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포섭 남매 간 표 대결 vs 가족 갈등 봉합 경영권 방어, 전망 ‘팽팽’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면서 오는 3월 한진칼 주총에서 KCGI, 반도건설,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이 캐스팅 보트를 쥘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한진칼에 적대적인 KCGI, 총수 일가와 연대 가능성은?
지난 12월 23일 공시에 따르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7개월 만에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기존 15.98%에서 17.29%로 늘렸다. 델타항공의 등장으로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만큼 최근 가족 갈등이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경영권에 영향력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2월 23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원태 회장이 가족 합의 없이 경영했다고 비판하는 입장문을 낸 직후 KCGI는 한진칼 지분 추가 취득 사실을 공시했다. 금융투자(IB) 업계 관계자는 “입장문 발표 직후 공시한 것은 경영권 분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이자 자신을 필요로 할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KCGI와 조씨 일가 간 연대 여부에 대한 관측은 엇갈린다. 가능성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가족 간 감정의 골이 깊은 만큼 봉합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전제로,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각각 적극적인 세력 결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들 중 KCGI에 비수익성 사업 정리 등 그간 한진칼에 요구했던 사항을 이행하겠다는 등 협의안을 내놓으면, KCGI 입장에서도 주주가치 제고 등 목표와 일치하는 만큼 연대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을 쥔 만큼 KCGI 요구사항을 실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손잡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영권을 쥐었다는 점에서 사업 개편이 가능한 만큼 주총 전까지 계열사 기업가치 제고 전략 등을 적극 내놓지 않겠느냐”며 “여러 방안들이 보이는데도 주주를 설득해 경영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시장에선 조씨 일가 어느 누구도 경영권을 쥘 자격이 없다고 볼 것이다. 오너 일가 자체에 문제가 있으니 전문경영인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하면 KCGI 영향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로 목적이 다르고, KCGI가 한진 경영 참여를 위해 내세운 명분과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손잡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KCGI 입장에선 갈등 국면과 불확실성을 지속시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며 “반면 조 전 부사장은 지분 권리만큼의 경영권과 지위 보장이 목적으로, 한 배를 탈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KCGI는 방만 경영과 족벌 경영 등을 타깃으로 한진 일가와 싸워왔다”며 “조 전 부사장과 손잡는 순간 명분도 지지도 잃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주총은 오너 일가와 KCGI의 표 대결의 장이 될 거란 의견이 많다. 다양한 차원의 합종연횡과 가족간 갈등-봉합 과정이 반복되겠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한진 일가가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박주근 대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계열사 분리에 준하는 경영권 보장을 원할 텐데 조 회장은 경영권을 쥔 지 6개월밖에 안 된 입장에서 그룹사가 작아지는 결과를 원치 않을 것이기에 갈등 봉합은 쉽지 않다”면서도 “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카드는 가족 간 타협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협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황용식 교수도 “이명희 고문과 조원태 회장이 성탄절 다툼에 대해 사과문을 낸 것은 갈등을 봉합하기로 합의했다는 뜻”이라며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합의해 주총에서 경영권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KCGI가 투자자들의 돈을 굴리는 사모펀드 운용사란 점에서 투자 회수(엑시트)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KCGI는 델타항공 등장 이후 한진칼 주가가 급락하면서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증권사들도 투자를 꺼려하면서 고전한 만큼 주총 전까지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매각할 수 있다는 것. 지난 12월 말 주주명부 폐쇄기간이 만료되면서 조 회장의 한진칼 등기이사 연임을 결정하는 올 3월 주총 참석 주주명단은 확정됐기에, KCGI는 지분을 매각해도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엑시트하기는 힘들 것이란 반박 의견도 나온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그간 경영권 참여 이유로 내놓은 명분들이 다 무너지는 것이기에 이제 와서 회수하긴 힘들어 보인다”며 “엑시트가 목적이었으면 17.29%까지 지분을 늘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진칼 지분을 계속 늘리는 KCGI(강성부 펀드)와 반도그룹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조원태 회장. 사진=박정훈 기자
#지분 매집 가속도 내는 반도그룹, 목적은?
빠르게 지분율을 늘리는 4대주주 반도그룹 행보도 관심사다. 앞서 반도개발과 대호개발, 한영개발 등 반도그룹 계열사들은 지난해 10월 5.06%의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또 10~11월 2개월 동안 220억 원을 들여 지분 1.22%를 장중 매수해 총 지분율은 6.28%로 늘었다.
반도그룹은 지난 12월까지도 지속적으로 주식을 사들여 현재 9%가량의 지분율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타법인으로 분류된 매수 주체는 지난해 12월 동안 한진칼 주식 총 168만 7992주(2.85%)를 사들였다. 기타법인은 투자 주체 중 기관투자자가 아닌 일반 회사를 의미한다. 지난 11월에도 매수 주체로 등장한 기타법인이 반도그룹 계열사였다는 점에서 IB업계에서는 이번에도 반도그룹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반도그룹을 조원태 회장의 요구에 따라 지분을 매집하는 우호세력으로 보고 있다. 반도그룹 계열사 반도건설은 과거 한진그룹의 일감을 많이 수주하면서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고 조양호 전 회장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며 고 조 회장의 측근들을 포섭한 만큼, 반도건설은 조원태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조 회장이 반도그룹 측에 지분 매입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그룹은 과거 고 조양호 회장 시절 한진그룹과 우호관계에 있던 기업으로, 이번 지분 매입은 조원태 회장이 요청해서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어느 쪽 우호세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고 조양호 회장 시절 우호관계에 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쪽 사람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지금은 어느 편이라고 예측하기 힘들다”고 했다.
다른 주주들 행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델타항공은 조 회장 측 세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부사장이 최근 사장으로 승진하며 조원태 체제 아래 편입된 것이 하나의 이유다. 우기홍 사장은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조인트벤처 설립 및 델타를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주근 대표는 “우 부사장은 조 회장과 델타항공의 연결다리였던 인물”이라며 “최근 임원 인사에서 그 공을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하며 조원태 체제 아래 편입된 만큼 델타는 조 회장 측에 설 것”이라고 했다.
총수 일가 지분 다 합쳐도 30% 넘지 못하는 만큼 국민연금과 외국인·일반 투자자 등 지분율 37.49%의 기타주주 영향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민연금 결정은 기타주주에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 있다”며 “국민연금과 KCGI는 한진 오너 일가에 불만이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데 대해 공감하는 만큼 한진 일가는 기업가치 제고와 혁신 방안들 내놓고 대한항공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