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원 넘는 고가주택 소유자 전세대출 규제…무주택 임차인 주거비 부담 ‘나비효과’ 우려도
지난 20일부터 9억 원 이상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SGI서울보증의 전세대출 보증이 전면 제한되는 등 고강도 전세대출 규제가 시작됐다. 서울 한 아파트단지 야경.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20일부터 9억 원이 넘는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SGI서울보증의 전세대출 보증이 전면 제한됐다. 추가 대출(신규 대출)이 대상이다. 기존 대출에 대해서는 1회에 한해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 이미 전세 대출을 받아 거주 중인 경우에는 당장 회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고가주택 보유자 가운데 전세로 이사를 계획하던 이들이다. 강북에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해도 신규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기존 주택을 팔지 않고 전세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는 강북 아파트에 전세를 주고, 그 보증금으로 강남 전세를 얻는 것이다. 강남은 재건축 대상이지만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부담금 등 규제로 사업을 주저하는 곳이 많아 집값 대비 전세가율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보유세 부담이 높아진 데다 학군 관련 이주 수요까지 늘면서, 강남 전세도 오름세다. 소유한 집의 전세금이 강남 전세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이 경우 반전세, 즉 전월세를 활용하면 된다. 전세 보증금의 월세 전환비율은 대체로 4.0% 안팎(1억 원당 35만~40만 원)이다. 예컨대 2억 원가량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월 부담은 70만~80만 원이다. 연간 1000만 원 상당의 현금 부담이지만 자녀교육 기간인 2~3년만 감수하면 된다.
주택 관련 대출이 아닌 신용대출로 전세 보증금 부족분을 메우는 방법도 있다. 9억 원 이상 주택을 보유하고 교육 목적으로 이주할 정도의 형편이면 신용등급이 상위권일 가능성이 높다. 신용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이자율은 높지만 억 단위 조달도 할 수 있다.
집 주인들 입장에서는 공시가격 인상과 공정가액비율 상향으로 보유세 부담도 계속 높아진다. 매년 현금으로 내야 한다. 집 주인 입장에서는 세 부담만큼 현금 확보가 필요하다. 전월세 또는 월세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월세 소득이 있으면 임대소득 세금 부담이 발생한다. 올해부터는 연간 2000만 원이 넘지 않는 주택임대소득에도 조건에 따라 세금이 부과된다.
서울의 한 상가건물 공인중개사무소 앞에 붙어있는 부동산 매물표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고성준 기자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대책들이 무주택 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을 높이는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2월쯤 전세 시세 조정, 월세 전환 등 주택 임대차 계약 전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강남뿐 아니라 강북 등 서울 전역이 영향권일 수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부작용 가능성을 예상한 듯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본 2년인 전·월세 계약기간을 사실상 4~6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세입자가 원할 경우 계약기간을 한 차례 연장하는 임대차 계약갱신 청구권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세입자의 권리 강화다.
하지만 도입 과정에 적지 않은 진통도 예상된다. 계약 연장 때 전·월세 가격 인상폭 한도를 얼마로 할지를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입장이 대립될 게 빤하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약갱신 시 무조건 한도까지 꽉 채워 올릴 수밖에 없다. 또한 한도를 정하는 게 헌법상 재산권 침해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불법 위장전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일단 주민등록을 이전한 뒤 학군 배정 때까지 기다리다 이후 통학시키는 방법이다. 저렴한 빌라나 원룸 등이 대상이다. 단기 이주를 위해 학기 초 월세 수요가 집중되며 세입자들에 임대료 인상 등의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