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발설한 안무가 사과, 일정상 재촬영 거의 불가”…수사기관도 유출 관련 수사 안해
2018년 Mnet ‘프로듀스48’ 제작발표회에 참가한 김용범 CP(왼쪽)와 안준영 PD. 사진=박정훈 기자
특히 2019년 말 프로듀스 조작 혐의가 처음 제기됐을 때부터 PD와 기획사 부당거래의 결정적 증거로 경연곡 리스트 유출설이 제기됐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시즌 중간 경연곡 리스트 약 16곡을 정해놓고 6명 혹은 7명의 연습생들이 각각의 경연곡에 배치된 뒤 평가를 받는 과정이 있다. 연습생들이 경연곡을 미리 알면 안되기 때문에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연곡을 몇몇 기획사에서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부당거래 논란이 증폭됐다.
MBC ‘PD수첩’은 A 연습생의 증언을 통해 대형 기획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 관한 폭로를 하기도 했다. ‘PD수첩’과 인터뷰한 연습생은 “어떤 친구가 경연곡을 미리 유포했다. 추궁해 물어봤더니 자기 안무 선생님이 알려주셨다고 했다”면서 “직접 들었다. 걔네들은 연습을 그 전부터 계속하고 있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A 연습생은 “회사에서 되게 압박이 심했다고 했다. (회사가) ‘너희가 인기 있는 게 우리가 다 해준 거니까 건방 떨지 말라’는 식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획사와 제작진 등을 취재한 결과 부당거래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경연곡 리스트 유출 논란이 나오기 전인 시즌 중반, 이미 프로듀스 제작진은 유출 사실을 알고 내부 단속을 했다는 점이었다. 유출 시점은 프로듀스 시즌 중 특정 시즌에서 평가곡이 결정되는 촬영까지 끝난 뒤 연습생 소감 인터뷰 과정이었다.
프로듀스 시리즈 제작에 참여했던 한 작가는 “연습생 소감 인터뷰 과정에서 몇몇이 경연곡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B 안무가가 안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후배들에게 일을 맡겼고 이 후배들 가운데 일부가 소속사 연습생 교육도 겸하고 있어 교육 과정에서 말이 퍼져 유출됐다고 밝혀졌다. 해당 안무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받고 비밀 엄수에 신경써달라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고 설명했다.
이 안무가가 경연곡을 미리 알고 있었던 이유는 미리 안무를 짜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아이돌곡 가운데 몇 개를 선별해 경연곡으로 선정한다. 그런데 아이돌 멤버 수와 경연곡을 소화할 프로듀스 참가 연습생 수가 달라 이 경연곡 안무를 멤버 수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재구성 과정이 있기 때문에 프로듀스 제작진은 경연 약 2주에서 10일 전쯤 경연곡을 안무가에게 맡긴다.
프로듀스 제작에 참여했던 PD도 “그 재구성 과정에서 안무가들 몇몇이 알게 되고 이를 각 소속사 연습생 연습 과정에서 은연 중에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소속사에 남은 연습생이 프로듀스 참가 연습생 중 친한 사람에게 귀띔을 해주게 되고 그렇게 알려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의 작가는 “실제로 연습생들 중에서는 경연곡이 아닌데도 ‘스포’(유출) 됐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안무가 한 명이 소속사에서 가르치다가 ‘이 곡 중요하다’고 한마디 하면 그게 경연곡인 줄 착각하고 얘기가 도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참가했던 한 중소형 기획사 관계자도 “회사 소속 연습생이 프로듀스에 참가했는데 친해졌던 연습생 한 명이 ‘이 곡 나온다’면서 그 곡만 봤는데 경연곡 리스트에도 없던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일 때문인지 몰라도 그 연습생은 탈락했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떠올랐지만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뭇매를 맏고 있다.
앞서의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자신 회사의 연습생이 조기에 탈락했다는 점을 미리 공지하면서 “프로듀스 참가를 하기로 하면 먼저 연습생들 커리큘럼을 프로듀스 대비 체제로 바꾼다. 유명한 아이돌곡은 필수적으로 연습한다. 이건 대형기획사는 물론이고 중소기획사도 다 하는 거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안무를 미리 알았다고 해서 유출범으로 모는데 그걸 무조건 유출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유출됐다 하더라도 프로듀스 일정이 워낙 빡빡해 미리 연습할 시간도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도 “기획사가 PD에게 미리 경연곡을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그게 이뤄졌다는 부당거래설은 사실 이 업계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다”면서 “특정 연습생이 미리 경연곡을 알았다면 프로듀스 멤버로 데뷔까지 할 수 있을까. 정말 큰 리스크를 안고 경연곡 유출을 했다고 하더라도 얻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순위 조작과 관련해 프로듀스 제작진을 강도 높게 조사해왔다. 반면 경연곡 유출 관련해서는 별다른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경연곡 유출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