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화력발전 고집 사이 신재생에너지 급성장, 두산건설에 무리한 자금 투입 등 여러 요인 탓
두산중공업은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에 대응하지 못하며 위기를 맞았다. 사진=박정훈 기자
#‘탈원전’ 탓 경영 위기, 사실은?
3월 31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두산중공업지회는 직원 700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회사를 떠난다고 밝혔다. 노조는 탈원전 정책을 언급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게 책임을 물었다. 특히 신한울 3, 4호기 공사 중단이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경영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두산중공업은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 흐름에 발맞추기는커녕 기존의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집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석탄 화력 발전은 70~80%로 두산중공업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한다. 원전 매출은 대략 10%다.
담수화 플랜트와 원유 정제 시설 등도 중동 시장 의존도가 높았다. 그런데 저유가로 중동 시장이 악화되면서 두산중공업도 수년째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업체의 중동 수주량은 2012년 369억 달러에서 2019년 1~11월 44억 달러로 급감했다. 두산중공업 신규 수주액도 2015년 8조 5687억 원에서 2019년 4조 1859억 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2015년부터는 당기순이익을 내지 못했다. 최근 4년간(2015~2018년) 회사의 누적 당기순손실액은 2조 4978억 원에 달한다.
반면 글로벌 발전시장 선도기업들은 이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이 탈석탄·탈원전을 외치며 환경을 우선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연이어 시행했다. 이에 발맞춰 지멘스·GE 등은 전통에너지 사업부문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사업 비중을 늘렸다.
지멘스는 2011년 원전 사업을 사실상 포기하며 2017년에 6900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석탄 화력 발전 분야 종사자다. 현재는 풍력·태양광·가스터빈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GE는 2017년 화력 연료 중심의 전력사업부 1만 2000여 명 감원을 발표한 이후 재생에너지 사업 확대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신재생에너지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화석연료, 원전 등 전통에너지 산업 규모는 큰 폭으로 축소됐다. 지난 2월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발전 투자액의 약 40%는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이뤄졌다. 에너지원별로는 △신재생에너지 3130억 달러 △화력 1270억 달러 △원전 470억 달러 순이다. 두산중공업이 중점을 둔 석탄 화력 발전소 신규 발주는 2013년 76GW에서 2018년 23GW로 급감했다.
지난 2월 정부도 ‘탈원전’ 때문에 두산중공업의 매출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두산중공업에 2017년 5877억 원, 2018년 7636억 원, 2019년 8922억 원을 지급했다. 2017년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두산중공업에 지급한 금액은 매년 증가했다.
두산중공업 측도 “이번 위기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만은 아니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합쳐져서 발생했다”며 “전 세계 발전시장이 좋지 않아서 미쓰비시, GE, 지멘스 등도 구조조정을 하고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위기인데 경영진 연봉 잔치
실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산건설을 살리고자 무리하게 자금을 투입했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에 유상증자·현물출자·상환전환우선주 정산을 통해 총 1조 7000억 원을 지원했다. 당시 상황을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공업 부문 수주 잔고가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 두산건설을 지원하고자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면서 실적 부진에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의 노력에도 두산건설은 살아나지 못했다. 2019년 말 상장 폐지되며 두산중공업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결국 3월 30일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로부터 1조 원의 자금을 수혈받기 위한 고강도 자구안의 일환이다
그런데 위기를 자초한 두산그룹 경영진 및 오너일가는 연봉잔치를 벌였다. 3월 31일 두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급여 24억 8800만 원, 상여금 6억 700만 원 등 총 30억 98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급여 22억 4000만 원, 상여금 17억 5000만 원 등 39억 9100만 원을 받았다. 동현수 부회장은 18억 원, 임성기 사장은 16억 8300만 원을 각각 지급 받았다. 두산중공업의 박지원 회장은 15억 4000만 원을 보수로 받았다.
#포트폴리오 재편…기회될까?
두산중공업은 뒤늦게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나섰다. 지난 3월 30일 주주총회에서 최형희 두산중공업 대표는 “2023년까지 가스터빈, 신재생에너지, 수소, 3D 프린팅 등의 신사업 수주 비중을 50% 수준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중장기 수주 포트폴리오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사업이 바로 매출을 이어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신사업이 수익을 낼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과 신사업 확대를 연결 짓기는 어렵다”며 “지난해 9월 가스터빈 개발을 완료해 올해 말에 실제 발전소에 장착해서 2년 동안 가동할 예정이고 2023년부터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상 풍력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데, 4월 9차 전력계획이 나오면 풍력 사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