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면서 ‘유저’ 돼, 문제의 디테일 보여…청년문제 이어 난임·돌봄 등 워킹맘 관련법 집중”
심요한 감독(35)이 청년 정치인을 다룬 영화 ‘비례대표(가칭)’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서핑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쥔 충무로 예비 스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 영화 신예 발굴 프로젝트 S#1(씬 원) 아카데미 1기로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심 감독과 청년 정치인의 만남을 주선해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
[일요신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청년층은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이 말이 딱 어울린다. 20대 국회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가운데 정시를 통과한 사람은 신 의원이 유일한 까닭이다. 부모를 속이고 애태우던 20대 교사 준비생 반항아는 어느덧 정제된 정치적 수사의 달인이 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케 오찬 논란’의 중심지인 일식집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가 있었던 일식집 ‘이즈미’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자주 오는 곳이다. 실제 백화수복을 판매했다. 백화수복을 주문해도 빌지에 ‘사케’라 적히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찬 사케 오찬 논란’ 뒤 이 일식집이 빌지 자체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진=임준선 기자
신보라 의원 인생을 바꾼 건 탈북자였다. 광주광역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신 의원은 전북대 사범대로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을 꿈꿔온 신 의원에게 1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비운동권 학생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학생회 활동을 하던 가운데 참여했던 탈북자 강연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벌써 20년 가까이 지나 단어 하나 하나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날 들었던 탈북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짜 중요한 게 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꿈을 교사에서 사회운동으로 바꿨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모부터 설득해야 했다. 그는 잠시 삐딱선을 타기로 했다. 부모를 잠시 속이기로 했다. 그는 졸업 뒤 부모에게 “임용고사를 준비하겠다”며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고선 몰래 시민단체 활동의 기반을 쌓았다.
2007년 대학생 시사교양지 바이트에서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나중에 바이트는 신보라 의원에게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부모가 보내준 수험생활비는 그의 초기 정치자금이 됐다. 신 의원은 “서울 올라 와서 활동을 한 뒤 1년 지나고 부모님께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며 웃었다.
2011년 ‘청년이여는미래’를 설립한 신보라 의원은 2016년까지 이 단체 대표를 역임하며 우파의 젊은 피로 거듭났다. 청년단체대표로 청년일자리를 위한 노동개혁 촉구 청년 1만 명 서명운동, 산업화 세대 자서전 편찬, 천안함 대학생 추모 문화제 주최, 연평해전 영웅의 숲 조성 참여 등을 이끌어냈다. 특히 청년 1만 명 서명은 울림이 컸다. 2015년 11월 신 의원은 청년단체 및 총학생회 30여 곳의 동참을 이끌어내며 전국 대학가 청년에게 노동개혁 촉구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했다.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가 기성세대에게만 유리하다며 청년고용촉진과 노동시장 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시민단체 활동은 청년 문제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실제 법을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끝까지 가는 법이 없었다. 계속 막혔다. 그러던 차 다른 청년 단체를 이끌던 한 선배가 그에게 말했다. “너 국회의원 돼 보는 건 어떠냐.” 그에게 꼼수란 서울 유학 때 부모를 속인 게 유일했다.
신보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안 통과율은 19대와 20대 청년 비례대표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사진=임준선 기자
국회에 입성해 그에게 주어진 일은 산더미 같았다. 그는 일단 청년 일자리부터 챙겼다. 2016년 5월 30일 20대 국회 개원 첫날 당론 1호 법안인 청년기본법을 대표발의했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을 독립된 세대로 규정하고 청년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정의한 법안이다.
법안 통과는 쉽지 않았다. 이해관계에 있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많았던 까닭이었다. 그는 여야 가리지 않고 만나 하나씩 설득해 가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현재 이 법안은 정무위원회로 통합 이관돼 소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 빠르면 올해 통과되거나 내년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청년을 거쳐 엄마가 됐다. 난임으로 고생하다 결혼 7년 만에 시험관 아기 시술에 성공했다. 2018년 9월 13일 첫 아이를 가졌다. 이제는 청년에 이어 워킹맘을 챙겨야 할 의무가 생겼다. 우선 자신이 고생한 난임 관련 법안에 집중했다. 2018년 5월 11일 90일 동안 난임 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난임 휴가를 현행 3일에서 시술 받을 때마다 1일로 공무원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게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을 발의했다.
워킹맘이 돼 보니 진짜 불편한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는 “워킹맘을 해본 뒤 정치권으로 진입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실제 임신과 출산을 정치 활동 과정에서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더라. 이 어려움에 체감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정치권에는 확실히 없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며 “출산하면서 난 유저가 됐다. 문제의 디테일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집중하는 건 정부의 엄마 지원과 정보의 비대칭 사이 공간이다. ‘엄마’가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정부의 안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아이를 낳으면 정부는 내 출산 소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임산부가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뭐가 있는지는 도통 쉽게 알 수가 없다. 맘 카페에 가입하고 내가 직접 찾아야 하는 불편이 계속 따랐다. 복지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판단됐다. 엄마를 대변해 이 문제를 고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내려진 시급한 숙제는 돌봄 체계 보완이다. 그는 “기존 돌봄 체계에는 마의 2시간이 자리한다. 어린이집과 엄마의 퇴근 사이인 오후 4시부터 6시까지가 붕 뜬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아이를 가진 부모의 걱정은 줄어들 수가 없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법적인 보완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어린이집 종일반이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4시를 즈음해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법적 장치만으로는 그 2시간이 정확히 채워지지 않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외침은 공염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우린 말만 앞서는 정치인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발의’는 게으른 정치인에게 가장 좋은 거짓말 수단이 된다. 자신의 의정 활동을 포장할 때 발의만큼 좋은 수단이 없는 까닭이다. 신보라 의원의 발의 건수는 19대와 20대 청년 비례대표 평균 발의 건수 평균 1169.4건의 절반에 가까운 670건에 불과하다. 게으른 정치인 평가 방식으로 신 의원은 불합격이다.
하지만 발의는 중요하지 않다. 발의안이 실제 국회에서 통과돼 법안이 되거나 개정안이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건 가결 여부다. 특히 남의 발의에 숟가락 얹어 통과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표 발의가 진짜다. 신보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안 통과율은 19대와 20대 청년 비례대표 평균 통과율 4.85%의 2배가 넘는 10.47%다. 끝장을 보는 청년이란 소리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심요한 감독은 누구? 심요한 감독은 최근 충무로에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다. 1984년생인 그는 2011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형 광고 기획사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회사원 가운데 가장 자유분방한 광고업계도 그에게는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영화쟁이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향했다. 11월 14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이기인 시의원을 인터뷰하는 심요한 감독. 사진=이종현 기자 낭중지추, 그가 주머니를 뚫고 나온 건 2016년 일이었다. 그가 연출한 영화 ‘훌륭한 영화’가 2016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본선에 진출했다. 이듬해 서핑광인 그는 한국에서 생소한 서핑 영화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립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독립영화지만 배우 손종학과 신재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10년도 더 된 기아 레토나를 스스로 정비해 몰고 다니는 그는 영화진흥위원회 씬 원 아카데미 1기에 발탁돼 현재 영화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내년 2월 완성될 이 시나리오는 그의 첫 상업영화 도전작이 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