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리캡 어기면 사치세 내야, 등급제 도입으로 보상규정 완화…선수협 “보상선수 완전 폐지해야” 여전히 불만
KBO 리그 FA 제도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KIA 타이거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2020시즌 FA 대어 안치홍. 사진=박정훈 기자
#새로 시행되는 FA 등급제 상세 내용은?
신규 FA는 기존 FA 계약자들을 제외한 선수들의 최근 3년 평균 연봉과 평균 옵션 금액으로 순위에 따라 등급을 나눈 뒤 아래 등급일수록 완화된 보상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이전까지는 선수의 나이나 경력, FA 자격 취득 횟수, 주전 혹은 비주전 여부 등에 관계없이 KBO 규약 제172조 ‘FA 획득에 따른 보상’ 조항이 모든 FA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됐다. 다른 팀으로 FA를 보낸 원 소속구단은 선수를 데려간 구단으로부터 그 선수의 직전 시즌 연봉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상대 구단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양수하거나 연봉의 300%에 해당하는 금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처음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구단 내 연봉 3위 이내와 리그 전체 연봉 30위 이내인 A등급 △구단 내 연봉 4~10위와 전체 연봉 31~60위인 B등급 △구단 내 연봉 순위 11위 이하와 전체 연봉 순위 61위 이하인 C등급으로 각각 분류된다. 이 가운데 A등급 선수를 영입하는 구단만 기존 보상안과 마찬가지로 전년도 선수 연봉의 300% 현금 또는 보호 선수 20인을 제외한 선수 1명과 연봉 200% 현금을 원 소속팀에 보상해야 한다. 반면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원 소속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를 25명으로 늘리고 보상 금액도 전년도 연봉의 100%로 완화했다. C등급 선수는 보상선수를 내줄 필요 없이 전년도 연봉의 150%만 보상하면 된다.
2021년부터는 구단 연봉 순위와 전체 연봉 순위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해당 등급 안에 편입될 수 있다. 만약 팀 내 연봉 순위가 3위 이상이라 해도 전체 30위 안에 들지 못하면 A가 아닌 B등급으로 내려간다는 얘기다. 다만 올해는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새 제도가 시행되는 점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전체 연봉 순위 30위 이내 선수는 모두 A등급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2020시즌 직후 주전 선수들이 대거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두산 베어스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두산의 예비 FA 후보는 김재호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이상 내야수)과 정수빈(외야수) 그리고 권혁 장원준 유희관 이용찬(이상 투수)이다. 이들 가운데 신규 FA는 오재일 최주환 허경민 정수빈 유희관 이용찬 총 6명. 모두 팀 전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들이다.
한시적 예외 조항이 없었다면, 신규 예비 FA 6명 가운데 팀 내 연봉 순위 3위 안에 드는 선수는 투수 유희관뿐이다. 그러나 리그 전체 연봉 순위로 집계하면 6명 모두 A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다. 내부 FA를 모두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두산 입장에선 보상 선수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두산은 등급제 즉시 적용에 동의하는 대신, 새 제도의 최대 피해자로 남을 뻔했던 위기를 넘겼다.
이 외에도 35세 이상 선수가 새로 FA가 됐을 때는 연봉 순위와 관계없이 C등급을 적용해 선수 보상 없이 이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FA 자격을 두 번째로 얻은 선수는 신규 FA B등급과 동일하게 보상하고, 세 번째 이상 FA 자격을 따낸 선수는 C등급과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사치세’ 개념으로 도입된 샐러리캡과 FA 기간 단축
다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FA 기한 단축은 올 시즌 직후가 아닌 2023년 시행으로 미뤄졌다. 기존 FA 자격은 고졸 선수 9시즌, 대졸 선수 8시즌 충족이 조건이었다. 이제는 2022시즌이 끝난 시점부터 고졸 선수가 기존의 9시즌이 아닌 8시즌을 채워도 FA 자격을 얻는다. 대졸 선수는 8시즌이 아닌 7시즌을 채우면 FA가 될 수 있다.
동시에 구단 비용 절감과 전력 평준화에 초점을 맞춘 샐러리캡 제도 역시 FA 기간 단축 시기와 동일하게 2023시즌부터 도입된다. 2021년과 2022년의 각 구단 연봉 상위 40명(외국인선수와 신인선수 제외) 평균 금액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한액으로 설정했다. 샐러리캡 대상 선수를 40인으로 한정한 까닭은 구단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2군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저연봉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일단 2023년부터 이 샐러리캡 기준이 3년간 유지된다. 만약 상한액을 1회 초과하면 초과분의 50% 제재금, 2회 연속 초과하면 초과분의 100% 제재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3회 연속 초과하면 초과분의 150% 제재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의 제재를 내린다.
지난 연말 선수협이 샐러리캡 도입 추진 움직임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총액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하드캡’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처럼 기준선 초과시 사치세(부유세)를 내는 ‘소프트캡’ 형태로 도입해 반발의 여지를 없앴다. 상한액 초과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되 거액 투자가 꼭 필요한 팀은 제재금 손해를 감수하고 그 이상의 금액을 지출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뒀다는 의미다. 지난해와 올해 팀 연봉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샐러리캡을 초과한 팀은 롯데 한 구단에 불과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FA 기간 단축과 샐러리캡 모두 시행 시기가 3년 정도 미뤄졌을 뿐 전체적으로는 선수들의 권익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 변경이 이뤄졌다”며 “FA 제도 도입 21년 만에 등급제가 도입되고, 최저 연봉도 27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인상되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나. 앞으로 KBO 리그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KBO의 FA 제도 개선에도 선수협은 “보상선수 제도를 완전 폐지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이대호 선수협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보상선수 완전 폐지’ 요구하는 선수협의 반발
그러나 선수협의 생각은 달랐다. 이사회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 공식 의견문을 내 “KBO가 최종적으로 제안했던 개정안과 다르게 전혀 상의되지 않은 내용을 추가안으로 상정해 발표한 부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운찬 KBO 총재가 2020년 신년사에서 ‘선수와 구단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꾸준한 만남과 소통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폐쇄적인 밀실 행정으로 통보받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보상선수 자체를 폐지해달라는 단 한 가지 요청을 했지만 KBO는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았고, 여전히 A등급과 B등급 FA 이적시 보상 규정에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게 항의의 골자다. 또 FA 취득 시기 단축과 관련해서도 “2021시즌 종료 후로 1년 더 앞당긴 수정안에 찬성했을 뿐 2022시즌 이후는 너무 늦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BO와 구단 측은 “보상선수 제도 전면 폐지는 논의조차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A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A등급 FA가 보상선수 부담 문제로 이적을 못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B등급 FA 역시 보호선수를 20인이 아닌 25인으로 늘리기만 해도 내보내야 하는 선수 수준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그리 큰 부담은 없다”며 “주요 즉시 전력을 다른 팀으로 보내면서 유망한 선수 한 명도 데려올 수 없다면, 결국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구단만 계속 강해지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도입 시기와 관련해서도 이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방 B 구단 단장은 “당초 선수협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FA 기간 단축을 시행하려 했지만, 구단 예산 확보와 선수 구성 계획을 세우는 데는 최소한 2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사회에 안건을 올리기 전 실행위원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 토론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결론적으로는 각 구단 예산과 관련된 문제라 당장 올 시즌 이후 도입은 어렵다고 봤다”고 전했다.
류대환 총장 역시 “FA 기간 단축을 올 시즌 직후 바로 시행하면 예상치 못했던 선수들이 FA 시장에 쏟아져 나와 각 구단의 예산 확보와 조정에 큰 혼란이 생긴다. 선수 입장에서도 너무 많은 FA와 경쟁해야 하면 결국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게 된다”며 “샐러리캡과 병행하기 위해서는 경영상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대신 사치세 개념으로 시행해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협은 일단 전 구단 스프링캠프가 끝난 3월 이후 이사회를 열어 KBO의 개선안 거부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엄밀히 말해 KBO 이사회는 제도 개선 때 선수협 동의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다. 선수협에 개선안 검토를 요청하고 의견을 들어본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도의적으로 선수협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채 구단들의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일을 피하려 했을 뿐이다. 향후 선수협의 결정과 양측의 시각 차이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한편 각 구단은 샐러리캡 도입과 동시에 외국인선수 샐러리캡도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 구단이 외국인 선수 3명과 계약할 때 지출할 수 있는 최대 비용은 연봉, 계약금, 옵션, 이적료를 포함해 400만 달러로 제한된다. 전체 샐러리캡과 달리 절대 상한액을 넘어서는 안 되는 ‘하드캡’을 적용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