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5인 회동서 ‘독자 추진이냐 연대냐’ 논의…반쪽 연합에 중도층 이탈 땐 명분도 실익도 잃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최근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총선판을 뒤집는 판도라 상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삼삼오오 모이면 이 얘기부터 꺼냈다. 누군가는 ‘마법’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자선사업 선거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궁지로 몰아넣은 선거법의 역습은 심리적 마지노선(40%)을 유지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마저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도보다 안정적인 추세인 당 지지도 역시 새 국면을 맞았다.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의 활시위를 당긴 것은 최병천 전 민주당 보좌관의 SNS 글이었다. 그는 2월 17일 한 인터넷매체 기고문을 통해 ‘보수 과반 승리’를 예상했다. 전제조건은 두 가지였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은 미래한국당(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정당) 한 개만 존재한다. 21대 총선의 각 당 정당 득표율은 민주당과 한국당 각각 40%, 정의당 15%, 국민의당 5%로 설정한다.
이 경우 민주당은 지역구 120석과 비례대표 7석(병립형 17석X40%)을 각각 얻는다. 특히 민주당이 연동형으로 받을 수 있는 비례대표는 0석이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130석과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27석(연동형 20석+병립형 7석)으로 제1당을 탈환한다. 정의당 의석수 추정치는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9석이다. ‘미래통합당 157석 > 민주당 127석 > 정의당 11석’ 순이다. 이는 19대 총선 결과와 판박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현 정의당+민중당)의 ‘반 이명박(MB)’ 연대 전선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127석과 비례대표 25석을 각각 얻어 과반(152석) 승리를 거뒀다.
반면 민주통합당(127석)은 지역구 106석과 비례대표 21석에 그쳤다. 통합진보당은 지역구 7석과 비례대표 6석으로 두 자릿수(13석)를 기록했다. 이 밖에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 등의 순이었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선거 전략은 ‘거대 야당 견제론’에 따른 보수 결집이었다. 새누리당도 놀란 ‘박근혜 파워’를 다시 재확인한 셈이다. 반면 당시 출구조사에서 제1당이 유력했던 민주통합당은 예상 밖 참패를 당했다. 이른바 ‘문풍(문재인 바람)’은 미풍에 그쳤다. 야권연대와 세대투표 위력은 48석 중 30석을 석권한 서울 등 일부 수도권에서만 나타났다. 친노(친노무현)계는 즉각 차기 대선전략 플랜 수정에 돌입했지만, 그해 12월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48.0%)는 박근혜 후보(51.6%)에게 패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이 2월 21일 발표한 여론조사(18∼20일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각 정당의 총선 득표율 예상치는 민주당 40%, 미래한국당 38%, 정의당 13%로 각각 계산됐다. 앞서 최 전 보좌관이 예상한 정당 득표율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의 정당 득표율 예상치를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민주당(36%)은 고작 4%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미래한국당(미래통합당 23%)은 민주당 상승 폭의 4배 수준인 15%포인트나 늘어났다. 정의당(7%)은 정당 지지도의 2배가량 증가했다. 민주당 지지층 중 일부가 정의당에 분리 투표를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결과로 분석된다. 여당으로선 보수진영의 위성정당과 정의당에 대한 분리 투표라는 ‘이중고’에 둘러싸인 셈이다.
2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미래준비 선거대책위원회 1차회의에서 이낙연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위기 타개책으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택했다. 분기점은 이른바 ‘마포 5인 회동’이었다.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해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 대표 특보단장, 홍영표·김종민 의원은 2월 26일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서 만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에 합의했다. 사실상 당 실세가 다 모인 자리였다. 전·현직 원내사령탑인 이 원내대표와 홍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주도했다. 친문(친문재인)계인 윤 의원은 당 공천 과정을 총괄하는 이해찬 대표의 측근이다. 전 의원은 친문 직계인 ‘부엉이모임’의 좌장이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의 창당 명분은 ‘보수 정당 과반 저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문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새누리당(122석)도 20대 총선 때 민주당(123석)에 제1당을 내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을 부추겼다. ‘20대 총선 패배→레임덕 가속→탄핵 열차→박 전 대통령 구속→보수 정당 궤멸’ 등의 악순환에 빠졌다. 청와대가 울산시장 하명수사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등에 휩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21대 총선 패배와 동시에 ‘박근혜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문제는 민주당의 딜레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의 창당 명분은 없다. 그간 민주당은 미래한국당을 만든 미래통합당을 향해 “꼼수 정당”, “쓰레기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고발도 마쳤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 선회 후 이해찬 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앞서 그는 미래한국당 창당에 대해 “국민 투표권을 제한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헌법까지 들고 나왔다. ‘마포 비밀 5인 회동’을 주도한 이 원내대표는 “국민을 얕잡아보는 눈속임”이라고 했지만 진보진영에서 위성 정당 창당에 군불을 지피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그간 인사 문제와 조국 사태에서 촉발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이른바 민주당의 ‘정치개혁판 내로남불’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570여 개 진보 성향 단체 모임인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민주당을 향해 “말을 뒤집고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웠던 민주당의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명분 없음’ 논란은 마포 5인 회동에서도 대두했던 사안이다. 전해철 의원은 그 자리에서 “명분이 문제”라며 “우리가 왜 비례정당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세울 간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땀 빼가면서 공들인 선거법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점을 앞세우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비례민주당이냐, 외부와 연대냐’를 놓고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연대론에 힘을 실었지만, 김 의원은 독자 창당에 무게를 뒀다.
이 지점은 민주당 위성정당 창당의 ‘실익’과 직결한 문제다. 명분 없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여권의 험지인 영남권 의원과 비문(비문재인)계 의원들은 하나같이 “필패”, “중도층 이탈”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의 영남권역 선거대책위원장인 김부겸 의원은 “소탐대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산·울산·경남(PK)의 김해영 의원도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관리위원장인 우상호 의원은 “명분도 시간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중도층 이탈은 곧 외연 확장의 실패다. 비례대표 투표의 핵심은 ‘전략적 투표’다. 거대 양당에 대한 투표는 ‘반대편의 제1당을 제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의당에 대한 전략적 투표에는 독자적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투표 심리가 깔렸다. 그러나 민주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 열차에 탑승하는 순간, 미래한국당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은 물론, ‘꼼수’나 ‘희화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그간 미래한국당을 ‘사기’라고 비판했는데 무슨 낯짝으로 표를 달라고 호소하겠느냐”며 “진보진영 전체가 독박을 쓸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진보정당 한 축인 녹색당은 이미 진보 시민단체가 추진 중인 ‘정치개혁연합’(가칭)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보진영 간 공동 창업이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최악의 경우 남는 것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반쪽짜리 연합정당’이다. 총선 패배의 그림자가 민주당에 아른거리는 이유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