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2년 버티며, 잡초처럼 혼자 부딪히며 깨지면서 배워”
롯데 자이언츠 성민규 신임 단장.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사였다. 파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7세의 신임 단장이 바닥으로 추락한 팀을 얼마나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프로야구 수도권 팀의 A 단장은 기자에게 성민규 롯데 신임 단장의 행보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 활약한 성 단장이 KBO리그의 문화와 선수단을 제대로 파악해서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성 단장은 취임시 5년 내 우승을 공언하며 “분명한 방향성과 전략에 따라 팀을 속도감 있게 혁신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야구인들은 성 단장이 조만간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와 혁신의 중책을 맡고 KBO리그에 뛰어든 성민규 단장. 과연 그는 어떤 한계를 안게 될 것인가. 어떤 기대를 갖게 할 것인가.
성민규 단장은 야구 선수 출신이다. 2006년 신인 2차 드래프트 4라운드 지명으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가 2군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방출됐다. 이후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컵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채 퇴단했지만 컵스 구단의 제의로 컵스 산하 싱글A팀 코치, 환태평양 스카우트와 슈퍼바이저를 거쳤다. 이대은, 하재훈, 이학주 등 유독 컵스에 한국 유망주들이 많이 입단했던 것도 성 단장의 힘이 컸다. 최근까지 성 단장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김광현의 경기를 보러 다녔을 정도로 KBO리그와는 깊은 인연을 이어나갔다.
야구계에서는 성 단장의 KBO리그 입성을 충격과 파격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런 시선은 성 단장도 잘 알고 있었다. 성 단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막상 단장직을 맡고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느낀 시행착오를 솔직히 고백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을 혼자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각 파트별 현안들을 검토한 다음 내 아이디어를 덧입혀 다시 일을 맡기려 했던 것이다. 3일 동안 혼자 끙끙 대봤지만 도저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직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각자 파트별로 일을 분리해서 서로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았는데 덕분에 지금은 직원들의 협조로 모든 일들을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다.”
성 단장은 자신이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 파트에서 일한 것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소개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어제 우연히 기사를 보니까 한국에서 고교 선수들 뽑아서 컵스로 데려간 스카우트가 한국 야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 컵스에서의 주 업무는 메이저리그랑 트리플 A팀을 체크하면서 트레이드나 FA 대상을 살피는 일을 맡았다.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호주 지역을 관리하면서 팀장급 역할을 담당했던 터라 일도 많았고 상당히 피곤한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고교야구 선수들을 마이너리그에 입성시킨 것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 야구를 얼마나 알겠냐고 반문하는데 방송 해설하고 스카우트 업무차 구단을 방문하면서 10개 구단 단장님들, 감독님들과는 거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야구계의 꽤 많은 분들과도 친분을 맺고 있고, 연결돼 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투른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 아마추어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롯데 성민규 단장과 공필성 감독대행. 사진=연합뉴스
성 단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그의 선언대로 리빌딩이 아닌 리모델링을 잘하기 위해서는 선수단 구성의 기초 공사를 단단히 마련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감독 선임. 야구계에서는 미국 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성 단장의 특성상 차기 감독은 외국인 감독이 유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에 대한 성 단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데이터 야구를 거론했더니 그와 걸맞은 감독은 외국인 지도자 중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더라. 전혀 그렇지 않다. 데이터는 감독이 챙기는 분야가 아니다. 감독은 선수단을 장악하고 선수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 시카고 컵스에는 데이터를 전담하는 코치가 있다. 데이터 분석팀에서 넘겨준 자료를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 코치가 있으면 감독이 굳이 데이터를 잘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성 단장은 감독 후보군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말한다.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서 더 훌륭한 지도자도 아니고, 한국인 감독이라고 해서 훌륭하지 못한 지도자도 아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한 터라 선입견을 갖고 감독 선임 작업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감독은 25명의 선수를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경기마다 주전 9명은 행복하다. 선발, 5선발, 필승조도 행복하다.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도 행복하게 리드할 수 있는 지도자를 모시고 싶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성 단장은 공필성 감독대행을 예로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공 감독도 우리가 찾고 있는 유형과 엇비슷한 지도자다. 선수들과 친화력도 좋고, 선수들도 공 감독을 신뢰한다. 좋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개혁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조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 성 단장으로서는 기존 롯데 프런트들과 어떤 호흡을 보이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이 일과 관련해서는 걱정할 게 없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돼야 열심히 뛰는 것처럼 조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해서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부서에서 일을 통해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단장 취임 후 모든 직원들과 개별 면담을 가졌다. 가족은 어디 사는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봐달라고 주문했는데 그런 대화 속에서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하고 조직 안에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성민규 단장은 원칙에 입각한 리빌딩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 단장은 시즌 마치고 선수단 리모델링을 위해 선수 구성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대신 그는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인위적인 리빌딩을 추구하지 않는다. 전력에 도움이 된다면 나이 많다고 해서 방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베테랑 선수들의 자질도 중요한 항목이다. 나이 많다고 무조건적인 기회를 제공받을 수 없다. 그동안 롯데는 선수들과 마무리할 때마다 잡음이 있었다. 팀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이 나타난다면 최대한 섭섭하지 않게 배려하고 도와줄 계획이다.”
성 단장은 자신의 임기가 3년이라는 사실을 거론하며 “3년 뒤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이가 나를 밀어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다음 내 자리에 도전한다면 난 팀을 위해 깨끗이 물러날 각오가 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미국처럼 철저히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회에서 나는 12년을 버텼다. 잡초처럼 혼자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운 부분들이 지금의 커리어를 만들었다고 본다. 나이, 커리어, 경험 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이다.”
앞에서 거론한 수도권 팀의 A 단장은 성 단장이 성공하려면 모기업의 입김을 최소화하고, 단장에게 최대한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성 단장만의 ‘원맨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