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의견 통과 단 한 곳도 없어…‘스튜어드십코드’ 실효성 떨어진다는 지적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야심차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주총 거수기’ 역할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예상보다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전경.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알려질 때만 해도 재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주총에서 반대 의견을 크게 내지 않던 국민연금이 막대한 지분율을 앞세워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했다.
더욱이 이전에는 주총 이후 14일 이내에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개해왔던 국민연금이 올해부터는 지분율 10% 이상이거나 보유 비중이 1% 이상인 기업의 전체 안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한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시키로 하면서 기업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하나의 방안으로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를 시행했다”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그 방법에 대해 논의, 지난 2월 초 계획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기업 사외이사와 감사 등이 많은 현실에서 국민연금이 선의를 가지고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재계는 연기금 결정권을 가진 주체가 기업을 움직일 수 있다는 ‘연금사회주의’를 경계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며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도한 경영 개입이 기업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갑론을박에 비해 결과는 꽤 싱거웠다. 지난 13일 국민연금이 최초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시한 이후 열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들이 원안대로 가결된 것. 국민연금은 지난 14~20일 주총을 개최한 23개 기업 중 11개 기업의 일부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사내·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선임 등 이사회 구성과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관련 건을 집중 견제했다.
국민연금은 주총 전 한미약품의 이동호 전 울산대 의과대학 교수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재선임 안건에 “중요한 거래 관계 등에 있는 법인의 최근 5년 이내 상근 임직원으로 독립성 훼손의 우려로 반대”했으며, 현대위아와 서흥, 농심, 신세계, 현대건설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에 따른 독립성 훼손 우려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 LG하우시스와 현대글로비스, 풍산, 현대위아, 서흥, LG상사의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안건에 대해 “경영 성과에 비추어 과도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아세아와 LG하우시스의 정관 변경 안건에 대해서는 각각 “정당한 사유 없이 집중투표제를 배제한다”, “이사회 의장과 CEO의 직책을 정당한 사유 없이 합칠 수 있게 했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이 안건들은 모두 주총에서 해당 기업의 생각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용국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은 “시작 단계이니만큼 실효성에 대해 온전히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안을 사전 공개하는 것은 실효성 차원을 떠나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며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기업과 다른 주주들에게도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버닝썬 불똥’에 국민연금 엔터주 어떡하나 ‘버닝썬 게이트’의 불똥이 국민연금에도 튀었다. 사건에 다수 연예인과 엔터테인먼트사가 엮이면서 엔터산업 이미지와 주가가 폭락한 탓이다. 국민연금의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7년 말 기준 가수 승리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 지분 1.0%, JYP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었다. 각 평가액 52억 원, 100억 원 규모다. 지난해 2분기 주식 대량보유 내역 공시를 통해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5.08%, JYP엔터테인먼트 지분 3.14%를 보유해 SM엔터테인먼트가 신규 추가되고 JYP 보유 지분이 증가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종목별 투자현황’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YG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각각 6.06%, 8.15% 보유했다.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지난 8일 종가 4만 3250원에서 지난 20일 기준 종가 3만 5900원 급락했다. 다른 엔터주들도 영향을 받았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지난 8일 종가 4만 5300원에서 20일 종가 3만 8900원으로 하락했으며, 문제가 된 ‘몰카’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 소속사인 에프엔씨엔터 주가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엔터주에 투자한 국민연금에 질타가 쏟아졌다. 국민 노후자금을 연예인 리스크가 크게 작용하는 엔터주에 투자해 손해를 봤다는 지적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6조 8780억 원 규모의 국내주식을 다른 운용사에 위탁 운용하는 만큼 직접투자가 아닌 위탁운용사의 투자일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엔터주는 유망한 콘텐츠산업과 한류 수혜 덕에 기관투자자에는 매력적인 투자처여서 당장 보이는 결과만 놓고 지적하기는 어렵다”며 “이번 사건으로 당분간 엔터주에 보수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개별 기업에 대한 운용 정보를 확인해줄 수 없다”며 “논의를 통해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해 밝힐 것”이라고 답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