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 감면, 내년 여객연동감면 없어…‘롯데·신라’ T1 우선협상 지위 포기 ‘신세계’ 할인 신청서 미제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9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저희는 생존을 논해야 하는 처지다. 빅3(롯데‧신라‧신세계) 하루 매출이 1억 원대로 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매출이 90% 가까이 줄어든 데다, 4월에는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3월 말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업계 분위기를 설명하며 ‘생존’을 언급했다.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다.
면세점업계는 현재 미판매 재고와 매출 감소, 높은 공항 임대료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면세점협회에 따르면 면세점 매출은 지난 3월 기준 전년 동기대비 86.5% 감소했다. 유례없는 경영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선언된 이후 4월에는 매출이 더 급감했다. 전년 동기 대비 90% 이상 감소했다. 창고에는 3조 원에 달하는 재고가 쌓였다. 면세점들이 봄철 관광 성수기를 예상하고 3~6개월 전 상품 발주 관행에 따랐으나 갑작스럽게 코로나19 사태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지난 17일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면세점과 한국면세점협회, 관세청은 최근 회의를 열고 보세 물품 판매규정 완화를 논의했다. 면세점업계는 관세청에 재고 상품을 한시적으로 국내 아웃렛 등 일반 유통경로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면세품 판매가 어려워 재고가 늘어난 상황에서 규정상 일반 유통 경로로 판매할 수 없어 이를 폐기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기 때문이다. 면세점협회 관계자는 “관련해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제 막 논의가 진행된 터라 협회도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그간 턱 없이 높다고 지적돼 온 인천공항공사 임대료 및 인도장 영업료도 문제다. 면세점들의 매출 급감에도 불구 올해 인천공항공사가 받는 면세점 월 임대료는 885억 원, 1년 기준으로 1조 1000억 원에 달한다. 인도장 영업료는 2019년보다 높은 700억 원가량을 납부해야 한다. 면세점들이 단체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서자 인천공항공사는 뒤늦게 답을 내놨다. 정부의 ‘착한 임대인 운동’에 맞춰 면세점 임대료를 20% 삭감키로 한 것.
그러나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인하안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됐다. 인천공항공사는 대기업 면세점 임대료를 6개월간 20% 인하해주는 대신, 내년 월 임대료 계산에서 여객 수 증감에 따라 조정되는 인하(여객연동감면)는 없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조건대로라면 면세사업자 입장에서는 올해 승객 감소에 따른 내년 임대료 9% 감면을 포기해야 한다.
또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내년 여객수가 정상화될 경우 2022년 임대료가 사실상 9% 인상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 겨우 20%를 감면을 해준다고 해놓고, 계약서에 내년 감면은 없다는 단서를 달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롯데와 신라, 신세계 면세점은 임대료 할인 신청서 제출 기한을 한 차례 연기했다. 지난 13일 연장된 마감 기한에는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만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신세계면세점은 단서 조항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신청서를 아예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신라면세점 또한 신청서는 제출하되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단서 조항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또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 제1여객터미널 제4기 면세사업권 입찰에서 선정된 우선협상대상자 및 후순위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했다. 롯데면세점은 DF4(주류‧담배) 구역 우선협상대상자인 동시에 DF3(주류‧담배‧포장식품) 후순위협상대상자다. 반대로 신라면세점은 DF3 구역 우선협상대상자이자 DF4 후순위협상대상자다.
이로써 인천공항공사는 대기업 대상 사업권 5곳 가운데 4곳의 사업자 선정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빅3’와 현대백화점면세점 등 모든 사업자가 입찰에 참여했던 DF7(패션‧잡화)은 현대백화점만이 유일하게 입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계약하게 됐다. 인천공항공사는 앞서 지난 2월 대기업 대상 면세사업권 입찰에서 사업권 5곳 가운데 DF2(화장품‧향수)와 DF6(패션‧잡화) 2곳이 유찰되는 사상초유의 유찰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유찰된 곳 4곳의 새로운 사업자를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DF3와 DF4의 경우 롯데‧신라가 모두 포기의사를 보였고, DF2의 경우 지난 2월 입찰 때에도 단 한 곳의 업체도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DF2 구역은 최대 매출처로 꼽혔으나 부담스러운 ‘최소보장금’ 탓에 모든 업체가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면세사업자는 매출액에 품목별 영업요율을 곱한 금액이 최소보장금보다 높을 경우 차액을 더해 납부하고, 최소보장금보다 낮을 경우 최소보장금을 납부한다. 최소보장금은 매출과 관계없이 면세사업자가 매달 내야 하는 임대료인 셈이다.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DF2 최소보장금은 1161억 원이었다.
앞서 현대백화점면세점만 입찰 참가 의사를 밝혀 유찰된 DF6 사업자를 찾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이미 DF7 구역을 가져간 상황에서, 동일 품목 복수낙찰 금지 원칙에 따라 DF6 구역 입찰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업자들이 재입찰에 참여해야 하지만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로 갈등을 빚고 기존에 선정된 지위까지 포기한 롯데면세점이나 신라면세점이 마음을 돌릴지도 의문이다.
중소‧중견면세점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투어 자회사 SM면세점은 지난 3월 초 제4기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중소중견 사업장 입찰 도중 포기를 결정하고 발을 뺐다. 그랜드관광호텔이 운영하는 그랜드면세점 또한 임대료 부담을 이유로 최근 DF8(전품목) 구역 우선협상자 지위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이제는 인천공항공사가 고민할 때다. 재입찰 공고를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가 심각한 만큼 이를 반영해 조건을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항공업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천공항공사가 고통을 나누고 산업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전향적인 결정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재입찰 및 재입찰 이전 임대료 조정 등 조건 변경에 대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임대료 인하와 관련해서는 “(단서 조항이 없을 경우) 올해 여객 감소로 인한 총 임대료 감소는 금년(20%)과 내년(9%)에 걸쳐 29%에 달해 중복감면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내년도 6개월 여객연동감면(9%)을 배제하는 것은 할인 포기가 아니라 내년 할인을 올해 조기 시행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해명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