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제구-구종개발’ 세 가지 키워드 속에 ‘매덕스급 활약’ 해답 있다
2019시즌 ‘완벽한 괴물’로 거듭난 LA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 연합뉴스
[일요신문] 격세지감(隔世之感).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다른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올 시즌 류현진(32·LA 다저스)의 활약을 보면 ‘격세지감’ 그 자체다. 어깨, 팔꿈치 수술과 오른 내전근 부상으로 지난 4년 동안 풀타임 시즌을 보낸 적이 없었던 그가 올 시즌에는 사이영상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MLB.com)로 꼽히고 내셔널리그 올스타전 선발 후보로 지목될 정도로 ‘완벽한 괴물’로 거듭나고 있다. 5월 26일 기준 류현진의 연속 무실점 기록은 32이닝으로 마감됐지만 7승 1패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MLB 전체 1위,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랜더(0.73)에 이어 0.83으로 최상위에 올랐다.
박찬호를 잇는 메이저리그 초특급 투수로 자리매김한 류현진이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요인을 살펴봤다.
#두 차례의 수술과 내전근 부상, 그럼에도…
2015년부터 끊임없는 부상을 겪었던 류현진. 2019시즌 류현진은 김용일 전담 트레이너와 함께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 일요신문DB
잘 알려졌다시피 류현진은 2015년 5월 왼쪽 어깨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다. 어깨 수술을 받고 회복한 선수 중 이전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가 7%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지만 류현진은 개의치 않았다. 재활을 통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어깨 수술보다 더 심적 갈등을 일으켰던 부상은 지난해 5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에 선발 등판했다가 2회 투구 도중 왼쪽 내전근 부상을 입었을 때다. 그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3승무패, 평균자책점 2.12로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상에 모든 과정이 중단되면서 그는 올스타 휴식기 동안 애리조나에 위치한 다저스 훈련장으로 출퇴근하며 재활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당시 류현진은 선수로서의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감에 사로잡혔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나.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다. 그냥 ‘사고’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담담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2018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그가 중요한 시기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부분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는 잦은 부상 이력으로 인해 ‘유리몸’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뒤따랐다. 팔, 어깨 수술은 오랫동안 통증이 있던 부위라 수술받았을 때는 오히려 더는 통증 없이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고 위안 삼았지만 내전근 부상은 처음 경험하는 터라 류현진으로선 복잡한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팔이나 이런 부분은 이전에도 아픈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안 좋아도 곧 괜찮아질 거라는 감 말이다. 허벅지는 아예 예상이 안된다. 지금보다 보폭을 더 넓게 하면서 강하게 투구하고 싶지만 처음 경험하는 부위라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불펜피칭을 소화하고 있다.”
올 시즌에도 류현진은 한 차례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역시 왼쪽 내전근 부위에 통증을 느끼고 4월 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자진 강판한 바 있다. 류현진의 전담 트레이너인 김용일 전 코치는 류현진의 왼쪽 내전근 부상이 일어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류현진의 몸 상태 중 오른쪽 골반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그로 인해 왼쪽 내전근 부위에 자극을 받게 됐고, 그 자극이 쌓이면서 통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4월 10일 부상자명단에 올랐을 때 오른쪽 골반의 유연성을 늘리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 부위가 좋아진다면 왼쪽 내전근에 무리가 덜하기 때문이다. 허벅지 안쪽은 마사지를 통해 근육의 유연성을 높이고 있는데 지금은 상당히 호전됐다.”
#구속보다 제구의 달인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또 다른 별명은 ‘제구의 달인’이다. 연합뉴스
다저스 입단 후 7번째 시즌을 맞이한 류현진은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50㎞인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전체 1위(1.65)에 올라 있다. 빠르지 않은 공으로 마운드를 지배할 수 있는 배경에는 투구의 정확성, 효율성, 그리고 구종의 다양성이 작용한다. 절정의 제구력을 선보이는 류현진을 보고 메이저리그 송재우 해설위원이 제구의 마술사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렉 매덕스(우완)와 톰 글래빈(좌완)을 떠올렸을 정도다.
류현진의 제구는 처음 야구를 배울 때부터 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류현진이 창영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호영 전 코치로부터 투구시 릴리스 포인트를 일정하게 하는 법, 와인드업 후 스트라이드의 폭, 투구판 3루 쪽에서 3분의 1가량 안쪽 지점을 밟고 던질 것을 주문했고, 초등학교 시절과 지금의 투구폼이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류현진의 스승,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전보다 허리를 더 틀고 순간 동작을 빨리하고 공을 더 앞으로 던지면서 제구를 유지한다는 게 놀랍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제구는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야구와 관련해선 지능이 뛰어난 선수라 구대성, 송진우, 정민철 등 뛰어난 선배들을 보며 스스로 터득한 부분이 많았다. 당시 투수코치도 현진이의 투구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류현진은 이미 수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구속보다 제구에 더 신경 쓰고 있음을 밝혔다. 그래서 한번은 기자가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구속을 높이려 하지 않고 제구에 치중하느냐고. 이때 류현진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0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들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 공이 제구가 안 될 경우 전혀 위력적이지 못한 공이 된다. 더욱이 나와 같은 경우에는 어깨와 팔꿈치 수술 이력이 있기 때문에 구속을 올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제구에 집중하는 게 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투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안정된 제구를 보이는 투수다.”
그렇다고 해서 류현진이 구속을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변화구가 효과적으로 들어가려면 패스트볼의 구위가 어느 정도 나와야 하기 때문. 류현진은 “패스트볼 구속이 90~92마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 구속이 나오지 않을 경우 1회부터 고전한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다.
#끊임없는 구종 개발
류현진은 스프링캠프 때 슬라이더 시험은 멈췄지만, 올 시즌 커터의 비중을 높여 타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요신문DB
류현진은 올 시즌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슬라이더를 시험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이 류현진이 이전에 던지지 않던 공을 구사하자 호기심을 발동했고, 결국 류현진은 미국으로 가기 전 오키나와 개인 훈련에서 함께 동행했던 윤석민으로부터 슬라이더 잡는 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미 체인지업, 커터, 커브, 포심,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그가 왜 슬라이더를 배우려 했던 걸까. 그는 “커터와 커브 사이 중간 정도의 공이 필요했다”고 토로했다.
류현진이 슬라이더를 떠올린 배경에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패트릭 코빈의 투구 영상이 한몫했다. 패트릭 코빈은 2018시즌 최고의 슬라이더를 구사한 투수다. 빠른 구속의 투수가 아님에도 보더라인에 걸치는 각이 좋은 공으로 삼진 비율을 높였는데 류현진은 코빈의 투구 영상을 보며 슬라이더를 배울 결심을 굳혔다는 것.
그러나 류현진은 윤석민한테 배운 슬라이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왼손이 작은 편인 그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놓인 공이 손바닥에 밀착되지 않는 바람에 모든 손가락에 힘을 주느라 제구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그의 슬라이더 도전은 스프링캠프 때 멈춰야만 했다. 대신 류현진은 올 시즌 커터의 비중을 늘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 체인지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우타자의 몸쪽을 파고드는 커터가 필요했고, 우타자의 바깥쪽을 타고 들어가는 백도어 커터까지 살아나면서 상대 타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면 사이영상에 오르는 건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7, 8월이 되면 분명 체력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앞으로 체력 조절과 부상만 유의한다면 올 시즌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