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승리했다” 범죄 직접 개입 증거 없어…머리와 몸통 사라진 경찰 수사 결과에 비난 여론 증폭
구속 영장 재신청이 현 상황에서 어려운 만큼,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태로 남은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버닝썬 게이트’와 ‘승리 게이트’의 수사는 버닝썬 공동대표 이문호(30) 등 일부 관계자들과 가수 정준영(30), 보이그룹 FT아일랜드 최종훈(29) 등 ‘곁가지’에 불과한 인물만 잡아들이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된 셈이다. ‘버닝썬 게이트’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 107일, 승리의 피의자 전환 후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개시된 지 78일 만의 일이다.
“미소의 의미는?”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승리. 사진=고성준 기자
‘버닝썬 게이트’를 수사해 왔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구속영장신청에 앞서 자신감을 보였다. “범죄 사실이 명확한 부분만 구속영장신청 내용에 포함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었다.
지난 8일 경찰이 신청한 승리의 구속영장에는 성매매, 성매매 알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시됐다. 이 가운데 경찰이 ‘가장 명확한 범죄사실’로 판단한 부분은 성매매 알선이었다. 이미 핵심 관계자들이 시인한 사안인 만큼 이에 대해선 “승부를 걸어볼 만 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관계자가 성매매 알선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후 수사가 진전되면서 승리의 사업 파트너인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공동대표(34) 역시 이를 시인했다. 유 전 대표는 2015년 일본인 사업가를 접대하는 자리에서 승리와 함께 성접대를 했고, 당시 호텔비 역시 승리가 YG엔터테인먼트 법인 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시인한 2015년 일본인 사업가 성 접대 사실을 구속영장 신청 내용에 적시했다. 그 외 다툼의 여지가 있는 필리핀 팔라우 생일파티와 ‘대만 린 사모’ 성 접대 혐의는 제외됐다. “범죄 사실이 명확한 부분만 포함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4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승리. 사진=고성준 기자
그러나 뚜껑을 연 결과는 참담했다. 14일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승리와 유 전 대표의 모든 혐의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했다.
특히 경찰이 가장 자신감을 보였던 성매매 알선에 대해 “혐의 내용 및 소명 정도, 피의자의 관여 범위, 피의자 신문을 포함한 수사 경과, 그동안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증거인멸 등과 같은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피의자의 관여 범위’란 승리가 성매매 알선에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관여’를 했는지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승리의 지시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찰수사 결과는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허점 투성이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승리, 유 전 대표의 버닝썬 자금 총 5억 3000여만 원 횡령 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유리홀딩스 및 버닝썬 법인의 법적 성격, 주주 구성, 자금 인출 경위, 자금 사용처 등에 비춰 형사책임의 유무 및 범위에 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이에 대한 영장 신청의 정당성과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한 방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곁가지들도 일부는 구속되고 일부는 풀려난 판에 ‘헤드’ 역할을 한 승리는 반드시 구속돼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리지 않았나 싶다”라며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버닝썬 게이트’ 폭행 피해자이자 최초 제보자였던 김상교 씨는 클럽내 성추행, 업무방해, 폭행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는 이어 “애초에 기각될 것이라고 내부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구속영장 발부 기준은 혐의의 중대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도 주요 판단 기준인데 얼굴이 다 알려진 승리에겐 그런 우려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한 방 증거’도 없고 시급하게 인신이 구속돼야 할 이유도 없다면 재판부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리의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그를 중심으로 펼쳐진 각종 게이트의 수사는 동력을 잃은 상태다. 특히 승리와 유 전 대표 등 버닝썬 관계자들의 뒤를 봐준 ‘경찰총장’으로 지목돼 왔던 윤 아무개 총경(49)에 대한 유착 의혹 수사도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경찰은 윤 총경이 유 전 대표로부터 골프와 식사 대접을 여러 차례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윤 총경은 또 2016년 7월 승리가 경영에 참여했던 서울 강남의 술집 몽키뮤지엄이 식품위생법 위반 문제로 단속되자, 사건 담당자에게 수사 상황을 묻는 등 관련 내용을 누설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윤 총경에 대한 기소에는 단순히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됐다. 뇌물이나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는 담기지 않았다.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김영란법상 처벌 기준 금액(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 원)을 넘지 않아 혐의 적용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버닝썬과 연예인, 그리고 경찰의 유착관계라는 ‘수사 핫 이슈’는 변죽만 그럴듯하게 울리고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지난 3월 21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사진=이종현 기자
이런 가운데 버닝썬 게이트를 이끌어 냈던 폭행 피해자이자 최초 고발자인 김상교 씨(29)에 대한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업무방해, 폭행, 성추행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성추행은 버닝썬 사건 당시(2018년 11월 24일) 클럽 안에서 여성 손님 3명을 추행한 혐의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성추행을 당한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싸움에 휘말렸던 것이며 성추행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으나 경찰은 “수사 결과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는 말로 일축했다. 김 씨의 당시 동선 및 행동양식, 피해자 진술, CCTV 영상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해 여성 3명에 대한 추행이 있었다는 게 경찰의 결론이다.
버닝썬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어떨까. 김 씨를 직접적으로 폭행한 버닝썬 영업이사 장 아무개 씨 등은 공동상해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으나, 그 외 폭행에 가담한 버닝썬 직원 등 6명은 불기소 의견으로 가닥이 잡혔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1명은 김 씨의 추행을 막기 위해 정당행위를 한 것으로 봤고, 나머지 5명은 폭행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가 문제를 제기한 버닝썬과 역삼지구대 간 유착 의혹 역시 ‘정황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