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안 ‘친검찰적’ 사실상 수사지휘권 남겨둬…개혁 의지 사라졌나 비판
그 시도는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합의문으로 본격화되는 듯했다. 경찰이 검찰과 분리된 수사 독립체로 거듭날 수 있게끔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도 현실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정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개혁 의지가 한풀 꺾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정부안으로 알려진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당초 계획보다 상당히 친(親)검찰적으로 나오면서, 법조계에서는 “청와대의 검찰 개혁 의지가 없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 사진 제공 = 청와대
청와대가 최근 시끄러웠던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직원 비위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였다. 검찰 출신 수사관 김 아무개 씨 외 다른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주말에 골프 친 정황이 감찰 과정에서 파악된 것. 특히 김 수사관의 경우 경찰에 자신의 지인이 연루된 뇌물사건을 사적으로 캐물었다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로부터 감찰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져 논란은 커졌다.
민정수석실의 논란은 자연스레 조국 수석에게 ‘위기’로 작용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국 수석의 경질을 강하게 촉구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조국 수석을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민정수석’과 비교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라는 내부 단속은 안 하고 자기 정치에 여념이 없는 조국 민정수석을 감싸고 도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행위”라며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수석처럼 만들지 말라”고 ‘우병우 프레임’까지 꺼내들었다.
여당은 ‘사법개혁 필요성’으로 조국 수석 지키기에 나섰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 수석은 사법개혁의 상징적 인물”이라며 “(야당들은) 플랜 A로 조 수석을 사퇴시키거나, 플랜 B로 사법개혁의 칼날을 쥐고 있는 조 수석의 힘 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민정이 중심이 되어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말로, 조 수석에 대한 강한 신뢰와 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 정치 프레임 속 표류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
정치적 논란들 속에 정작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왔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합의문 발표 이후 5개월이 지났지만 진전된 것은 없다. 최근 열린 두 차례 국회 사개특위 검찰·경찰개혁소위원회에서도 지지부진한 논의가 오가는 게 전부였다. 검찰 개혁 의지는 되레 후퇴했다.
청와대와 여권의 조정안으로 알려진 것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백 의원이 낸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종전 지휘·감독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사,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 전반에 걸친 ‘상호협력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 1차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가지는 대신 검찰은 송치 후 수사권, 사법경찰관 수사에 대한 보완수사 및 시정조치 요구권 등 사법통제 권한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에 힘이 쏠린 안이다. 개혁 의지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개정안에서는 경찰의 사건 불송치에 대해 고소인 등 사건관계인이 이의신청을 할 경우에는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도록 해, 검찰의 사건 개입 및 판단 여지를 남겨 놨다.
또 검찰이 영장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했다. 사법경찰관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청구하지 않을 경우, 경찰은 고등검찰청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경찰에 ‘반발의 여지’를 준 게 전부였다. 수사를 지휘하지 않지만, 사실상 지휘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사개특위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표창원·윤일규·박주민·백혜련·송기헌·금태선 의원. 박은숙 기자
백혜련 의원은 “국회 사개특위에서 국민적 총의를 모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 등은 “검찰과 경찰의 이해가 어긋나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눈치를 봐야 해서 안을 못 내놓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고,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검찰의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돼 있다. 자치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여전히 남겨뒀는데, 이는 정부 합의문에 없던 내용“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백 의원 측의 편에 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반영한 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당도 가세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사법개혁 안 하기 명분 찾기 특별위원회로 이름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고 야당 공세에 맞섰다.
# 검찰과 경찰 간 힘겨루기 ‘매 먼저 맞은 검찰’의 승리로 끝나나
검찰과 경찰 간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는 계속됐다. 서로 흠집내기를 시도하며, 청와대와 정치권의 ‘점수따기’를 시도했다.
경찰은 예민한 영장 청구권을 놓고 검찰을 문제 삼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10월 22일 정례 기자간담회를 대신한 서면 답변에서 “우 전 수석 수사 관련 검찰이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4차례 반려하면서 수사상 어려움이 있었다”며 “(검찰의) 영장 반려로 변호사법 이외의 다른 범죄를 밝혀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검찰이 경찰의 ‘검찰 내 의사결정 과정 수사’를 조직적으로 막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검찰은 경찰의 ‘정보 상납’을 문제 삼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경찰의 정치 관여·불법 사찰 의혹관련 ‘영포빌딩 문건’ 수사 과정에서 잇따라 경찰청 정보국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로 ‘누가 더 잘못했냐’를 문제 삼는 것은 청와대 등에 점수를 따기 위한 액션들”이라며 “흐름은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등으로 청와대의 신뢰를 얻어낸 검찰의 판정승으로 분위기가 굳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경찰에 밀린다고? 법원까지 꺾은 역대 최강 검찰 영장 청구와 기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끝내 법원을 꺾어버린(?) 검찰.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지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갑작스런 방식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윤석열 지검장은 곧바로 이뤄진 지난해 7월 인사에서 ‘특수통 후배’들을 중역에 앉혔다. 박찬호 방위산업비리수사부장검사를 ‘공안통’들이 앉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킨 한동훈 부장검사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에 임명했다. 수사 지휘부가 전임기수보다 다섯 기수 아래로 젊어지는 파격 인사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지검장. 이종현 기자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검팀에 파견 나갔던 검사들을 고스란히 중앙지검 요직으로 모은, 윤석열 사단의 결집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국정농단 수사 2라운드(MB)와 국정원 적폐청산 수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또 파격을 선보였다. 올해 인사에서 박찬호 2차장검사와 한동훈 3차장검사를 유임시킨 것. 검찰 내에서는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윤석열 지검장이 두 명의 복심들을 자리에 남기기 위해 움직였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 정도였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는 ‘윤석열 라인’을 질시하기보다는, 인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의 입지를 단단하게 해주는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 차장검사급 기수의 한 검찰 관계자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임명됐을 때 다들 파격이라고 놀랐지만, 나는 윤 지검장이 청와대가 원하는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줄 때 검찰 개혁의 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 청와대에서 하명한 수사(법원 수사)까지 잘하고 있지 않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보이지 않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윤석열 지검장과 그 사단”이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