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숙명여대 사태 음지서 양지로 돌출…군 외엔 법령도 규정도 전무, 성별 정정도 판사 재량에 좌우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은 기간을 여군으로 보내고 싶다”는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논란의 시작은 한 부사관이 휴가 기간 동안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왔다는 보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의 주인공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실명까지 밝히고 나선 변희수 전 하사는 군 인권센터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남은 기간을 여군으로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변 전 하사는 법적 성별 정정을 통해 복무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육군은 1월 22일 변 전 하사에 대해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사유는 심신장애 3급 판정으로 인한 신체 기준 미달이었다.
22세의 나이로 숙명여자대학교에 최종 합격한 A 씨도 마찬가지다. 논란은 더욱 거셌다. 성전환 수술 후 성별 정정까지 마쳐 이미 법적으로는 여성이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A 씨의 입학에 대한 찬반 투표까지 열렸다. 결국 A 씨는 입학을 포기하고 재수를 결정했다.
오랜 기간 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사회 진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트랜스젠더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목소리를 내는 이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들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변 전 하사나 A 씨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트랜스젠더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사회가 쌓아온 질서와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실재하는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법령이나 규정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그나마 관련 규정을 갖춘 국가기관은 군이다. 신체적 능력이 중요한 군인의 경우,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업무 수행능력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군에서 지정한 트랜스젠더 관련 규정에 따르면 의무복무를 하지 않은 남성이 성전환 수술을 해 여성이 될 경우 면제대상이 된다. 만약 현역 의무복무를 마치고 성전환 수술을 한다면 병역법에 따라 예비군 훈련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할 경우에는 현역이 아닌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된다. 전시근로역은 병역판정검사 신체등위 5급으로 현역 복무는 할 수 없으나 군사지원업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결정된 사람을 말한다.
상당수 국가의 경우 트랜스젠더 군인이 존재한다. 미국 트랜스젠더 평등센터(NCTE)에 따르면 현재 1만 5000여 명의 트랜스젠더가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복무 금지 조항을 발표하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어난 바 있으나 각 법원은 이 금지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193개의 유엔 회원국 가운데 오스트리아, 벨기에, 호주, 볼리비아, 캐나다,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영국 등 18개국에서 성 소수자의 군 입대를 허용하고 있다. 즉 관련 규정과 법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군 외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놓은 국가기관이 없다. 성전환 수술 이후 인사이동을 원하거나 부당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이에 대한 해결책 등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사 내규마다 차이가 있지만 상당수의 일반 기업에서는 성 정체성과 관련된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국내에 있는 일부 외국계 회사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에 대한 금지 조항’을 두고 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국가기관이나 일반 기업에 트랜스젠더 근로 관련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논의 대상조차 아니었을 것”이라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법은 현재로서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 정도다. 이마저도 해고자가 ‘나는 트랜스젠더를 차별했지. 남녀를 차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면 변호하기 복잡해진다. 이외에도 고용노동부에서 성차별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다. 사회적 성 정체성인 젠더(Gender) 관련 별도의 규정이나 법령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성별 정정에 대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2006년 성전환자 인권실태 조사단 설문조사 결과 트랜스젠더 78명 가운데 68%가 ‘성별 변경에 대한 법안 마련’을 가장 필요한 사회 정책으로 꼽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든 성별 정정은 법원 내 행정규칙 가운데 하나인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처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예규 역시 지침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노동자연대 성지현 활동가는 “성별정정허가는 사실상 판사 개인의 재량에 달려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떤 가치관을 가진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별 정정 가부가 나뉘기도 한다. 마치 ‘뽑기 운’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성별 정정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는 지방법원에 대한 정보가 오가기도 했다.
그에 비해 외국은 성별 정정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스웨덴은 1972년 유럽 최초로 성별의 확정에 관한 법률을 의결했다. 판단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청자의 주관적 의사이며 성기 외형 수술을 필수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영국도 본인의 의지가 2년 이상 확고하다면 18세 이상 미혼에 한하여 성기변형 수술 없이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 특히 독일은 2013년부터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구분을 폐기해 출생신고 시 성별을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일각에서는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성별 정정이나 성 전환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면 외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최근 성전환에 우호적이었던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성전환 수술 및 호르몬제 남용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들을 위한 정신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상담을 받는 청소년들의 연령대는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고 모두 상담을 통해 수술 여부나 호르몬 치료 등을 결정한다.
문제는 만 3~4세의 어린 아이에게도 호르몬제가 여과 없이 지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NHS 직원은 지난 1월 런던타임스 인터뷰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에게 호르몬 치료는 과도한 조치였다. 성 정체성 혼란으로 치료를 받은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성인이 된 뒤 그들의 생물학적 성으로 되돌아가길 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2019년 10월 영국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후회하는 트랜스젠더들의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 트랜스젠더를 위한 논문 번역 활동을 하고 있는 키미 씨(예명)는 “트랜스젠더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과거 미국의 원주민들은 트랜스젠더를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름 짓고 함께 생활했다.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리도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법와 제도를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성별 고정관념 강화시키는 성별 정정 절차의 씁쓸함 성별 정정 허가를 받기 위한 과정은 까다롭다. 현행 지침에 따르면 성별 정정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만 19세 이상의 행위능력자로 △사회생활상 전환된 성으로 살고 있고 △혼인 중이 아니면서 △의료적으로 2인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의 정신과 진단이 있으며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전환된 성으로의 외부성기 성형수술 등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는 부모 동의서도 필요했으나 해당 조항은 2019년 삭제됐다. 실제 경험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련의 절차들은 법정이 아닌 법원 내 작은 회의실에서 진행된다. 신청자와 판사 그리고 법원 직원 등 많지 않은 사람이 참여한다. 어려움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신청자는 판사 앞에서 정정하고자 하는 성별로서의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예컨대 남성으로 성별을 정정하고자 하는 여성은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으며 좋아하는 색깔은 초록색이고 축구 등의 스포츠를 좋아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보증할 수 있는 증인도 두 명 이상이 필요하다. 이를 인우보증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다. 일요신문이 만난 복수의 트랜스젠더들은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정 승인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렇다보니 점점 더 사회가 규정해놓은 여성성, 남성성의 틀에 맞춰 행동하게 되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