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NPB 보며 야구에 빠져…“구단 복귀 욕심 없어, 부산 야구 부활 바랄 뿐”
지난 8월 28일 송정규 단장이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 내 응접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요신문] 프로야구 KBO 리그의 대표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가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기 최하위 성적을 기록, 감독과 단장이 동반 사퇴한 이후 최하위를 벗어나는 듯 했지만 8월 30일 기준 여전히 순위표 맨 아래에 위치해 있다.
롯데는 올 시즌 외국인과 신인 선수를 제외하면 팀 연봉 101억 8300만 원으로 KBO리그 최고 연봉 팀이다. 그럼에도 무기력한 패배가 계속되자 팬들은 연일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이에 최근에는 1992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팀을 이끈 송정규 전 단장이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일요신문’은 “현재 롯데는 감독 한 명 교체한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송 전 단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도 야구를 좋아하던 그가 ‘팬’에서 ‘단장’으로 야구 현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책을 내면서부터였다. 제목은 ‘필승V전략 롯데자이언츠 : TOP SECRET’.
그는 “처음엔 책을 팔아볼 생각으로 롯데 구단과 접촉했다”며 웃었다.
결국 롯데 구단 수뇌부의 귀에도 책 관련 이야기가 들어갔다. 송 전 단장은 “당시 민재영 사장이 ‘책 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땐 내가 구단에서 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구단에 가서 얘기 좀 듣다가 책을 사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다(웃음). 30권 사주더라”라고 설명했다.
구단 관계자와의 만남은 사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업가이기도 했던 송 전 단장은 ‘책을 팔 기회’라는 생각에 만남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글씨가 작아 책을 보기 힘들다’는 롯데 부회장 측의 지적에 큰 사이즈로 제본을 해 가져가기도 했다.
결국 그가 원하던 대로 책을 팔지는 못했지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단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듭 거절했지만 결국 서울까지 불려온 그는 단장직 제의를 수락했다.
“사장이 다급하게 서울로 불러서 올라왔다. 신준호 구단주가 만나고 싶어 한다더라. 서울 롯데호텔 부회장실로 갔다. 구단주가 내 입사 얘기가 다 된 것처럼 말하더라. 나중에 사장에게 따졌더니 한 번만 눈감아 달라는 부탁에 어쩔 수 없었다.”
그 뒤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그가 단장을 맡은 1991년 롯데는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랐고, 이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5실 무렵. 왼쪽 아이가 송정규 전 단장이다. ㅅ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해양대학교 대학원장으로 계셔서 관사에 살았다. 집에서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곳. 집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일본 방송이 다 잡혔다. 거기서 매일 나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 경기 중계를 지켜보며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야구사랑은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하고 배를 탈 때도 계속됐다. 그는 “어릴 때도 아버지가 보시는 타임지, 요미우리신문 등에 나오는 야구 관련 기사를 읽었다. 한자를 아니까 일본 신문도 읽겠더라”면서 “배를 타니까 야구와 가까워질 시간이 더 많았다. 25살에 1등 항해사가 됐고 27살에 최연소 선장이 됐다. 선장은 사실 빈둥거릴 시간이 많다(웃음). 그 때 일본, 미국에서 구입한 주간 베이스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나 관련 서적을 수도 없이 봤다. 단파 라디오에 안테나를 달아서 배에서도 야구 중계를 듣기도 했다. 항구에 닿으면 샌프란시스코 등 야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기도 했고”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이고 워낙 야구에 빠져 있어서 그때 본 것들을 지금까지도 외우고 있다”면서 1976년 요미우리 우승 라인업을 1번 시바다부터 9번 호리유치까지 줄줄 꿰기도 했다. 최근 우연히 만난 일본 언론인과 야구 이야기를 하다 특별해설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야구에 빠져 지내던 중 국내 프로야구가 창설됐다. 당연히 나고 자란 부산팀에 애정을 쏟았다. 수십 년간 야구 관련 서적을 찾아보던 그가 직접 책을 낸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 이후 30년이 다돼가는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됐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서면서부터다.
“해운 쪽에서는 도선사협회장도 맡고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야구계에선 잊힌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갑작스레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더라. 올해 롯데가 유난히 바닥을 치니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데서 내 이름이 오르내린다더라.”
텔레비전 공중파 채널 저녁 뉴스에도 출연했고 유튜브 영상도 촬영했다. 그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랬다. 요즘 길거리를 지나가면 ‘잘 봤다’는 인사뿐만 아니라 ‘언제 롯데로 돌아가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첨엔 불러서 서울까지 갔는데 유튜브 영상을 찍는대서 소홀히 대하는 것 같아 서운한 기분도 들더라. 그런데 찍고 나니 파급력이 대단하더라. 유튜브의 위력을 이제야 알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팬들이 그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현장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인물의 말에도 관심을 보인 데에는 롯데의 반등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의 롯데에 대해 조목조목 진단과 개선책을 내놨다.
먼저 언급한 인물은 이대호였다. 송 전 단장은 “막대한 연봉에 비해 그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선수다.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줘야 하나. 그 정도 연봉이면 혼자의 힘으로도 팀을 끌고 올라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 뿐 아니라 ‘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대호는 본인의 좋은 활약으로 이길 때도 ‘선수들 덕분’이라고 말을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이다”라면서 “좋게 보면 겸손하다고 할 수 있지만 본인이 이끌어간다는 태도로 해야 한다. 과거 일본의 오사다 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같은 슈퍼스타들은 ‘내가 팀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못해서 죄송하다. 내가 무능하다’며 사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이대호만 나무라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대호의 팬이고 고등학교 선배(경남고)이기도 하다. 나라고 후배를 욕하고 싶겠나. 하지만 야구적으로는 냉정하게 봐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도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롯데뿐만 아니라 요즘 야구 감독들의 문제”라면서 “감독의 우직함이 때론 팀을 망칠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롯데 구단 재직 시절, 선수들과 인사 나누는 송 전 단장. 공필성, 유두열, 장효조 등 전설적 선수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손승락이 안되면 다른 투수를 마무리로 활용하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손승락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무리를 맡기고 이대호라는 이름값에 무조건 4번에 둬서는 안 된다. 미국만 하더라도 다저스의 로버츠 감독이 신인을 3번에 놓기도 한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너무 경직돼 있다. ‘신뢰의 야구’라는 말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10게임을 망치다가 1게임 이겼다고 신뢰의 야구라고 칭찬받는 세태는 잘못됐다.”
또한 ‘형님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그는 “다른 말로는 통제가 안 되는 야구, 선수들에게 휩쓸리는 야구다”라며 “과연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지 의문이다. 많은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감독 지시에 따르는 타율적 야구 환경에서 자라왔다. 물론 프로로서 자율성은 필요하지만 감독의 적절한 지시가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때론 선수단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과거 뉴욕 메츠도 대릴 스트로 베리, 드와이트 구든이라는 스타들에게도 예외 없이 규정을 위반하면 벌금을 대폭 부과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축구에서도 퍼거슨 감독이 슈퍼스타로 성장한 데이비드 베컴에게도 기강을 강하게 잡았다고 하지 않나”라면서 “꼭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라면 그런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약하게 보이면 선수들이 지도자 등에 올라 탄다”고 말했다.
현재 롯데의 공필성 감독 대행에 대해서는 “첫 경기를 치르고 선수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했다더라. 다 연봉 받고 뛰는 프로들인데 감사할 일이 뭐가 있나. 지도자와 선수간에 선이 필요하다”라면서도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단장 할 때 선수였다. 다만 감독에 어울리는 인물인지는 모르겠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괜히 좋은 코치 한 명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국내 야구계 전반의 아쉬움도 전했다. 외부인에 대한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도선사가 야구 훈수를 둔다’며 공격을 받기도 했다. 내가 단장을 할 때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나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감독에게 할 말도 사장을 통해서 했다. 그런데 30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더 심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키움이라는 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항상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이다. 그런데 그 팀의 기반을 비(非)야구인이 만든 것 아닌가. 그 사람의 잘못을 떠나서 말이다. 최근에는 허민이라는 사람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공격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때때로는 외부인도 유입돼야 조직이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 야구계는 그런 부분을 매우 견제하는 것 같아 아쉽다.”
‘구단으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의문 제기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어떤 이들은 ‘저 영감이 다시 뭘 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한다”면서 “나는 지금도 도선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연봉이 높은 직업 아닌가(웃음). 야구단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또 내가 나이가 60대 중반이 훌쩍 넘었다. 단장, 사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 같은 쓴 소리를 내는 것도 롯데 구단과 야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최근 언론에 얼굴을 몇 번 비쳤더니 정말 반응이 뜨거웠다. 다시 롯데를 맡아달라는 이야기부터 책을 ‘시즌2’로 내달라는 요청도 많다. 롯데가 부진하면서 부산 시민들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요즘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횟수도 적어지면서 지역 경제까지 흔들린다. 부산이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 도시인가. 이는 바꿔 말하면 잘 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잠재력을 가진 롯데가 과연 언제쯤 살아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