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 손에 어렵게 자라…야자 빠지려 다닌 음악학원서 재능 발견 ‘발로트’ 장르 개척 신드롬
‘트로트 히어로’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임영웅은 종합편성채널의 시청률 역사까지 새로 썼다. 그를 배출한 TV조선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3월 14일 방송한 최종회에서 순간 시청률 35.7%(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종편 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날 평균시청률 역시 28.7%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에 올랐다.
올해 1월 방송을 시작한 뒤 매회 숱한 화제를 뿌린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은 회를 거듭할수록 가장 강력한 ‘진(眞)’ 후보로 꼽혀왔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혼신의 힘을 불어넣어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심금을 울린다’는 시청자의 반응도 쏟아졌다. 1위인 진의 자리를 차지한 건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다. 이제 대중의 관심은 보다 다양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1991년에 태어나 이제 29세인 청년 임영웅의 모든 것, 특히 대체 어떤 사연을 지녔기에 이토록 절절한 감성으로 노래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트로트 히어로’ 임영웅을 배출한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3월 14일 방송한 최종회에서 순간 시청률 35.7%(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사진=‘미스터트롯’ 방송화면 캡처
#미용실 운영 홀어머니 뒷바라지로 성장
임영웅이 ‘미스터트롯’ 진에 오른 마지막 경연날인 3월 14일은 때마침 ‘아버지 기일’이었다. 경연 직후인 16일 TV조선 ‘뉴스9’에 출연한 그는 “결승 생방송 당일이 아버지 기일이라 더 많이 긴장했다”고 털어놨다.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길었는데, 모든 경연을 마친 저에게 어머니가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줬다”고 돌이켰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임영웅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아들인 그에게 부모는 “세상의 영웅이 되라”는 뜻에서 임영웅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어머니 이현미 씨는 미용사로 일하면서 아들을 홀로 키웠고, 지금도 경기도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임영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들을 혼자 키우느라 고생한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하는 아들”이라고 자책도 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할머니와 어머니한테 효도하는 것”이라는 말도 한다.
임영웅은 ‘뉴스9’에서 “얼마 전 어머니와 포천의 한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동네 분들이 소식을 듣고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마트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일화도 밝혔다. 그의 어머니도 이젠 유명인사가 됐다. 포천의 미용실에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심지어 인근 거리에는 임영웅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까지 걸렸다.
어머니와 둘이 살다보니 임영웅의 유년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친척들과 놀다 유리병에 얼굴이 찍혀 서른 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당했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수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의 왼쪽 볼에 남은 흉터가 그때 생겼다.
특유의 밝고 씩씩한 성격으로 축구 등 운동에 소질을 보였고, 고등학생 때는 전공을 고민하다 태권도 훈련도 받았다. 또한 중학교 3년 동안 반장을 맡는 등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남을 배려하는 그의 성품은 ‘미스터트롯’ 경연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임영웅뿐 아니라 출연자 대부분 혼자 돋보이려 하지 않고 팀워크를 발휘한 모습은 ‘미스터트롯’이 시청률 30%를 돌파한 원동력이다.
임영웅 어머니와 외할머니. 어머니 이현미 씨는 미용사로 일하면서 아들을 홀로 키웠고, 지금도 경기도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미스터트롯’ 방송화면 캡처
#경복대 실용음악과 졸업…발라드에서 트로트 전향
지금은 임영웅 앞에 탄탄대로가 놓였지만 가수로 갓 데뷔했을 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에 불과했다. 그런 임영웅이 처음 가수의 꿈을 키운 건 야간자율학습에 빠질 방법을 고민하다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한 고등학생 때였다. 노래에 재능을 발견한 그는 2010년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트로트가 아닌 발라드 가수를 바랐다.
실제로 임영웅은 대학 재학 중 몇몇 가요제에 출전해 발라드를 불렀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트로트로 장르를 바꾸자 상황은 달라졌다. 2015년 아이넷TV ‘대한민국청소년 트롯 가요제’ 경기 북부 편, 이듬해 2월 KBS 1TV ‘전국노래자랑’ 포천 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주목받았다. 발라드를 부를 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관객들의 반응이 사뭇 달라진 걸 체감한 임영웅은 이후 트로트로 전공을 바꿨다.
사실 트로트가 가요계 대세 장르가 된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20대의 가수 지망생이 선뜻 트로트에 도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임영웅 역시 고민을 거듭한 끝에 2016년 싱글 앨범 ‘미워요’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트로트 가수로 들어섰다. 이후 ‘뭣이 중헌디’,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등 노래를 발표하고 차근차근 활동을 이었다.
데뷔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무명가수다 보니 생계비 마련은 그에게 큰 숙제였다. 음반을 낸 뒤에도 군고구마 장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집 보일러가 고장 나서 냉기가 가득한 상태에서 2년을 버텼다고 했다. 에어컨도 없이 폭염을 견딘 날도 2년이다. 감추고 싶을 법한 일들이지만 임영웅은 자신이 겪은 어려운 시간을 ‘미스터트롯’을 통해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에서다.
삶의 회한을 담은 노랫말에 온전히 감정을 실어 부르는 임영웅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시청자의 반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트로트와 발라드를 접목해 이른바 ‘발로트’ 장르를 개척한 그의 고유한 스타일도 호평을 이끄는 힘이다. 사진=‘미스터트롯’ 공식 홈페이지
#긴 무명생활 딛고, ‘눈물’ 자극 트로트 킹
‘미스터트롯’의 시청자들은 유독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는 반응을 자주 보인다. 유튜브에서도 임영웅의 노래 영상에는 어김없이 ‘눈물 자극’ ‘눈물 나는’ 같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예선에서 임영웅의 실력을 세상에 알린 첫 번째 노래는 노사연이 부른 원곡 ‘바램’이다. 삶의 회한을 담은 노랫말에 온전히 감정을 실어 부르는 임영웅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시청자의 반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트로트와 발라드를 접목해 이른바 ‘발로트’ 장르를 개척한 그의 고유한 스타일도 호평을 이끄는 힘이다.
가요계 전문가들도 임영웅의 성공 배경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음원 제작·투자사의 관계자는 “‘미스터트롯’에 참여한 출전자들 가운데 준비가 완벽히 돼 있었다”며 “다른 출전자들이 퍼포먼스에 신경을 쏟을 때 임영웅은 처음부터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고 그 마음을 한땀 한땀 녹여낸 노래를 불러 단박에 관심을 끌었다”고 밝혔다. 자신에 가장 적합한 곡을 골라, 음색에 맞게 편곡하는 ‘완벽주의’도 지금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다.
다른 음반 유통사 관계자는 “임영웅이 부른 노래들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처럼 스토리가 있는 곡이 대부분이었다”며 “가창력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노래를 통해 ‘미스터트롯’ 시청자를 넘어 대중까지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임영웅은 각종 예능프로그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일회성 출연을 넘어 여러 협업 제안도 쏟아진다. ‘미스터트롯’ 이후 예능프로그램 첫 출연은 4월 1일 방송하는 MBC ‘라디오스타’다. 임영웅과 함께 영탁, 이찬원 등 ‘미스터트롯’이 발굴한 스타들이 함께 출연한다. 이어 JTBC ‘아는 형님’ 제작진도 섭외에 공을 들인 끝에 4월 초 임영웅이 출연하는 녹화를 진행한다.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타 방송사들의 ‘견제’도 없다. 보통 방송사가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스타들은 선발되고 몇 달간 타 방송사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 속에 출연 제약을 받는다. 앞서 ‘미스트롯’이 발굴한 송가인, 홍자 때도 비슷했지만 ‘미스터트롯’만큼은 예외다. 임영웅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임영웅이 팬들과 보다 가깝게 만나는 자리는 5월 1일 시작하는 전국투어 콘서트가 될 전망이다. 임영웅을 포함해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은 당초 4월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서울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일정을 5월 30일과 31일로 연기됐다. 다만 서울 공연을 제외하고 5월 1일 수원에서 시작해 울산, 강릉, 광주 등으로 이어가는 전국투어 공연은 예정대로 소화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