구계와 팬들은 박동원, 조상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후배 폭행으로 징계 받은 선수를 1군에 등록시킨 넥센 구단에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