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Z세대 성욕감퇴 현상 두드러져 “피곤해서” 다수…스마트폰·포르노물 탓 지적도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는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갖는 횟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어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테면 ‘섹스리스 커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런 성욕 감퇴는 심각한 위험 수준에 도달한 상태며, 이런 현상은 이미 수많은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연령대다. 섹스리스 현상은 특히 중장년층보다 20~30대 청년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에 살고 있건만 왜 성욕이 감퇴된 걸까. 무엇이 성욕을 죽이고 있는 걸까.
섹스리스 커플이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보다 20~30대 청년층에서 섹스리스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전 국내에도 출시된 바 있는 ‘바이리시(Vyleesi)’는 여성용 비아그라라고 불린다. 여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마법의 지팡이로, 1ml도 채 되지 않는 액상 물질이 담겨 있는 자그마한 주사기 형태다. 주사기를 통해 피부에 주입하면 45분 후에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잠자고 있던 성욕을 되살리는 성욕장애 개선제인 셈이다.
하지만 ‘포쿠스’는 ‘바이리시’를 가리켜 여성용 비아그라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비아그라가 성욕은 있지만(성관계는 원하지만) 신체 반응이 이뤄지지 않아(발기가 되지 않아) 성관계를 못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바이리시’는 없던 성욕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성욕감퇴장애’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것을 메스꺼움, 구토, 현기증, 피부변색 등의 부작용이 있는 처방전이 필요한 질병으로 다뤄야 하는가 여부다.
‘바이리시’의 등장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근래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는 성욕 감퇴로 인해 성관계 횟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추세다.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에는 독일인의 74%가량이 활발한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재 그 수는 67%로 떨어진 상태다. 다시 말해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연령대다. 놀랍게도 20~30대 커플보다 60~70대 커플이 더 자주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대학은 조사 결과 ‘30세 이하의 남녀 약 20%는 아예 파트너가 없는 싱글인 상태’라고 말하면서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지 아니면 기회가 없어서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데이트 플랫폼인 ‘엘리트-파트너’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두 명 가운데 한 명, 남성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최근 12개월 동안 성관계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인터뷰에 응한 미혼 남녀 여덟 명 가운데 한 명만이 한 달에 여러 번 성관계를 가진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한 듯하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성적 욕망이 넘치는 나라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1980년대 팝가수 마돈나가 공개적으로 ‘이탈리아인들이 더 잘한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에서 이런 성욕 감퇴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피곤에 절어있는 이탈리아 남성들 가운데 비뇨기과 전문의를 찾고 있는 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새천년을 목전에 두었던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영국인들의 성관계 횟수는 평균 한 달에 여섯 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섯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의 경우에는 이미 보건부 장관이 나서서 국가 출산율 하락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상태며, 미국의 경우에는 정치전문지 ‘애틀랜틱’이 보도한 것처럼 ‘섹스 불경기’ 시대를 맞아 여기저기서 한탄스런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오늘날 윤리 규범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느슨하고, 또 개인의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보장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데 말이다. 실제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세대를 거치면서 육체적인 친밀함, 즉 성적 행위를 하는 횟수는 점점 감소해왔다. 지난 30년 사이 성관계 횟수는 약 15% 감소했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Z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1997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성행위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아예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혼들은 인기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나 ‘걸스’의 흥행 덕분에 활발한 성생활을 하는 ‘탐험가’들의 이미지에 대해 집착했었다. 아마 일부에게는 여전히 해당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분명한 것은 요즘 미혼들의 경우 견고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성관계 횟수가 확실히 적어졌다. 전세계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수 역시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심지어 디지털시대의 뚜쟁이격인 데이트 앱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빈도가 높아졌는데도 그렇다. 데이트 앱인 ‘틴더(Tinder)’ ‘로부(Lovoo)’ ‘범블(Bumble)’을 이용하면 이성의 전화번호를 얻거나 따로 데이트 약속을 잡기 위해 더 이상 집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노르웨이과학기술대학의 연구진들이 600명의 학생들에게 데이트앱 사용 경험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술집이나 클럽에서 만난 상대보다 앱을 통해 만난 상대와는 원나잇을 하거나 진지하게 사귀는 일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데이트 앱은 에로틱한 접촉의 빈도보다는 데이트를 시작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년 부부의 섹스리스를 다룬 영화 ‘호프 스프링즈’.
그렇다면 성관계 횟수가 줄고 있는 까닭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을까. 국제연구단체인 ‘섹슈얼 시프트’가 커플들의 성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꼽은 이유는 ‘피곤해서(72%)’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일이 너무 바빠서(50%)’ ‘시간이 부족해서 (50%)’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으며, 이밖에도 ‘자녀 때문에(31%)’ ‘통증 때문에(13%)’ ‘감정적으로 교류가 없어서(12%)’ ‘신체적 제약 때문에(10%)’ ‘자위가 더 좋아서(9%)’ ‘금욕생활이 더 좋아서(8%)’ ‘딱히 이유는 없음(7%)’ 순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포쿠스’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성인물도 일정 부분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옆에 누워있는 사람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포쿠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는 횟수는 하루 평균 80번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함부르크의 부부관계 심리치료사인 마이클 메리는 “처음에는 커플들이 성관계를 적게 갖는 것이 TV 때문이라고들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넷플릭스 시리즈나 인터넷 성인물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상담을 해보면 성관계를 안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섹스를 할 시간이 없어서라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라는 등. 하지만 당신이 만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섹스를 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성별 논쟁, 가령 ‘미투운동(#MeToo)’, 더 나아가 남성성의 위기 등과 같은 문제도 성관계 횟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첨단 섹스토이 같은 초강력 자극제가 등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성욕이 감퇴됐다는 추측도 있다.
그렇다면 포르노물은 어떨까. 비록 연구결과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성욕을 감퇴시킨 일등 공신으로는 포르노산업이 꼽혀왔었다. 가령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포르노물을 자주 접한 사람들일수록 실제 연인과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보다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창 성욕이 넘치는 10~20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그 이유는 다르다. 파더본대학 ‘미국학 연구소’의 강사인 마디타 외밍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많이 포르노를 접한 결과 성욕이 과도하게 넘치는 청소년들이 증가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외밍은 “새로운 공황 상태가 발생했다. 젊은이들이 실제 성생활은 하지 않고 그저 포르노만 본다”고 지적했다.
포르노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코블렌츠 성교육 연구소의 베아테 마틴은 포르노가 순전히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상을 키운다는 우려에 대해 “요즘 청소년들은 픽션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10대 소녀들은 예전처럼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에 의해 억눌리지 않고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섹스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학교, 우정, 취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마틴은 말했다. 다시 말해 10대들에게 섹스는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독일의 경우, 라이프치히대학의 조사 결과 청소년들이 첫경험을 하는 나이는 점점 늦어지고 있는 추세다.
한편 웹사이트 ‘포른허브(PornHub)’에 따르면, 전세계 포르노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며, 그 뒤를 영국, 인도,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필리핀이 잇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