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1인 기업 지주사 법인 주소지엔 간판조차 없어…자금 조달한 두 회사 실체도 베일 속
이스타항공은 국내 항공사 가운데 최초로 모든 노선 운영을 중단하는 셧다운(일시적 업무중지)에 돌입한 데 이어, 지난 3월 29일에는 수습 부기장 80여 명을 대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현 1683명 가운데 55%인 930여 명을 필요인원으로 판단하고 4월 중순까지 구조조정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단독] 이스타항공, 인력 최대 45% 감축한다).
이스타항공 지주사 이스타홀딩스는 이상직 전 이사장의 장녀 이수지 씨의 1인 대표 기업으로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된다. 사진은 이스타홀딩스 등기부에 기록된 법인 주소. 8평 짜리 오피스텔(왼쪽)로 등록돼 있던 법인 주소는 2019년 12월 38평짜리 고급 오피스텔(오른쪽)로 이전됐다. 사진=여다정 기자
문제는 이스타항공이 악화일로를 걷는 동안 책임이 가장 큰 오너 일가가 보여준 모습이다. 이스타항공 최대주주는 창업주 이상직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일가다. 이상직 전 이사장은 현재 제21대 총선 전북 전주을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상황이다. 이들은 이스타항공 매각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이스타항공 전환사채(CB)를 매입한 것 이외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타홀딩스는 이번 매각을 통해 매각대금 695억 원과 제주항공 지분 1.46%, 이스타항공 지분 17%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항공에 이스타항공을 넘긴 뒤에도 이스타항공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는 셈이다. 이스타홀딩스는 지난해 12월 이행보증금으로 받은 115억 가운데 100억 원으로 이스타항공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매입했고, 같은 시기 제주항공이 발행한 1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또한 매입한 바 있다.
이런 이스타홀딩스를 두고 페이퍼컴퍼니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가 된 과정부터 회사의 실체까지 밝혀진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설립된 이스타홀딩스는 같은 해 이스타항공 공시에 지분 68%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스타홀딩스 지분은 이상직 전 이사장의 장녀 이수지 씨(33.3%)와 아들 이원준 씨(66.7%)가 전량 보유하고 있다. 이스타홀딩스 등기임원은 1989년생 이수지 씨 한 명이다. 2015년 설립 당시 26세인 이수지 대표가 ‘나홀로 임원’인 회사가 이스타항공의 지주사가 된 셈이다.
이스타홀딩스는 강서구 양천로 이스타항공 서울지점 인근에 주소지를 뒀다가 2019년 12월 여의도로 이전했다. 주소지가 등록된 두 곳 모두 오피스텔 건물로 각각 8평(26.53㎡), 38평(128.06㎡)이다. 현재 법인 주소로 등록된 여의도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회사 간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건물 관리인은 “오피스텔이라 사무실로 쓰이기도 한다”면서도 “해당 호수에 누가 거주하는지 알고 있으나, 사무실로 사용되는지는 몰랐다”고 전했다.
또 이스타홀딩스 등기에 적힌 이수지 대표의 주소는 이상직 전 이사장이 재산신고 내역에서 공개한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주소와 일치한다. 이스타홀딩스 법인으로 등록된 고급 오피스텔은 이 대표가 거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스타홀딩스는 실상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스타홀딩스 외에도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받는 곳은 또 있다. 이스타홀딩스에 자금을 조달한 비디인터내셔널과 아이엠에스씨다. 2018년 이스타홀딩스 공시를 보면 매출은 없지만 지분법이익, 염가매수차익, 투자자산처분이익, 이자수익 등 영업 외 수익이 52억 9428만 원으로 기록됐다. 지분법적용투자주식은 역시 이스타항공 지분 39.64%다. 취득원가는 78억 5930만 원, 순자산가액은 97억 5740만 원이다. 단기차입금의 경우 아이엠에스씨와 이스타항공으로부터 각각 28억 2000만 원과 11억 원을 차입했고, 비디인터내셔널로부터 1억 8000만 원을 차입했다.
이스타항공의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이스타항공 내부에서는 오너일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이스타항공 체크인카운터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스타홀딩스에 자금을 조달한 비디인터내셔널은 2017년 말 이스타항공 공시에 지분을 2.1% 보유한 주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비디인터내셔널은 2017년 말 기준 이스타항공에 232억 원의 운전자금을 장기로 차용해준 곳이다. 비디인터내셔널 주소는 강서구에 위치한 이스타항공 서울지점 4층으로 등록돼 있다. 이스타항공은 해당 건물 2층부터 7층까지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 서울지점 건물에서는 비디인터내셔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이스타항공 직원은 “이스타항공 건물에 그런 회사는 없다”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아이엠에스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아이엠에스씨는 2015년 이스타홀딩스가 갑자기 등장해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법인으로 보이지만, 실체와 행적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이엠에스씨는 2014년 이스타항공 지분 5.4%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공시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아이엠에스씨 법인등기부에서는 이스타항공과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엠에스씨 법인등기부에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박 아무개 씨는 이스타항공 재무실장으로 2017년 3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이스타항공 사내이사를 역임했다.
결과적으로 이스타항공의 지주사 이스타홀딩스와 아이엠에스씨, 비디인터내셔널 모두 이름만 있을 뿐 실체가 불분명하다. 이스타항공이 비상장사인 덕분에 베일에 가려진 서류상 회사들이 오너일가가 이스타항공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이 과거 인수됐던 과정과 관련해 별도로 파악된 바도 없고, 답변드릴 만한 내용도 없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