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뒷돈 받고 ‘선수 장사’ 131억대 따로 챙겨…돈 건넨 8개 구단 등 떠밀리듯 자진신고
이 자료를 통해 넥센이 그동안 12건의 트레이드에서 도합 131억 5000만 원을 따로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돈을 받은 쪽도, 준 쪽도 비난 받아 마땅한 모럴 해저드. KBO리그 구단들의 ‘거짓말 운영’이 마침내 실체를 드러냈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 시작은 6억 원이었다
모든 사태는 넥센의 내부 문건 한 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넥센은 지난해 3월 NC에 1군 경험이 많은 투수 강윤구를 주고 유망주 투수 김한별을 데려왔다. 7월에는 KT에 4번 타자 윤석민을 보내고 유망주 투수 정대현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한 눈에도 두 선수의 전력상 무게감이 달랐다. 자연스럽게 당시 ‘현금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넥센 구단은 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오래 전부터 눈여겨 본 유망주를 영입했다”거나 “장차 팀의 주축 선수로 키울 선수다” 등의 설명으로 일관한 것. 하지만 결국 각각 1억 원과 5억 원을 양 구단으로부터 받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공개된 문건에는 ‘선수 트레이드 현금 발생액’ 항목에 포함된 윤석민의 이름 옆에 5억 원이라는 금액이 기재돼 있다. 강윤구의 이름 옆에도 1억 원이 적혀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와 고형욱 현 단장이 트레이드 성사 인센티브로 지급비율 0.5%인 300만 원을 수령했다는 내용이다.
세 구단은 부랴부랴 현금 포함 트레이드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KT 구단은 “2016년 12월부터 트레이드에 대해 협의했고, 현금을 원하는 넥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도 “팀 성적이 최하위로 떨어진 7월에 다시 제안을 받고 결국 수락했다”고 변명했다. 이어 “상호합의 아래 현금이 오간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트레이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NC 구단 역시 “넥센의 요청으로 현금 트레이드를 받아들였다. 물의를 일으켜 야구팬께 죄송하다”고 했다.
넥센 시절 윤석민. 사진=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현금 포함 트레이드는 규약 상 부정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넥센과 양 구단이 KBO에 제출한 선수 양도·양수 협정서에서 현금이 오간 부분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점이다. 불법이 아닌 데도 굳이 편법을 사용했다가 더 거센 철퇴를 맞았다. KBO는 세 구단이 보낸 공문과 경위서를 받아본 뒤 해당 금액 6억 원을 전액 야구발전기금으로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전 트레이드에도 현금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 눈치 싸움이 만든 구단들의 양심 고백
그러자 야구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례 없는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동안 넥센과 트레이드에서 이면 계약으로 현금을 건넨 뒤 그 사실을 숨겨 온 구단이 한둘이 아니라서다.
아니나 다를까. 넥센이 과거에 진행한 일부 트레이드에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넥센이 간판타자 박병호를 영입했던 LG와의 2011년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당시 박병호와 유니폼을 바꿔 입었던 송신영 넥센 코치가 과거 한 대학신문사와 인터뷰에서 “넥센이 당시 박병호와 심수창에 15억 원을 묶어서 받았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황한 LG는 “전임 단장과 운영팀장 시절 일이다”라며 허둥지둥했다.
이어 2010년 넥센이 롯데에 황재균을 보내고 내야수 김민성과 투수 김수화를 데려올 때도 현금 20억 원을 따로 챙겼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2010년은 KBO가 넥센의 현금 트레이드를 금지했던 시기다. 사실로 밝혀지면 파장이 더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박병호.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구단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급기야 10개 구단 단장이 5월 30일 오전 대전에서 급하게 모였다.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했다. 이 자리에서 SK를 제외한 8개 구단이 넥센과 이면계약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진행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동시에 해당 트레이드에 연루된 모든 구단이 KBO에 일괄 신고하기로 뜻을 모았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고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는 게 맞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우리 구단 혼자 뒤집어 쓸 수는 없다”는 눈치작전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 8개 구단이 건넨 ‘뒷돈’ 131억 5000만 원
그렇게 공개된 ‘거짓말 트레이드’의 세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넥센이 2009년 이래 진행한 트레이드 23건 가운데 공시한 내용과 일치하는 트레이드는 절반도 안 되는 11건뿐이다. 나머지 12건은 모두 거짓으로 공시됐다. 넥센을 제외한 8개 구단 가운데 트레이드에서 이면 계약을 하지 않은 구단은 SK가 유일하다. LG·삼성·두산·한화·롯데·KIA·NC·KT까지 8개 구단이 모두 넥센과 남몰래 금전 거래를 했다. 그 가운데 롯데가 총 3건의 트레이드를 통해 가장 많은 41억 원을 ‘뒷돈’으로 지불했다. LG와 NC도 두 차례나 웃돈을 주고 선수를 사왔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현금을 포함시켰던 트레이드 4건도 모두 축소 발표됐다. 히어로즈가 실제 수령한 금액이 공시 금액과 큰 차이가 난다. 2009년 12월 이현승을 두산 금민철과 트레이드할 때는 발표 금액 10억 원의 세 배에 달하는 30억 원을 받았다. LG와 이택근 트레이드 때는 25억 원을 신고한 뒤 13억 원을 더 얹은 38억 원을 받았고, 삼성에 장원삼을 보낼 때는 20억 원보다 15억 원 많은 35억 원을 챙겼다. 한화와의 마일영(발표 3억 원→수령 12억 5000만 원) 트레이드 역시 9억 5000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뿐 아니다. 트레이드 금지령이 발효돼 있던 2010년 황재균과 고원준을 롯데로 보내면서 각각 20억 원과 19억 원을 챙겼고, 2012년 임창민과 차화준을 NC로 보낼 때도 7억 원을 따로 받았다. 2014년 4월에는 은퇴 위기에 놓인 베테랑 투수 김병현을 고향 팀(KIA)으로 보내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망주 투수 김영광과 맞트레이드한다고 발표했지만, 알고보니 이때도 어김없이 뒷돈 5억 원이 히어로즈의 주머니에 꽂혔다.
넥센 시절 채태인. 사진 출처 =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당장 올해 초 마지막으로 성사됐던 프리에이전트(FA) 채태인의 사인 앤 트레이드에도 뒷돈이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넥센은 내부 FA였던 채태인과 1+1년 총액 10억 원에 계약한 뒤 곧바로 롯데로부터 왼손 투수 박성민을 받는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아무리 채태인이 30대 후반 베테랑 야수이고 박성민이 20대 초반 왼손 투수라 해도, 무게 추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우는 거래였다. 넥센은 당시 “얼어붙은 FA 시장에서 채태인의 앞날을 열어 주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롯데는 ‘뒷돈’ 2억 원을 넥센에 지급했다. 사실상 ‘사례금’이나 마찬가지다.
# 투명한 KBO리그는 가능할까
KBO리그 구단들의 이면계약은 사실 오랜 기간 만연한 악습이다. 문서로 명확하게 공개된 적만 없을 뿐,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미 기정사실로 알려져 있다. 트레이드뿐 아니라 국내 선수 FA 계약과 외국인 선수 계약 때도 공개되지 않은 ‘진짜 계약서’들이 수십, 수백 장씩 남몰래 쌓여왔다. 이제는 한 구단이 계약 사항을 정직하게 발표해도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야구 관계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10개 구단이 모두 ‘양치기 소년’이 된 것이다. 고액의 FA 계약이나 석연치 않은 트레이드가 성사되기라도 하면 모두가 “진짜 금액은 얼마인가” 하는 추측부터 한다. 어두운 장막 뒤에서 오간 ‘뒷돈’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넥센이 연관된 ‘뒷돈 트레이드’ 파문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KBO의 전수 조사와 날선 여론에 압박감을 느낀 구단들이 등 떠밀리듯 자진 신고를 했을 뿐,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뒷돈 거래’는 수없이 많다. 이 기회에 이면계약을 뿌리 뽑고 KBO 리그 계약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KBO는 넥센이 진행해온 트레이드의 진실을 발표하면서 “넥센을 포함한 9개 구단은 과거 잘못된 양도·양수 계약에 대해 깊게 뉘우치고 있다”며 “향후 이러한 일들이 절대 재발하지 않도록 전 구단이 노력하기로 다짐한다는 의지를 KBO에 알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회원사를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KBO도 이 같은 사태에 분명히 책임이 있다. 이면계약이 통하지 않는 엄격한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단호하고 엄격한 징계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편법의 무풍지대인 넥센이 손을 내밀자 8개 구단은 원칙을 버리고 눈앞의 유혹에 굴복했다. 그리고 KBO는 그 모습을 방관했다. 넥센발 ‘뒷돈 트레이드’ 사태는 이 모두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KBO리그의 촌극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가성비 갑인 줄 알았더니…넥센 신화의 몰락 2007년 겨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및 M&A 전문기업이 KBO로부터 뜻밖의 제안서를 건네받았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만 41세였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이장석은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를 도입해 구단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기존 7개 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꼭 성공해 보이겠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8년 1월 현대 유니콘스는 공식 해체됐고,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히어로즈’라는 이름의 야구단을 설립했다. 출발과 동시에 부딪친 현실은 예상보다 더 혹독했다.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들의 후원으로 유지돼온 프로야구에서 히어로즈의 등장을 반기는 이는 별로 없었다.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곧 매각될 것”이라는 추측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넥센 히어로즈의 전 구단주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법정 구속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히어로즈에도 ‘봄날’이 있었다. 2010년 넥센타이어라는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를 찾았다. 간판선수들과 맞바꿔온 자원들이 하나둘씩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넥센타이어와 재계약에 성공한 2011시즌 중반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박병호를 데려왔다. FA가 된 이택근을 다시 영입하고, 서건창과 강정호가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성장했다. 도약을 위한 기반이 다져졌다. 2013년엔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늘어난 스타 선수들과 높아진 팀 순위만큼 구단 살림살이가 좋아졌다. 어느덧 가을잔치 단골손님이 됐다. 매년 신인왕 후보를 배출할 만큼 신인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성과도 좋았다. 그렇게 비인기 구단의 설움을 딛고 당초 목표였던 ‘저비용 고효율’을 실현해 나갔다. 이 대표는 ‘머니볼’의 주인공인 빌리 빈 오클랜드 부사장의 이름을 따 ‘빌리장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넥센의 토양은 사실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이장석 대표이사가 남몰래 구단 돈 수십억 원을 횡령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구단 창단 당시 생긴 채무도 팀을 위기에 빠트렸다. 현대 인수 과정에서 KBO 가입금 120억 원이 필요했던 이 대표는 재미교포 사업가인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구단 지분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20억 원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4년 뒤 “단순 대여금이며 주식 양도 계약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돈으로 갚겠다고 나서다 사기 혐의로 고소됐다. 이 대표는 결국 지난 1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2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KBO도 곧바로 이 대표를 프로야구 관련 업무에 한해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구단 관계자가 KBO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한 건 이 대표가 처음이다. 그 후에도 히어로즈의 온갖 편법 행위들이 밝혀졌다. 지난 4월에는 장정석 감독과 이 아무개 전력분석팀장이 구단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사외이사 제도는 회사와 무관한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게 목적이다. 운영팀장 출신인 장 감독과 이 전 팀장이 맡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 사이 메인 스폰서인 넥센타이어가 3월과 4월분 스폰서비 합계 24억 원을 지급 유예하는 경제적 위기도 겪었다. 결국 5월 초 스폰서비 지급 재개를 결정했지만, “프로야구 10구단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못박았다. 넥센은 지금 사면초가다. 구단 창립자가 옥살이를 하는 동안 일부 주축 선수는 원정 숙소에 외부 여성을 끌어 들여 성폭행 혐의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자립형 야구 기업의 성공 사례로 뿌리를 내리는 듯했던 ‘빌리장석’ 신화는 그렇게 각종 편법과 악몽으로 얼룩졌다. 131억 5000만 원의 ‘뒷돈 트레이드’ 파문은 그 하이라이트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