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S ‘무제한 연봉’ 제도 만들어 ‘베컴 모시기’ 후 가속화…천문학적 계약 성사 속 K리그는 ‘소외감’
베컴은 2008년 LA 갤럭시 유니폼을 입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 서울과 친선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가장 ‘스타성이 뛰어난 축구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을 첫 번째로 꼽는 사람이 많다. 수려한 외모와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특출함을 뽐냈다. 경기장 밖에서도 세계적인 팝스타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했으며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약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만큼 영향력도 대단했다. 우리나라 축구스타 출신 부자인 차범근·차두리 부자도 베컴과 얽힌 사연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차두리가 예고 없이 양팔에 문신을 하고 나타난 당시 싸늘했던 집안 분위기를 소개하며 차범근 전 감독은 ‘그놈의 베컴이 문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베컴은 유럽에 있는 선수들이 그 외 지역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대부분 스타 선수들은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유니폼을 벗었지만 베컴은 축구가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미국으로 진출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당시 그의 미국 진출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축구스타들의 미국행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의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진출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베컴 잡아라’ 샐러리캡 제도에 손 댄 MLS
미국은 농구(NBA)와 미식축구(NFL), 아이스하키(NHL) 등 프로 리그에서 한 구단 연봉 총액 상한선인 ‘샐러리캡’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야구(MLB) 또한 팀 연봉이 일정 금액이 넘어서면 ‘사치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벌금을 부과한다. 선수의 연봉에 지나친 금액을 지불하는 사례를 막겠다는 의도다.
미국 내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축구의 경우 연봉 총액 액수가 다른 종목에 비해 더 적었다. 한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연봉 액수도 제한돼 있었다. LA 갤럭시에 이적하던 2007년 당시에도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던 베컴을 품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직후였다. 베컴 1명의 연봉이 LA 갤럭시 선수 전체 연봉보다 높았다.
당대 최고 스타를 놓칠 수 없었던 구단과 리그 사무국은 리그 제도에 칼을 댔다. 팀당 3명의 선수는 샐러리캡과 무관하게 무제한 연봉을 가능케 한 ‘지정 선수 제도’ 일명 ‘베컴법’을 신설한 것이다. 이는 스타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신호탄’이 됐다. 이전에도 펠레,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등이 MLS 창설(1996년) 이전 북미 축구리그(NASL)에서 활약한 바 있지만 이 같은 사례가 꾸준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MLS의 베컴법 신설 이후 스타들의 미국행은 꾸준히 이어졌다.
베컴(왼쪽)과 앙리는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맞대결을 펼쳤다. 사진=연합뉴스
#베컴 따라 미국 향한 스타들
미국에서도 유럽 못지않은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축구 본고장 스타들의 이적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전설적 공격수 티에리 앙리(프랑스)는 베컴과 유사한 시기에 뉴욕에서 MLS 무대를 누볐다. 이 외에도 알렉산드로 네스타(이탈리아), 프랭크 램파드(잉글랜드), 다비드 비야(스페인), 스티븐 제라드(잉글랜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 웨인 루니(잉글랜드) 등이 뒤를 따랐다.
비록 최전성기는 지났을지라도 이들은 미국에서도 녹슬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 30대를 훌쩍 넘어선 시기에 미국으로 향했지만 경기장에서는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앙리, 비야, 이브라히모비치 등 공격수들은 득점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적 스타들이 은퇴를 눈앞에 두고서야 이적해 ‘황혼 리그’로 불리던 MLS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유럽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던 세바스티안 지오빈코(이탈리아)는 전성기 나이인 20대 후반에 토론토 FC 유니폼을 입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33경기에서 22골 16어시스트로 득점왕과 도움왕에 동시에 오르며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어나갔다. 이후 카를로스 벨라(멕시코) 등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미국행을 선택, 새로운 성공시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 선수 중에도 베컴룰의 수혜를 입고 있는 선수가 있다. 국가대표 미드필더 황인범은 벤쿠버 화이트캡스의 ‘지정 선수’ 3인 중 하나다. 이전에도 MLS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로는 홍명보, 이영표, 김기희 등이 있었다.
이니에스타의 출전 소식에 2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1만 7000여 관중이 몰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새롭게 떠오른 동아시아 무대
샐러리캡 제도가 개정된 미국과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중동무대로 한정됐던 스타들의 황혼기 행선지로 2010년대 동아시아 무대가 새롭게 떠올랐다.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리그가 스타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먼저 스타 영입 러시가 시작된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국가 지도자 시진핑 주석이 ‘축구굴기’로 불리는 축구 장려 정책을 펼치면서 2012년을 전후로 각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2012시즌 니콜라스 아넬카(프랑스), 디디에 드록바(코트디부아르) 영입으로 시작된 슈퍼리그의 선수 수집은 카를로스 테베즈(아르헨티나), 헐크(브라질) 등으로 이어졌다.
마르셀로 리피(이탈리아), 파비오 칸나바로(이탈리아) 등 유명 감독도 중국행을 선택하는가 하면 상하이 상강은 잉글랜드 첼시에서 오스카(브라질)를 영입하는 데 6000만 유로(약 800억 원)를 쏟아 붓기도 했다. 슈퍼리그의 외국인 선수 관련 제도가 자주 변경되고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혼란이 있지만 돈이 몰려 있는 만큼 선수들의 중국행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J리그도 세계적 스타들이 눈길을 돌리는 무대가 됐다. J리그는 2016년 향후 10년간 중계권료 2100억 엔(약 2조 1000억 원)의 천문학적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는 각 구단들의 수익 상승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투자가 몰리기도 했다. 이에 루카스 포돌스키(독일),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스페인) 등이 일본으로 향했다.
이처럼 스포츠 산업의 발달로 각 리그에 자본이 몰리며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타 대륙 무대로 눈길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 2020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수원 삼성은 빗셀 고베와 한 조에 편성돼 시즌을 여는 첫 홈경기를 치렀다.
당시 고베엔 이니에스타와 토마스 베르마엘렌(벨기에)이 뛰고 있어서 그들을 보기 위해 팬들의 발길이 몰린 바 있다. 경기가 열린 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 19일이었고 코로나19가 막 확산되는 시기였음에도 1만 7000여 관중이 찾았다.
그러나 아직 K리그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가 직접 뛰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최근 슈퍼스타들의 행선지가 되고 있는 동아시아 3국 중 우리나라만 소외돼 있다. 중국과 일본이 뽐내고 있는 스타 파워를 언제쯤 국내 리그에서 느껴볼 수 있을지 팬들의 갈증이 심해지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