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끼고 보는 구단들, 에이전트로 돈 벌기 어려워…현실적 규약 있어야”
야구단 운영에 대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인기를 끌며 에이전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스토브리그 포스터
KBO 리그는 2018년부터 공인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2017년 12월 1회 KBO 공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치른 이래 2019년 12월까지 총 3차례 실시됐고, 153명이 공인 에이전트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렇다면 153명의 에이전트가 모두 KBO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까.
에이전트 합격자 중 65명이 변호사로 알려졌는데 변호사는 자신의 본업이 있는 터라 에이전트 업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에이전트를 본업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KBO 리그 진입 장벽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인 에이전트 A 씨는 에이전트 자격증을 획득했다고 해서 곧바로 선수 관련 일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선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게 아니다. 지인들을 통해 선수 소개를 받지 않는 한 야구장 출입조차 못하고 자격증을 잃을 수도 있다. 선수를 만날 기회가 있어야 에이전트 업무를 소개하고 홍보할 수 있는데 지인 찬스를 쓰지 않고서는 선수와 계약 자체가 어렵다. 더욱이 에이전트는 야구장 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직접 티켓을 구입해야 들어갈 수 있다. 야구장에 출입할 수 있는 카드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와 지속적으로 맞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스타플레이어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에이전트 B 씨는 에이전트를 대하는 구단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일부 구단은 에이전트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구단이 데리고 있는 선수를 대리하면서 관리해주는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많다. 즉 파트너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팀의 핵심 선수를 대리하고 있다고 해도 구단이 에이전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수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선수는 ‘개인사업자’다. 즉 구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수를 구단 소유로 인식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드림즈 구단 스카우트 팀장으로 활동하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퇴출된 고세혁(이준혁)이 에이전트로 변신해 백승수 단장(남궁민)과 연봉 협상을 벌이며 갈등을 빚는 장면이 전개됐다. 에이전트 B 씨는 현실과 드라마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KBO 리그 대부분 팀은 선수와 연봉 협상 때 처음 책정한 액수에서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편이다. 에이전트가 아무리 선수한테 유리한 자료를 준비해서 구단 관계자에게 제시한다고 해도 그들은 꿈쩍도 안 한다. 계약이 늦어질수록 선수한테 불리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구단의 의지대로 사인할 수밖에 없다. FA 선수가 아닌 이상 구단과 계약을 맺지 못하면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스타플레이어를 두고 있다고 해서 구단 상대로 큰소리치며 ‘갑’ 행세를 하는 에이전트는 한 명도 없다고 본다.”
수도권 팀의 간판스타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에이전트 C 씨는 돈을 벌기 어려운 수익 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전트가 선수를 대리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선수 연봉 수수료가 대부분일 것이다. KBO 규약상 수수료를 5% 이상 받기 힘든 탓에 선수 연봉이 1억 원이라고 할 경우 에이전트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는 500만 원이다. 그 500만 원으로 선수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KBO 규약 제42조에 의하면 ‘대리인은 동시에 구단당 선수 3명, 한 에이전시가 총 선수 15명을 초과하여 대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즉 개인인 에이전트 1명이 선수 3명을 대리할 수 있고, 회사인 에이전시는 15명까지 확보할 수 있다. 수십억,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를 데리고 있다면 이러한 규약이 현실성 있어 보이지만 1억 원 이상의 선수 3명이 전부인 회사는 수익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에이전트 C 씨는 처음에 선수 연봉의 수수료를 1억 원 이상의 선수들을 상대로 3%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선수 연봉의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수수료 문제로 일부 선수들과 오해를 쌓이면서 수수료 없이 다른 수익 모델을 찾아 나섰는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상태라고 토로한다.
프로야구 비시즌 동안 야구인들의 관심사는 FA 계약이다. FA 선수들은 에이전트한테 협상을 맡기고 운동 및 개인 활동에 전념하는데 올해 몇몇 선수들은 협상 중간에 에이전트를 해고하고 자신이 직접 구단과 협상 테이블에 나섰다.
가장 관심을 모은 이가 최근 롯데와 4년 계약에 성공한 전준우. 전준우는 롯데와 4년 총액 34억 원(계약금 12억 원+연봉 20억 원+옵션 2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FA 최대어로 꼽혔던 전준우는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에이전트를 해임하고 자신이 직접 협상에 나섰고, 마침내 롯데와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전준우의 에이전시는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이 운영하는 디앤피파트너였다. 앞에 언급한 에이전트 B 씨는 전준우 사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단과 선수가 만나면 ‘정’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구단과 에이전트는 감정적인 요인이 배제된 채 비즈니스로만 접근하니 협상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걸 못 참는 선수는 중간에 에이전트 없이 자신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선수들이 이런 마인드라면 KBO 리그에서 에이전트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B 씨는 “구단과 난상 토론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 있는 에이전트가 나와야 한다”면서 “현실감 없이 뜬구름 잡는 식으로 구단 관계자를 상대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B 씨는 FA였던 오지환(LG)의 에이전트가 자신의 SNS에 ‘오지환은 LG 선수로 남고 싶어 6년 계약을 제시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았던 일을 예로 들었다. 구단과 비밀리에 진행한 협상 내용을 개인 SNS에 올린 행동은 프로답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B 씨는 답답한 에이전트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KBO 리그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는 게 쉽지 않다. 톱 레벨로 꼽히는 일부 에이전트를 제외하고 수익 구조를 찾기도 요원하다. S급으로 꼽히는 선수가 두세 명 정도는 있어야 겨우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할 정도다. KBO리그에서도 에이전트 제도를 유지하고 싶다면 현실적인 규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답이 안 보이는 상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1년 갱신료만 55만 원’ 에이전트 제도 개선 필요성 1회 KBO 공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획득한 D 씨는 최근 고민이 많다. 공인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하면 1년마다 55만 원을 내고 자격증을 갱신해야 하는데 2년 동안 선수를 단 한 명도 계약하지 못해 자동 해지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참고로 D 씨는 스포츠 마케팅 관련 회사 소속이다. “처음에는 회사 차원에서 야구 마케팅 강화를 위해 몇몇 직원들에게 에이전트 자격증을 획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한두 달가량 밤을 새워가며 공부한 덕분에 공인 에이전트 자격증을 받았지만 에이전트 1명당 선수 3명만, 한 에이전시당 15명을 초과하지 못하게 한 규정 탓에 회사는 아예 야구 마케팅 사업을 접고 말았다. 자격증을 놓치는 게 아까워 1년 갱신할 시기에 개인 비용으로 자격증을 재취득했는데 2년 동안 선수가 없으면 자동 해지되는 터라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축구, 골프와 달리 야구는 수익 모델을 찾기 어렵다. D 씨는 “류현진 급 선수가 아니면 광고 찍기 어려울 정도”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에이전트로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임에도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하면 당장 큰 수익을 낼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실 인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무래도 에이전트 자격증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게 자랑스럽고 행복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다. 서글픈 현실일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
한국의 ‘슈퍼 에이전트’ 이예랑 대표를 아시나요? 2019년 양의지(NC) 4년 125억 원. 이재원(SK) 4년 69억 원. 2020년 안치홍 계약기간 2년 최대 26억 원(바이아웃 1억 원), 2022~2023년 2년간 상호 옵션 최대 31억 원. KBO 리그 시장의 FA 계약의 판도를 쥐고 흔든 이가 있다. 이들의 계약을 이끌어낸 이예랑 리코스포츠 대표다. 이 대표는 이들 외에 김현수(LG), 박병호(키움)의 메이저리그 행을 도우며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자랑했고, 서건창(키움), 박건우 오재일 허경민(두산), 우규민 정의윤(삼성) 등 다수의 스타플레이어들을 회사 고객으로 두고 있다. 리코스포츠 이예랑 대표(가운데)와 박병호(왼쪽), 김현수. 사진=리코스포츠 제공 “선수들 재테크나 세금 관련해서 도움을 주다가 직접 일을 시작하게 됐고 첫 고객이 김현수 선수였다. 그가 더 넓은 무대에서 야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메이저리그 행을 추진했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거기서 나온 수수료가 회사의 운영비로 쓰였다. 그래서 종종 김현수 선수에게 ‘회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수와 에이전트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 물론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선수들은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편이다. 그들의 특징, 감정선을 잘 이해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대부분 에이전트가 남성인 상황에서 여성 에이전트의 장점이 이런 감정선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모든 부분을 비즈니스로 대하지 않고 때로는 누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선수와 소통할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필요하다. 선수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면 더 큰 기쁨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형성이 가능할 때 ‘패밀리’가 되는 것 같다.” 리코스포츠도 처음에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이끌어갔던 건 이 대표를 보고 손을 내미는 선수들 때문이었다. “KBO 규약상 모든 선수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진심으로 우리 회사를 필요로 하는 선수가 있다면 우리도 손을 잡는다. 현재 KBO 리그는 에이전트가 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시장의 규모도 작고, 규제도 많다. 하루 빨리 KBO 리그의 에이전트들이 리그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