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새역사 만들기 경쟁…왕조 구축의 비결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KBO 리그 최강으로 군림한 해태 왕조. 연합뉴스
[일요신문] SK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정규시즌 우승팀 두산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정규시즌 1위 두산과 2위 SK의 최종 게임차는 14.5경기에 달했지만, 한국시리즈라는 최대 7경기 승부에서는 SK의 기세가 더 셌다. 올해 역시 정규시즌 순위표 맨 위 두 자리는 두 팀이 지키고 있다. 이번엔 SK가 1위, 두산이 2위다. SK는 한국시리즈 2연패를 노리고, 두산은 지난해 빼앗긴 왕좌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각오다. 2010년대 후반의 진정한 ‘왕조’ 자리를 놓고 두 라이벌 팀이 경합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프로 스포츠에서 ‘왕조’라는 단어는 모든 팀의 로망이자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다. 한 팀이 오랜 기간 1위 자리를 독점하는 시대를 만들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실제로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6회 한국시리즈(삼성이 전·후반기 통합 우승을 한 1985년 제외)가 열리는 동안, 2년 이상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팀은 KIA의 전신 해태와 삼성, 현대, SK, 두산까지 단 5개 팀뿐이다. 이 구단들이 과거와 현재에 ‘5대 왕조’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던 비결이기도 하다.
#김응용과 선동열이 상징하는 해태 왕조
KBO 리그에서 가장 뿌리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원조 왕조’는 두말할 것 없이 해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중반까지의 해태는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이었다. 강렬한 붉은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는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를 연상케 하는 위압감을 뽐냈다. 선수단의 수장인 감독부터 카리스마가 넘쳤으니 말 다했다. 아마추어 시절 한국 야구 최고 강타자로 군림한 김응룡 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장기간 지휘봉을 잡고 호랑이 군단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커다란 풍채를 자랑하는 김 감독이 해태 더그아웃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면, 해태 선수들은 물론 다른 팀 선수들까지 움츠러들었다.
해태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1983년. 이후 2년간 잠시 왕좌를 다른 팀에 내줬지만, 1986년 다시 정상에 오른 뒤 4년 연속 내려오지 않았다. 1차 지명 인원 제한이 없던 1980년대 초반에 야구 명문인 광주일고와 광주상고(현 동성고), 군산상고 등에서 최고의 유망주들을 쓸어 모아 ‘스타 군단’을 구축한 덕분이다.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을 비롯한 전설적인 투수들과 이종범, 김성한, 김봉연, 한대화, 이순철과 같은 최고의 타자들이 조화를 이룬 팀이었다.
이후 모기업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구단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지만, 최고의 유망주들이 줄지어 입단하는 해태의 경기력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야구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들이 모여 있으니 복잡한 작전도 필요하지 않았고, 다른 팀들에 비해 훈련량이 적어도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기강이 유독 엄격해 선수들이 ‘딴 생각’을 하기 어려운 팀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해태는 막강한 1980년대의 기세를 1990년대에도 이어가면서 1991년과 1993년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했고, 다시 1996년과 1997년에 한국시리즈 2연패를 해냈다. “불펜에 선동열이 몸을 풀면 상대 팀은 이미 추격 의지를 잃었다”는 일화나 “김 감독이 일부러 선동열을 불펜에 내보내 몸을 푸는 모습을 상대팀에게 보여준 적도 있다”는 전설적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던 팀이다. 또 이종범이 한 시즌에 도루 84개를 하던 시절에는 “이종범에게 단타를 맞으면 사실상 2루타나 3루타를 내준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해태는 총 아홉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총 50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와 7명의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를 배출했다. 하지만 1차 지명 인원 수가 1명으로 줄어든 1990년대부터 선수 수급에 제한이 생겼고, 모기업의 재정난이 극심해지면서 간판 스타들을 줄줄이 일본 구단에 임대한 탓에 ‘해태 왕조’의 철벽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해태는 삼성과 현대에 최강팀의 자리를 물려 준 채 쓸쓸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1년 기아자동차가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팀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현대 왕조의 주역 투수 정민태. 연합뉴스
현대의 역사는 무척 짧지만 그 어느 팀 못지 않게 굵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단 12시즌 동안만 KBO 리그에 몸 담았는데도 역대 최고의 팀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 까닭에서다.
현대는 당시 모기업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현대그룹은 1994년 아마추어 야구단 현대 피닉스를 창단한 뒤 거액의 계약금을 앞세워 당시 내로라하던 대학과 고교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이때 입단한 선수들이 각기 다른 구단 지명을 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아쉬움을 맛봤지만, 거물 외야수 박재홍과 에이스 문동환을 비롯한 주축 멤버들은 트레이드를 비롯한 여러 과정을 통해 현대로 재입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국내 최고 유격수로 성장한 박진만과 선발 투수 김수경, 마무리 투수 조용준 등이 팀의 승승장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재정난에 빠진 쌍방울에 거액을 주고 특급 포수 박경완을 영입해 최강 전력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에이스 정민태와 4번 타자 심정수의 조합은 리그 최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6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현대는 1998년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00년 징검다리로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어 2003년과 2004년에는 마침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현대 사령탑을 장기 집권한 김재박 감독과 그 밑에서 각 파트를 완벽하게 조율한 김시진 투수 코치와 김용달 타격 코치는 역대 프로야구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트리오로 꼽힌다.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이룬 삼성 왕조
프로야구 원년 구단인 삼성은 두 차례나 왕조를 구축했던 ‘전통의 명가’다. 2000년대 중반 선동열 감독 시절과 2010년대 초반 류중일 감독 시절로 나뉜다. 늘 강팀의 위용은 유지했지만 해태와 현대에 밀려 좀처럼 우승은 하지 못했던 삼성은 2000년 프리에이전트(FA) 도입 이후 역시 막강한 자금력을 활용해 스타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현대의 핵심 전력이던 박진만과 심정수가 삼성으로 이적한 게 대표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해태의 상징과도 같던 김응용 감독이 2002년 첫 우승의 한을 풀고 사장으로 승진한 뒤 또 다른 ‘타이거즈 혈통’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 받았다. 이어 2005년 오승환이라는 걸출한 대졸 신인 투수가 입단하면서 마침내 전성기를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선 감독은 ‘KO(권오준-오승환) 펀치’로 상징되는 강력한 불펜을 구축해 ‘지키는 야구’를 삼성의 팀 컬러로 굳혔고, 감독 첫 해인 2005년과 이듬해인 2006년에 연속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은 우승의 숙원을 푼 이후 FA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한 번 강해진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오른 류 감독은 다시 한 번 마운드를 높이 세워 ‘지키는 야구’를 부활시켰다. 신구 조화가 이뤄진 선발진에 철벽 같은 불펜진이 실점을 막았고, 국가대표급 야수진은 공격과 수비 모두 탄탄한 기량을 자랑했다. 결국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남겼다. 전성기의 해태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2015년 역시 정규시즌을 1위로 마쳐 5연패에 성공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해 통합 5연패는 아쉽게 무산됐다.
#공수주와 마운드 모두 완벽했던 SK 왕조
2000년 창단한 SK는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3년부터 착실하게 팀의 기틀을 다졌다. 베테랑 명포수 박경완을 FA로 영입하면서 그해 한국시리즈 무대를 처음 밟는 데 성공했고, 수 년에 걸쳐 차근차근 영입한 유망주들이 팀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전력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7년 부임한 김성근 전 감독 체제에서 성사됐다. 김 감독은 엄청난 양의 훈련과 세밀한 전력분석, 각 선수의 장기를 십분 살린 전천후 활용, 혹사 논란을 부를 정도로 파격적인 투수 기용 등을 앞세워 공수주에서 빈틈이 없는 강팀을 구축해 나갔다. 정근우와 최정이 국가대표급 내야수로 성장하면서 기량의 꽃을 피웠고, FA로 영입한 베테랑 김재현과 포수 박경완이 중심을 잡았다. 외야에는 김강민, 박재상, 조동화 등이 포진해 수비력과 기동력에서 역대 최고의 조합을 완성했고 이승호, 정우람, 송은범 등이 맹활약하던 마운드에는 2008년 초특급 신인 김광현이 가세했다.
결국 SK는 2008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 뒤 2009년 준우승했고, 2010년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이어 나갔다. 특히 2009년 마지막의 19연승과 2010년 시작의 3연승을 합한 22연승 행진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엄청난 기록이다.
#화수분 야구의 진수를 보여 준 두산 왕조
두산은 2000년대 후반 리그를 평정하던 SK와 유일하게 어깨를 겨루던 팀이다. 2007년과 2008년 모두 SK의 한국시리즈 상대가 두산이었을 정도다. 당시 사령탑이던 김경문 현 국가대표 감독과 함께 ‘화수분 야구’의 기틀을 다져 나간 두산은 당시 주전으로 자리잡은 선수들이 리그 정상급 실력으로 만개한 201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었다.
현역 최고 포수 양의지와 유격수 김재호를 필두로 한 최강 내야진, 민병헌과 정수빈이 버티는 막강한 외야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여기에 최고 외국인 투수였던 더스틴 니퍼트와 ‘느림의 미학’ 유희관이 선발 마운드를 이끌었고, 2015년 이례적으로 거액(4년 총액 84억원)을 들여 영입한 FA 투수 장원준은 커리어 최고 성적을 올리면서 ‘우승 청부사’ 역할을 했다.
김태형 감독이 취임한 2015년 두산은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차례로 거친 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이어 2016년 정규시즌에는 KBO 리그 역대 최다승인 93승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외국인 투수 둘과 유희관-장원준의 ‘판타스틱 4’를 앞세워 통합 왕좌에 올랐다.
두산은 2017년 KIA에 잠시 우승 트로피를 내준 뒤 지난 시즌 다시 한 번 93승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면서 ‘왕조’의 기운을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4년 연속 진출한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SK에 일격을 당해 아쉬움을 삼켰다. 올해는 반대로 두산이 ‘역전 우승’을 노리고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단 여섯번 뿐인 한국시리즈 ‘4승 무패’ 우승 한국시리즈는 단기전이다. 전력 차가 크지 않은 강팀들끼리의 대결이라 승운이나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 팀이 4승 무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승리한다면, 실력으로 완벽하게 눌렀다고 보는 게 맞다. 총 36번의 한국시리즈 가운데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한 팀은 단 여섯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최초의 사례는 1987년 해태였다. 대구에서 열린 첫 두 경기를 모두 잡고 시작했다. 1차전은 한대화와 김성한의 홈런이 터지면서 5-3, 2차전은 선발 김정수와 마무리 선동열의 호투를 묶어 2-1로 이겼다. 홈으로 자리를 옮긴 3·4차전은 좀 더 쉽게 잡았다. 3차전에서 4-2로 승리하면서 삼성 이만수의 기세를 잠재웠다. 4차전에선 9-2로 낙승했다. 그 다음 차례는 1990년 LG였다. 삼성을 상대로 1차전에서 13-0 대승을 올리면서 순조롭게 출발했고, 2차전에선 연장 11회 승부 끝에 3-2로 다시 이겼다. 대구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3차전을 3-2, 4차전을 6-2로 각각 잡아내고 1패도 없이 패권을 차지했다.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해 2승을 올린 에이스 김용수가 시리즈 MVP로 뽑혔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해태가 빙그레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해태는 1차전에서 에이스 선동열의 완투승과 강정길·한대화의 홈런을 앞세워 9-4로 이겼다. 2차전에선 이건열이 멀티 홈런을 터트리면서 11-2 대승을 가져왔다. 승리투수가 현 KT 감독 이강철, 패전투수가 현 한화 감독 한용덕이었다. 3차전 역시 빙그레 선발 송진우를 무너트리면서 4-1로 승리. 4차전은 홈런 두 방을 맞고도 불펜의 선동열 카드를 앞세워 5-4로 승리했다. 1994년은 LG의 ‘신바람 야구’ 원년이었다. 한국시리즈도 신바람을 타고 4연승으로 마쳤다. 1차전 연장 11회에 대타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면서 2-1로 이겼고, 2차전은 정삼흠이 완봉 역투를 펼쳐 7-0으로 완승했다. 3차전은 구원 등판한 정명원을 무너뜨려 5-4로 역전승. 4차전 역시 3-2로 1점 차 승리했다. 마무리 투수 김용수는 두 번의 우승에서 모두 시리즈 MVP가 됐다. 2005년 삼성은 11년 만에 나온 4승 무패 우승팀이었다. 홈에서 열린 첫 판을 5-2로 잡은 뒤 2차전에선 팽팽한 연장 12회 승부 끝에 3-2로 승리했다. 한 번 흐름을 가져오자 3차전과 4차전은 수월했다. 3차전은 양준혁과 진갑용의 홈런이 터져 6-0으로 이겼고, 4차전은 10점을 뽑아 10-1로 대승했다. 당시 신인이던 오승환은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해 MVP가 됐다. 구원 투수의 한국시리즈 MVP 수상 역시 11년 만이었다. 5년 뒤인 2010년 SK는 한국시리즈에 선착해 여유 있게 상대를 기다렸다. 반면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전 경기 1점차 혈전을 펼치고 올라온 뒤라 기진맥진했다. 1차전은 SK의 9-5 승리. 2차전 역시 SK 최정과 박경완이 홈런포를 쏘아 올려 4-1로 잡았다. 3차전과 4차전은 약속이나 한듯 4-2라는 똑같은 스코어로 끝났다. SK는 에이스 김광현을 마지막에 올려 우승을 마무리 짓게 했다. 그 후 6년 만에 등장한 전승 우승팀이 바로 2016년의 두산이다. 1차전만 연장 11회 접전 끝에 2-1로 승리했을 뿐 이후 3경기는 모두 낙승했다. 2차전이 5-1, 3차전이 6-0, 4차전이 8-1로 각각 끝났을 정도다. 15승 투수 4명의 위용을 앞세워 4경기에서 38이닝 동안 NC 타선을 2득점으로 묶어 역대 한국시리즈 최소 실점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