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력과 접촉력이 기준, 단순 감기·두통·소화불량 돌려보내…“감염보다 동선공개와 비난이 더 공포”
2월 18일 영남권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가 한동안 주춤했던 시기에 불현듯 나타난 확진자였지만 그리 놀라운 뉴스는 아니었다. 다음 날인 19일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신도로 밝혀졌다. 접촉자만 166명이란다. 하루 만에 확진자가 51명으로 늘어났다. 20일, 자고 일어나니 확진자 수 단위가 바뀌었다. 104명이다. 어째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23일에는 확진자가 600명을 넘겼다. 문득 기자는 2월 11~12일까지 취재 차 대구로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떠올랐다.
코로나19 선별진료안내소를 찾은 시민들이 보건소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2월 24일 오후 12시 서울시 중구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 앞 풍경은 흡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속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한 의료진들은 방역복을 입었다기보다는 뒤집어 쓴 모습에 가까웠다. 이들의 발목에는 방역용 발토시가 두툼하게 묶여있었다. 아직 착용감이 익숙하지 않은지 한 의료진이 보건소 외부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뎠다. 의료용 고글에 김이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행동이 느려졌다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보건소 앞, 건물로 향하는 길목에는 ‘선별진료소’ 표시가 붙은 몽골 텐트가 세워져 있었다. 다행히 뉴스에서 본 것처럼 길게 늘어선 줄은 없었지만 4~5명이 텐트 주변을 서성거렸다. 비닐 가운을 두른 직원 두 명은 보건소로 들어가려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어쩐 일로 오셨냐”고 묻고 있었다. 직원에게 다가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곧장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검사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든 방문자의 기록을 남기는 듯했다. 옆에선 먼저 온 시민이 다른 직원에게 자신의 증상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체온을 재고 증상을 묻는 직원에게 “최근 대구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일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고 하니 “역학조사를 통해 검사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례 정의를 늘리겠다는 정부지침이 떠올랐다. 직원은 이틀 동안의 동선, 이동수단, 만난 사람, 이후 증상과 약 복용 여부 등을 꼼꼼히 묻더니 “잠시 기다리시라”며 다시 몽골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짧은 회의가 열렸다. 곧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고 접촉한 인원이 많으므로 검사를 받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검사를 위한 검체 채취는 보건소를 중심으로 양쪽에 마련된 검사실에서 진행됐다. 일단 검사를 하고 나면 소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양쪽을 번갈아가며 쓰는 듯했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서 5분쯤 기다리니 커다란 고글을 쓴 의료진 2명이 다가와 텐트 오른편에 마련된 검사실로 안내했다. 의사는 문진표를 보며 이름을 포함한 간단한 신상정보를 확인하는 동안 또 다른 1명이 검진 키트 포장지를 빠르게 벗겨냈다.
코로나19 검체 채취키트. 사진=연합뉴스
상기도 검체 채취는 독감 검사와 유사했다. 기존 면봉 2개를 이어 붙여 놓은 길이의 얇은 멸균 면봉을 각각 코와 입에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의사가 “괜찮다”는 말과 함께 기다란 면봉을 코 뒤쪽으로 쑥 밀어 넣었다. 눈이 질끈 감겼다. “충분히 채취해야 하니까 더 내려 갈게요”라는 말과 함께 면봉이 더 깊숙이 들어왔다. 면봉이 회전하며 내려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코 안쪽이 찡 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좀 전에 뱉지 못한 가래가 나올 것 같았다. 의지와 무관하게 두 손이 올라갔다.
올라간 손이 의사의 손목을 잡으려고 할 때쯤 “아주 잘 됐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첫 번째 검사가 끝났다. 분명 목구멍까지 면봉이 내려왔다고 느꼈는데 실제 삽입 길이는 코에서 귀까지의 직선거리 정도라고 했다. 그 뒤로 두 번째 검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의사는 “편도는 많이 붓지 않으셨네요”라며 면봉을 이용해 입 안을 구석구석을 쓸어 담았다. 점액을 머금은 면봉 2개는 키트 안에 보관됐다. 결과는 다음날 오전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검사가 끝나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채취키트를 정리하던 의사가 자가격리대상자 생활수칙 안내문을 건네주며 “내일까지는 자가격리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밖에는 그새 대기자가 늘어있었다. 상당수가 ‘목이 아파서’ ‘두통이 있어서’ 보건소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상황을 지켜본 결과 고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민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들은 최근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단순 감기나, 소화불량, 두통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보건소에 왔다는 것이다. 무증상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여론에 발맞춰 사례정의를 늘리겠다는 정부지침이 있긴 했으나 모든 방문자가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코로나19는 여전히 접촉력과 여행력이 매우 중요한 병이다.
알려진 것처럼 정부가 검사비를 부담하는 경우는 검사대상자가 ‘의사환자 및 조사대상 유증상자’로 분류될 때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중국(홍콩, 마카오 포함) 방문 후 증상이 있는 자 △확진자와 접촉 후 증상이 있는 자 △입원이 필요한 원인미상의 폐렴인 자 △중국 외 코로나19 유행 국가‧지역 방문 후 증상이 있는 자 △의사 소견에 따라 감염이 의심되는 자 등이다. 최근에는 ‘신천지’라는 요소도 추가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검사를 반드시 희망하는 사람은 16만~20만 원 상당의 검사비를 부담하고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자비를 내고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판정을 받으면 검사비는 다시 돌려준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확진자 동선 공개
집으로 돌아와서 달력을 펼쳐놓고 그동안의 행적을 정리했다. 가능성은 낮았지만 만약 확진 판정이라도 받으면 지난 2주 동안의 동선이 전국에 낱낱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는 이틀 동안 옮겨 다닌 행정구만 4개, 대면한 사람은 너무 많아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강남과 강북 여기저기를 헤집고 돌아다녔으니 확진 판정을 받으면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게 뻔했다. 검사를 받게 될 줄도 모르고 그동안 만나고 다닌 사람이 많았다.
검사 후 받은 자가격리대상자를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 불가피하게 외출하게 된다면 관할보건소에 연락을 해야 한다. 사진=최희주 기자
최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전국 1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의 코로나19 감염보다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에서 받을 비난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전체 5점 만점에 평균 3.52로 무증상 감염(3.17)보다 높았던 것이다. 실제로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대체로 비슷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글을 살펴보니 잠재적 감염자로 바라보는 외부시선, 동선이 파악돼 비난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등의 심적인 공포감이 코로나19보다 무섭다는 글이 다수 게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는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에 번진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혐오다. 처음에는 확진자 개인이 그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동선 공개에 대해서는 “확진자가 1000명이 넘은 상황에서 개인의 동선을 공개하는 효과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차라리 날짜나 시간대별로 동선을 정리하는 것이 개인이나 지역상권에도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시국이니 익명 처리해달라”고 웃었다.
다음날 오전 보건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과는 ‘음성’. 보건소 관계자는 “오늘부터 외부활동을 해도 되지만 당분간 조심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