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는 듯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자리 만들기 위한 명분 쌓기” 지적
# 文 5호 업무지시 지침 속에 물러났던 이영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던 서울중앙지검의 장이었던 이영렬 전 지검장.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된서리를 맞았다. 개혁의 신호탄 같은 이슈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검사 6명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등 법무부 검찰국 검사 3명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법무부 과장 2명에게 각각 현금 100만 원과 9만 5000원 상당의 식사 등 합계 109만 5000원의 금품을 제공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발표 당시의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사진공동취재단
검찰 내에서는 당연했던 문화였다. 격려 차원에서 특수활동비(특활비)를 건네고,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문제 삼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곧장 법무부에 감찰을 지시했다.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의 ‘5호 업무지시’라며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했다. 법무부는 곧장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이영렬 전 지검장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두 사람을 면직 처리했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 내 ‘빅2’로 꼽히는 요직이었다.
# 제동 건 법원 “지나치다” 판결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후배 검사들에게 부당한 격려금을 주고 밥을 사 줬다는 사유로 ‘면직’ 징계를 받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 ‘징계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윤경아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이 전 지검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면직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이 전 지검장의 징계 사유 중 수사를 위해 배정된 특수활동비를 법무부 소속 검사들에게 쓴 점 등을 들어 예산 지침에 맞지 않게 사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금품을 제공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격려 목적으로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 윤석열 지검장 앉히기 위한 빅 픽처? 비판여론 ‘고개’
이 전 지검장이 보직에서 물러난 이후,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 기수나 후배인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검찰국장에는 ‘11년 만에 호남 출신’이라는 청와대의 설명과 함께 박균택 당시 대검 형사부장(현 광주고검장)을 앉혔다.
하지만 법원이 ‘지나친 징계’라고 판단하면서, 무리한 수뇌부 물갈이 반발이 다시 나오고 있다. 한 고위직 출신 검찰 관계자는 “검사 한 명이 큰 사건과 관련된 압수수색만 나가도, 부장검사가 고생했다며 수사관들하고 식사하라며 특활비를 주는 게 당연했던 검찰 내 문화”라며 “모든 검사들이 하는 것을 이 전 지검장만 문제 삼아 징계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던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자리를 만들기 위한 명분이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각종 하명 수사를 주도할 서울중앙지검과 검찰국장을 인사를 통해 가장 먼저 장악해야 하는데 정기 인사 전에 이를 확보하기 위한 억지성 징계에 가까웠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실제 법무부는 지난달 음주운전을 한 검사에 대해 가장 낮은 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렸는데, 음주운전을 하면 최소한 감봉을 받도록 지침을 개정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사회적 여론이 더 나쁜 사건에는 관대한 게 법무부의 징계였다는 얘기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임준선 기자
이대로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 전 지검장은 검찰에 복귀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오’다. 과거 항명 파동으로 면직됐다가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한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의 사례를 보면 향후 조치를 예상할 수 있다. 이 전 지검장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지난 99년 1월말 ‘대전 법조비리’ 사건 처리과정에서 상부로부터 사표제출을 종용받자, 대검 기자실을 찾아가 수뇌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법무부는 ‘근무지 무단이탈’ 등을 이유로 면직 처분을 했고, 심 전 고검장은 징계 부당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심 전 고검장이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면직이 재량권을 넘어선 위법처분’이라며 심 전 고검장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 역시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면직 처분은 과도하다며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무보직 고검장’으로 검찰에 복귀한 심 전 고검장은 기존 고검장 자리에 결원이 발생하자 부산고검장으로 부임했고, 복직 5개월 만에 사법고시 후배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사퇴했다.
특히 이 전 지검장이 복직을 할 경우 어느 곳에 사무실을 놓게 될지를 놓고도 여러 얘기가 오간다. 앞선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전에 서울중앙지검에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복직하게 되면 서울중앙지검이나 고검에 무보직이더라도 사무실을 놔야 하지 않겠냐”며 “심 전 고검장도 그렇게 했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실제 복직 가능성은? 법무부의 항소 가능성 매우 높아
최종적인 복직 여부 판단은 내년 초는 돼야 알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면직 취소 판단은 지난 6일 나왔지만, 판결문이 송달된 것은 지난 19일이다. 판결문 송달 기점으로 2주까지 항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피고인 법무부는 1월 2일 자정까지 항소를 해야 한다. 항소하지 않을 경우 이 전 지검장은 검찰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 대다수는 “법무부가 항소할 것”이라며 ‘복직 확정’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무부가 이대로 항소를 포기할 경우(그럴 경우 면직 취소가 확정된다) 스스로 ‘지나친 판단을 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법원 고위직 관계자는 “법무부가 이대로 항소를 포기할 경우, 이 전 지검장을 억지로 내보내려 했다는 내부 비판이 더 확산될 수 있다”며 “법무부가 징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그림보다는 항소를 해서 끝까지 다투려고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항소하지 않을 확률에 대해 “1%도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특히 이 전 지검장과 함께 면직 처분을 받았던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대한 여론은 사뭇 다른 점도 이 같은 추측에 힘을 보탠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된 탓에, 검찰 내 여론이 싸늘하다. 얼마 전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징역 2년을 처해달라며 징역형을 구형한 상황이다.
이 전 지검장 측 관계자는 “지금 이 전 지검장이 검찰에 복귀한다고 해도 이미 문재인 정부가 검찰 인사를 통해 확실히 장악을 했다”며 “이 전 지검장이 바라는 것은 명예회복이지, 검찰에서 무엇인가를 더 해보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