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국민 지지도 없어…김 구속 여부 따라 기간 연장 신청할 듯
‘드루킹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여기엔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구속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왼쪽부터 허익범 특검,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동원 씨(드루킹). 고성준 기자
허익범 특검팀은 지금 갈림길에 놓였다. 하나는 특검 수사 기간 연장, 다른 하나는 수사 종료다. 법원은 이르면 17일 김 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영장이 기각되면 특검팀은 수사를 끝낼 것으로 보이고, 만약 구속될 경우 이를 새로운 동력으로 대통령에게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 연장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은 오는 25일이 종료인데, 이를 연장하기 위해선 이보다 3일 전인 22일 이전에 문 대통령에게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해야 하고, 문 대통령은 이를 25일까지 승인해야 한다.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여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확보한 증거들이다. 수사 종료가 10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팀은 현재 뚜렷한 ‘스모킹건’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특검팀이 의존하던 드루킹이 말을 바꿔 상황이 복잡해진 상황이다. 수사가 시작되던 시점에서 드루킹은 ‘옥중편지’를 통해 킹크랩 시연에 김 지사가 참여했고 그곳에 여러 명이 참관했다고 밝혔지만, 드루킹은 9일 김경수-드루킹 대질심문에서 “독대했다”고 말을 바꿨다.
또한, 드루킹은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지켜본 뒤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에게 100만 원을 주고 피자를 사먹였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이를 번복하거나 횡설수설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특검팀도 김 지사를 두 차례 소환해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파악하려 했으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확보됐다는 정황이 아직은 없다.
결국 수사 초기 드루킹이 던진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특검팀이 이 퍼즐을 맞추기 위해 김 지사를 두 번이나 소환했으나, 명백한 혐의입증은 물론 증거조차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무리한 수사를 진행해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검을 연장하기 위한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이상의 증거도, 정황도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얻어낼 것 없는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세금 낭비밖에 안 된다는 우려다. 지난해 ‘박영수 특검팀(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수사 특검)’에 의해 재판으로 넘겨진 피의자 대부분은 유죄를 선고 받았다. 역대 특검 중 가장 성공한 특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박영수 특검팀도 수사기간 연장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요구했다.
이때 박영수 특검팀이 수사기간 연장을 위해 내세우던 명분은 ‘청와대 압수수색’이었다. 특검팀이 청와대 압수수색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때문에 특검팀은 이를 이유로 황 권한대행에게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황 권한대행 역시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수사기간 연장에 결정권을 쥔 문 대통령의 승인 여부 이전에 허익범 특검팀이 기간 연장을 위해 주장할 명분이 부족하단 것이다.
정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특검팀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국민 여론인데, 이마저도 부족하다. ‘천지일보’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4~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에 따르면 ‘드루킹 특검 연장 여부’에 찬성이 45.0%, 반대가 42.0%로 집계됐다. 두 의견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나타난 것이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2월 15일 ‘박영수 특검팀 수사기간 연장’에 대해 자체조사한 여론조사에선 연장에 찬성하는 응답이 67.5%(매우 찬성 59.7%·찬성하는 편 8.9%)로 반대 의견 26.7%(매우 반대 16.2%·반대하는 편 10.5%)보다 높게 나타났다. 드루킹 특검 연장 여론조사와는 큰 온도차를 보인다.
아울러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선 민주당을 견제하는 야권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마저도 부족하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지도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 또는 논평을 통해 수사기간 연장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정도 수준에서만 그칠 뿐 그 이상의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여부가 불확실하던 시점에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특검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수사기간 연장을 시도했다. 황 권한대행이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할 것이라는 분석이 팽배해지자,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발의된 법안만 3건이며, 참여한 의원은 100여 명이 넘는다. 현 야당의 소극적인 태도와는 비교된다. 때문에 허익범 특검팀은 국민 지지는 물론 야권으로부터의 지원도 부족해 힘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노영희 변호사도 “만약 연장하려면 확실한 정황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는 데에 시간이 부족하니 연장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들이 김경수-드루킹 대질 과정에서 특검팀이 주장하던 부분이 오히려 더 깎여나가고 있다”라며 “‘드루킹이 이렇게 증언했고 김 지사가 부인했으니 이를 맞춰보기 위해 수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라고 하기엔 지금 현실은 오히려 김 지사와 맞아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드루킹에 맞춰서 연장을 요구할 수 없고,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이어 “허익범 특검팀은 지금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연장신청에 대해 고민을 안 하면 포기한 것처럼 비춰질 테고, 기소를 해봤자 증거가 부족하니 기소하면 질 게 뻔하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특검팀이 수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특검을 통해 국민의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기간 연장을 요청해도 대통령은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전 평론가는 “드루킹의 진술이 진실에 부합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특검팀에 대해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면서 “특검이라는 것은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제도가 아니다. 모든 범죄와 관련된 사실을 찾아내서 증거로 범죄자들을 단죄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혐의를) 더 찾기 위해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