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주자 홍콩 거쳐 입국 검사 대상 제외, 자진신고하자 “자가격리 하시라”…우여곡절 끝 음성판정 ‘불안감’ 여전
A 씨(39)는 2월 5일 일요신문에 “우한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증상자임에도 적절한 응대를 받지 못했다”고 알려왔다. 중국 광저우와 홍콩, 마카오를 거쳐 입국한 A 씨는 “기내에서부터 발열 증세가 있었으나 열 화상카메라에 감지되지 않았고 결국 자진신고를 통해 검역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보건소에 연락했지만 우한 방문자가 아니니 자가격리만 잘하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도 했다. 의심 증세가 나타나 검사를 요청했지만 제3국 입국자로 검사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를 당했던 16번째 확진자와 같은 상황이다.
인천공항 내 검역대. 사진=연합뉴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중국 광저우에 거주하던 A 씨는 1월 24일 버스를 이용해 홍콩으로 이동했다. 광저우 역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던 까닭이다. 이후 A 씨는 페리(홍콩과 마카오 사이를 운행하는 정기선)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한 뒤 1월 30일 제주항공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입국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공항에서는 중국발 항공기 탑승자와 그 외 탑승자를 나눠 입국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항 직원은 A 씨를 중국 외 지역 탑승자 줄에 세웠다. A 씨가 자진해서 광저우 방문 이력을 밝히고 나서야 직원은 A 씨를 이동시켰다. 이에 대해 A 씨는 “사실 중국 방문자 가운데 다수가 버스나 비행기를 통해 홍콩, 마카오로 이동해서 국내로 입국하고 있다. 그에 비해 검역이 너무 허술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옮긴 줄에서도 열 화상카메라는 A 씨를 이상 없이 통과시켰다. A 씨는 이미 기내에서부터 발열증상을 느끼고 있었다. A 씨는 이번에도 직접 검역관을 찾아 재측정을 요구했다. 검역관이 수동으로 체온을 측정한 결과 37.7℃가 나왔다. 자가격리 기준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애당초 열 화상카메라는 37.5℃ 이상의 체온을 가진 사람을 감지하도록 되어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실망스러운 일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귀가 이후 보건소로부터 연락을 받긴 했으나 그 누구도 A 씨의 이동 경로나 확진 위험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A 씨는 “담당자에게 ‘직장이 광저우 대형병원 인근에 있었고 매일 병원 안에 있는 지름길을 통해 출퇴근을 했다’고 밝혔다. ‘직장 인근 지하철역은 우한 이후 최초로 봉쇄된 곳’이라고도 말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A 씨가 당시 한인들 사이에 도는 자료를 통해 본 봉쇄된 역 인근 확진자는 무려 22명이었다. 참고로 2월 6일 기준 광저우 지역 확진자는 249명이다. 확진 위험성에 대해 당사자는 충분히 밝힌 셈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자가격리 기간에도 A 씨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 사이 설사와 구토 증상이 추가됐다. 집에 어린 자식이 있어 걱정이 됐던 A 씨는 다시 한번 보건소에 몸의 통증과 확진 위험성을 강조했으나 소용없었다. 우한 방문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검사는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지침상 기타지역 방문자의 경우 호흡기 이상과 폐렴 증상, 37.6℃ 이상의 발열이 계속되는 등의 상태 악화가 있어야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A 씨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에게 “언론 보도 내용과 질본의 대응에는 다른 내용이 굉장히 많다.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알리자 그제야 A 씨의 신상과 증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검사에서 A 씨는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확진자 가운데 음성 판정을 받고도 이후 양성으로 바뀐 사례가 있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다.
A 씨는 일요신문에 “이번 사태를 겪으며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의 안일한 대응에 실망했다”며 “우한 방문자가 아니면 유증상자는 확진 여부도 알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선별 진료소와 큰 병원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확진자였다면 검사 지연으로 인한 가족 간 전염의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지, 최대한 조심했으나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 진료소와 병원을 찾아 다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16번 확진자 발생 이후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례 정의와 검역망 확대를 검토 중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원인불명 폐렴 발생 시 중국 여행력이 없더라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