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공급한 전략물자가 북한에 넘겨져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국의 부실한 무역관리로 일본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 근거로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 밀수출 단속실적을 들고 있다.
이 실적은 국회에 보고되고 언론에 보도된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한 관리와 통제가 투명하고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은 될지언정 북한의 핵무장에 이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같은 종류의 단속은 일본 정부도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사전 또는 사후에 단속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선 아무런 단속도 없이 북한에 건네진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의 벤츠 승용차 밀반출 사건은 그중에서도 최근의 예일 뿐이다.
한국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북한이 과거 대남테러에 사용한 장비나 무기 가운데는 일본제품이 많았다. 유엔의 대북제재 전까지도 북일 간에는 정기선이 운항됐다. 북일 간 밀무역 커넥션은 뿌리 깊고 광범하다.
한국은 북한과 동족인 관계로 유엔제재이행과 관련해 국제사회로부터 오해와 의심을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북 무역관리에 다른 나라보다 몇 배나 신경을 써야 하는 나라다.
수출품 제조에 쓰기도 모자란 고가에 고순도의 일본제 전략물자를 북한에 넘긴다는 것은 상거래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일차적인 공격목표는 일본이나 미국이기 이전에 한국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한민국을 상대로 북한의 핵무장을 돕는다고 근거도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비열한 중상모략이다. 그 속에는 남북한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한미 간을 이간시키려는 일본의 간교한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베 총리가 보복을 보복이라고 말하지 않으려는 심리에는 지난 5월 오사카 G20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선언을 채택하는 데 앞장선 나라가 선언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웃 나라에 무역보복을 가한 것에 대한 민망함도 있을 것이다.
수출로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이다. 수출규제는 일본의 문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외교 문제를 경제보복으로 풀려는 것은 자유무역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아베를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유했으나, 주한미군에 사드가 배치됐다고 한국에 대해 무역보복을 가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더 닮았다.
한미일은 아시아에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지탱해 온 축이다. 이 축에 균열이 생기면 셋 모두에게 해로울 뿐이다. 일본은 대한 무역 보복을 철회하고 외교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