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법조계 인사들엔 관대, 군 인사들엔 엄격…고무줄 기준·형평성 논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자살 이후, 검찰 내에는 피의자에게 수갑 채우는 기준에 대한 해명이 적지 않다. 특히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일수록 “수갑을 채웠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잘 쓰면, 수사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건 관계자가, 그것도 3성 장군 출신 이재수 전 사령관 자살 소식에 검사들 대부분은 의기소침한 분위기다. 특히 고 변창훈 전 검사의 자살을 떠올리며 “이제 검찰의 몰아붙이기식 수사가 자제될 때도 됐다”는 신중론도 개진되고 있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고성준 기자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한 장군 손에 수갑을 채워 인격을 살해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추모식에 참여한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의 비판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허 전 사령관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현직 군 관계자들은 “이 전 사령관이 세월호 댓글 조작 관련해서 수사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군을 대표하는 장성 중 한 명이었는데 수갑을 채운 것은 이 전 사령관의 삶 전체를 부숴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 전 사령관을 변호했던 석동현 변호사 역시 몇몇 언론을 통해 “검찰이 무신경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자연스레 이 전 사령관을 수갑 채우고, 언론에 노출되게 한 것에 대해 피의자에 대한 ‘모욕주기’라는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 측은 “원칙대로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논란이 불거지자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면 영장심사에 앞서 구인영장이 발부되는데, 이는 구속영장과 똑같은 효력이 있다”며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원칙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 그렇다면 원칙은? 그리고 현실은?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언론사 포토라인에 선 인사 중 수갑을 차고 있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수갑을 차지 않았다.
정치에 약한 검찰이기 때문일까. 실세는 물론, 국민적 비난을 받아도 수갑을 채우지 않는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영장심사를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나 성폭행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갑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법조계 인사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최근 영장심사를 받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수갑을 차지 않은 채 법원에 출석했다.
기업인들에게도 검찰은 너그러웠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지난해와 올해 구속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야 했지만 손이 묶여 있던 피의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수갑은 차지 않았다. 최준필 기자
# “신중하지 못했지만, 효과는 상당”
검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이 신중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고 얘기한다. 특히 피의자가 수갑을 차면서 진술을 하기 시작하는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수사는 우리가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기까지 이뤄지는 밀당이 상당하다”며 “피의자가 우리가 생각했던 진술을 하지 않을 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카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수갑”이라고 설명했다.
수갑을 차는 순간, 자유권이 박탈되는 기분이 드는데 이때 피의자의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선 검사는 “한 번도 검찰 수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또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수갑을 찼을 때 무너지는 정도가 더 크다”며 “달라진 처지를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술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이재수 전 사령관 역시 실패를 모르고 살았던 고위 공직자 아니냐.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진술을 끌어내려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법은 수갑만 있는 게 아니다. 피의자를 기다리게 하거나 피의자를 직함 없이 이름으로만 부르기 것도 방법이다. 또 다른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역시 “피의자가 피의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되레 고압적으로 나올 경우, 직함을 빼고 이름만 부르거나 구속될 수 있다고 엄포를 주기도 한다”며 “피의자를 불러놓고 20~30분씩 기다리게 하는 것도 피의자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고 알려주는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앞선 검사는 “예민한 보고나 접선 등은 진술이 아니면 끌어낼 수 없다”며 “큰 조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조직으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이 필요한데, 수갑이나 구속영장이 가장 큰 변화의 모멘텀이다. 수사 기법 중 하나”라고 첨언했다.
# “군에 엄격한 검찰 태도”
그러면서도 검사들은 ‘군(軍)’에 대해 유독 검찰이 엄격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20년 넘게 검찰에 재직한 한 검찰 고위직 관계자는 “과거 80년대만 해도 군이 검찰을 지휘하지 않았었냐”며 “그 당시 군에 대한 반발 심리가 여전히 심리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군인들 사건에 유독 수갑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같은 맥락 같다”고 풀이했다.
실제 최근 검찰은 유독 군(軍)에게는 엄격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댓글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영장심사를 받은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은 모두 수갑을 찬 채로 언론 앞에 서야 했다.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전직 검찰 관계자 역시 “재계나 법조계, 정치계에는 존중의 의미로 미리 대접도 하고 알게 모르게 예우를 하는데, 군에 대해서는 유독 검찰이 엄격한 것 같다”며 “이재수 전 사령관도 나라의 녹을 먹은 3성 출신 장군인데 이제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군에 대한 예우를 검찰이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전 사령관 자살 이후 검찰 내에서는 “강력범이 아니고 도주의 우려가 없을 경우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1일 열린 대검 월례간부회의에서 “올 한 해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제들이 많았다”면서도 “검찰 스스로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면서 올바르게 소임을 완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에둘러 사안을 언급했다. 대검 측은 “소환조사 절차, 구속 등 강제처분 등을 놓고 인권 침해요소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는데, “압수수색 매뉴얼, 체포·구속수사 준칙 매뉴얼, 포토라인 설치 문제 등을 올 초부터 절차별로 나누어 검토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