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출신 A 씨 운영 야구교실, 식약처 압수수색…일부 유소년 선수 약물 양성 반응
유소년 야구교실에서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최준필 기자
[일요신문] 최근 유소년 야구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졌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교실에서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해당 야구교실을 압수 수색한 결과 스타노조롤 등 스테로이드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야구교실은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더욱 놀라운 건 식약처 수사 결과 일부 유소년 선수들한테서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2019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지명받은 선수들 중 이 야구교실을 거친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성인한테도 금지약물로 꼽히는 스테로이드제가 어떻게 해서 야구 유망주들에게 스며들게 된 걸까. 그 내용을 살펴본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A는 누구?
전직 프로야구 선수 A 씨는 연습생 신분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프로 생활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며 팀을 옮겨 다녔고, 결국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후 웨이버 공시됐지만 다른 팀과 계약을 맺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았다.
이후 A 씨는 서울에 유소년 야구교실을 열었다. 초·중·고교생들은 물론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이 야구교실에서 레슨을 받았다. 야구교실은 의외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전직 프로 투수 출신인 B 씨까지 합류하면서 학부모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유소년 학생들이 스테로이드 약물을 불법 투약했다는 제보가 접수됐고, 식약처가 압수 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야구교실에서는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야구교실 대표 A 씨는 의혹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다. 은퇴 후 근육이 많이 빠지고 통증이 심해져 인터넷으로 대량 구입해서 자신이 복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일부 유소년 선수들한테서 발견된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다. A 씨는 이와 관련해서 선수들이 피부과 약을 처방 받았기 때문에 검출된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식약처는 유소년 선수들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며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야구인들의 반응, “사실이라면 미친 짓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A 씨는 정말 미친 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어린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게 할 수 있나.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너무 황당해서 믿기지 않더라. 물론 고등학생들 중 치료 목적으로 전문의한테 처방받아 약을 복용할 수는 있지만 이번 일은 그게 아니더라. 어린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남용할 경우 키가 크지 않는 등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배웠다. 성인도 1년에 두 번 이상 맞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전 LG 트윈스 투수 출신인 오상민(오상민의 엘리트 야구교실 대표)은 유소년 스테로이드 복용 관련된 소식에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야구교실을 운영하는 관계자로서 A 씨의 행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는 것.
“나도 유소년 야구교실을 운영하지만 야구교실에서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장판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런 상황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건가. 물론 어떤 아이가 그걸 먹고 순간적으로 몸이 좋아졌다면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일시적인 효과를 위해 장래를 망치는 일을 누가 할 수 있겠나. 고교 선수가 레슨 받으러 왔다가 치료 목적으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았다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야구교실을 다닌 유소년 선수들 중 7, 8명이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건 의도적으로 먹게 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오상민 대표는 구입 방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A 씨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인터넷을 통해 대량 구매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걸 인터넷으로 대량 구입했다는 건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들였다는 걸 의미하는 말이다. 만약 그 야구교실 대표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금지약물을 복용시킨 게 사실이라면 야구계 전체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선수 시절, 갑작스레 몸이 불었던 A 씨
A 씨를 잘 알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C 씨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은퇴 후 자리를 잡지 못하는 후배에게 도움을 주려고 야구교실 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했다. 이후 서울에 야구교실 문을 열었고 운영이 잘된다고 들었는데…. 선수 시절 A 씨의 몸에 근육이 붙으면서 갑자기 체형이 커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몸이 커진 줄 알았는데 이번 일을 보니까 당시 상황도 의심이 들더라.”
C 씨는 A 대표가 실제로 야구교실을 찾는 아이들에게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게 했다면 돈 때문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 야구교실만 가면 단기간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소문날 경우 유소년 선수들 부모들은 성적이 나는 곳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야구교실 위치도 좋고, 선수들 근육이 붙고 체력이 좋아지면서 성적까지 상승된다면 수입은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단기간에 큰 수익을 창출하려는 그릇된 생각이 이런 결과를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금지약물 복용도 문제지만 선수들, 부모들의 경각심에도 문제가 있다. 결과 지상주의에 빠진 야구교실 대표, 부모, 그리고 아이들이 총체적으로 수렁에 빠진 거나 다름없다.”
키움 히어로즈 수석 팀닥터이자 배구 국가대표팀 닥터인 이상훈(CM 충무병원) 원장은 이번 사안을 굉장히 심각한 일로 받아들였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도핑금지 약물이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약물이다. 이러한 규제나 법은 위반 시 처벌받는 조항일 뿐이다. 즉 위반한 사람은 책임지고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지, 몸에 발생하는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소년들 만큼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을 그렇게 쉽게 처벌조항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유소년은 성장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고 단순히 근 골격 형성뿐만 아니라 생식기와 정신, 내장기관이 아직 완전하지 않을 때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몸의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나쁜 성분의 지방을 높여서 심장질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남성의 경우 정자 생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발기부전을 유발하기도 쉽다. 성장판을 조기 폐쇄시킬 수 있고, 힘줄과 인대를 약화시켜 부상에 쉽게 노출된다. 간 조직 손상을 일으키는 부작용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 우울증 유발과 심한 감정기복을 야기할 수 있다. 즉 유소년들을 대상으로 이런 약물을 복용시키게 했다는 건 단순히 금지약물을 사용한 것 이상의 심각성이 나타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오상민 대표는 자격증 없이 범람하는 유소년 야구 교실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소년 야구와 리틀 야구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유소년 야구는 자격증 없는 지도자도 임의대로 야구교실을 운영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유소년 야구 지도자’ 자격증 없이 야구 교실을 운영한다면 또 다른 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 약물 복용은 물론 지도자와 학부모들과의 금품수수 거래 등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피해는 결국 야구 선수를 희망하는 아이들한테, 넓게는 한국 야구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유소년 아이들을 성장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대다수의 지도자들도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