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살인’ 피해자 1명 유기징역 최고형, 5명 죽인 ‘진주 방화범’ 안인득 사형…오원춘·이영학·장대호·고유정은?
이번 재판에서 가장 주목된 점은 안인득의 유무죄가 아닌 사형 선고 여부였다. 안인득은 줄곧 자신의 조현병 병력을 내세워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범행 당시 심신미약이었다는 점을 이용해 감형받으려는 속셈. 안인득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68회에 걸쳐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안인득이 지난 4월 검찰로 송치되면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인득은 11월 27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창원지법 형사4부(이헌 부장판사)는 안인득의 조현병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범행의 잔혹성과 더불어 안인득이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도구를 사전에 사들여 불길을 피하려 내려오던 아파트 주민들을 흉기로 찔러 5명을 죽이고 4명은 살인미수, 2명은 상해, 11명은 화재로 인한 상해를 준 피해 결과는 매우 중대하다”며 “비록 사형이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과 피고인의 심리상태가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친 점을 부인하기 어렵더라도 법정최고형을 선고함이 맞다”고 강조했다.
안인득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을 흉기로 공격해 살해했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평소 악감정을 갖고 있던 주민들을 상대로 목, 가슴 등 급소만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칼과 휘발유를 사전에 구입해 범행을 도모했다고 전해진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 9명 가운데 8명은 사형, 1명은 무기징역 양형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안인득 변호사의 논리에 배심원들이 다소 흔들리는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지만 피해자들의 참담한 사진을 보고 다시 마음을 굳혔다고 전해진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나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뒤 시신을 356조각으로 토막 낸 ‘수원 토막 살인사건’ 오원춘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 받은 사례가 있어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80번 찔러 살해, 한 명 죽였기 때문에 사형 어렵다
또한 같은 날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80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가 2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으면서 흉악범에 대한 판결이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김성수가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공주 치료감호소로 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수는 2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심 판결을 유지해 김성수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검사는 1심에 이어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비교해 양형 조건의 변화가 없고, 1심의 양형이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존중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성수가 범행을 인정하고 후회하고 속죄하고 있지만 범행의 동기와 수법, 결과, 유족의 아픔 등을 고려하면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해 일반의 안전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상고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1심을 담당했던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환승 부장판사)가 지난 6월 4일 김성수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을 당시 형량이 가볍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남부지법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이 사건과 유사한, 예를 들어 피해자가 1명인 다른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무기징역은 과하다고 해 유기징역 최상한 형인 징역 30년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김성수가 1명을 살해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오원춘·이영학
‘수원 토막 살인사건’의 오원춘과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례다.
중국동포 오원춘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은 큰 충격을 안겨줬다. 오원춘은 2012년 4월 1일 수원 팔달구 못골놀이터 근처에서 28세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납치해 토막 살해했다. 오원춘은 당시 피해자 시신을 356조각으로 토막 낸 뒤 검은 비닐봉지 14개에 나눠 담았다. 피해자 장기는 훼손하지 않고 적출해 따로 보관해둔 상태였다.
1심 재판부는 ‘인육 매매 시도 혐의’를 인정해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를 종합해보면 ‘피해자를 강간하기 위한 의사 내지 목적뿐만 아니라 불상의 용도에 사체 인육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오원춘은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인육 매매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원춘에 감형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친구 딸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이 2017년 10월 13일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유가족을 향해 사죄 인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영학은 실제론 출소 후 유가족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이영학은 2017년 9월 딸의 친구를 서울 중랑구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추행하고 다음 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영학은 피해자의 시신을 강원도 야산에 유기했다. 난치병인 거대백악종을 앓아 1개의 어금니만 가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어금니 아빠’로 불렸던 이영학의 추악한 이면은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영학은 최후진술에선 반성한다며 선처를 구했지만, 출소 후 자서전 집필과 피해자 유가족에 복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이영학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장애를 가진 이영학이 치료를 받느라 중등교육을 이수하지 못했고 정서적·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왜곡된 가치체계를 지니게 된 점을 고려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장대호 “사형 달라” 항소, 고유정은 무기징역도 어려워
웃지 못 할 상황도 펼쳐졌다. ‘한강 몸통 시신’의 장대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항소했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된 것으로 보인다.
모텔 손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한 장대호가 지난 8월 21일 경기도 고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장대호는 반성의 기미는커녕 피해자에게 죽을 짓을 했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사진=연합뉴스
장대호는 올해 8월 8일 자신이 일하던 모텔에 온 투숙객을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토막 살해한 뒤 시신을 한강에 유기했다. 장대호는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언론 앞에 선 그는 피해자에게 “다음 생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한편 고유정은 전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손괴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엔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도 추가됐다. 고유정을 사형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고유정에게 사형은커녕 무기징역 선고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살인죄의 형량이 그리 높지 않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오고, 2심에선 감형될 가능성이 있다”며 “2인 이상의 불특정다수를 살해한 경우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사건이라고 해서 사형이 선고될 수 있다. 사체 유기 정도가 지나치게 잔인한 점은 고유정에게 불리한 양형요소가 되겠지만 의붓아들을 살해한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고유정의 경우엔 사형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흉악범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원지검 여주지청 원경희 검사는 올해 9월 강력범죄 전문검사 커뮤니티 세미나에서 “동기는 주관적 요소여서 명확하지 않다. 사전 계획 여부를 기준으로 ‘우발적 살인’, ‘계획적 살인’ 등으로 범죄 유형을 수정하고 동기는 참작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며 “생명 침해를 의도한 계획적 범행에는 기본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그보다 죄질이 중한 중대 범죄 결합 살인과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에는 사형 구형을 기본으로 해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