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유치 떡먹기” 파워 인맥 상당…‘수첩’ 거론, 정·관계 로비 실체 드러날까
과거 여자 탤런트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적이 있는 이 회장은 주가조작 시장에서 건드린 기업이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에스모 역시 이 회장의 ‘설계’에서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다. 투자조합 형식으로 이뤄진 인수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지분이 가장 많았던 덕에 ‘이 회장’으로 불렸다는데, 현재 이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서울 모처의 아파트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회장 소환 및 신병 확보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회장의 수첩’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평소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4월 23일 경찰은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자연스레 검찰 수사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사진은 김봉현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4월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검찰, 이종필 검거 후 타고 올라가는 수사
한 대형 로펌 파트너급 변호사는 라임 사건을 “수사를 피하기 위해 설계된 복잡한 금융범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번 사건은 자금 제공처(라임 펀드)와 주가조작 시도 기업(상장사), 그리고 이를 설계하는 데 관여한 인물들(김봉현 전 회장 등)로 나눠봐야 한다. 라임 펀드를 설계·운용하면서 자금을 마련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라임 자금을 자기 돈처럼 쓰며 코스닥 상장사들을 인수 및 주가조작 하려 했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고 금융당국의 내부 정보를 누설한 혐의를 받는 김 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현 금감원 직원) 등은 이미 구속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은 ‘몸통’이 아니라는 게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조상원 부장검사)의 판단이다. 전체 구조를 설계한 에스모 이 회장과 김 아무개 리드 회장 등을 쫓고 있다. 실제 CB(전환사채) 투자업계에서도 “김봉현 전 회장이나 이종필 전 부사장은 에스모 이 회장이나 리드 김 회장에 비교하기에는 서로 역할이 다르다”며 “주가조작 및 금융범죄 쪽은 설계 역할을 맡는 게 쉽지 않은데 이 회장이나 김 회장은 수백억 원을 쉽게 투자 유치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에스모 이 회장과 리드 김 회장의 혐의는 라임의 자금을 통한 금융범죄다. 우선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횡령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이다. 에스모를 통해 다른 코스닥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했는데, 라임은 이 회장이 인수한 기업에 2000억 원 규모 자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현금을 확보한 뒤 잠적했다.
지난해 주가조작 혐의로 이미 수사를 받은 상장사 리드의 실소유주인 김 회장에 대해 검찰은 이종필 전 부사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리드에 라임 자금을 끌어다 주고 그 대가로 거액을 챙긴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미 리드 경영진은 김 회장에게 준 돈 등을 포함해 회사 돈 834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가운데 김 회장이 500억 원가량을 횡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주가조작 혐의 수사에서는 기소를 피해갔지만 최근 관계자들로부터 “김 회장이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턱 밑까지 다가오자, 업계에서 주가조작 경력이 굵직한 ‘회장님’들이 숨어들기 시작했다. 이 회장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 회장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3주 전부터 아주 제한적인 연락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며 “지금은 서울 모처의 아파트에 있다고 하더라, 검찰이 쫓는 것을 알고 완전히 숨었다”고 얘기했다.
#라임 핵심 검거에 떠는 투자자들
문제는 이들이 주가조작을 벌인 기업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이 회장의 경우 주가조작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 회장을 잘 아는 한 투자자는 “이 회장의 경우 평소부터 사람들을 잘 챙기고, 투자 관련해서 투자자들과의 신뢰를 잘 지키는 편이여서 오랫동안 설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 상장사의 대표 역시 “시장에 상장사 매물이 나오면 가장 먼저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이 회장”이라며 “어떻게 자금을 동원해서 인수하는지, 일련의 과정을 잘 진행한다”고 평가했다. 에스모 외에도 상장사인 D 사, T 사, N 사 등이 이 회장이 주도한 기업들인데, 이 밖에 최근 2~3년 사이에도 10개 안팎의 상장사 인수 및 주가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회장이 검거되면 ‘정·관계 로비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련 사건을 변론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 안팎에서 주가조작 및 금융범죄만 주목하고 있었지만, 이 회장이 잡히면 정치인 수사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 회장은 몇몇 유력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라임자산운용을 압수수색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자연스레 사정당국의 수사는 ‘로비 입증 자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4월 26일 구속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역시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이 김 전 회장을 체포하면서 업무 수첩 2개를 압수한 것. 올 초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2개의 수첩 가운데 하나에는 20쪽에 걸쳐 여러 법인 간 자금 흐름이 기록돼 있었는데, 경찰은 이를 통해 불법적인 금융범죄 정황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수첩에는 언론에서 가능성을 제기한 ‘정·관계 로비 명단’은 없었다.
검찰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한 상장사 대표는 “수사기관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리스트를) 수첩에 남기지 않는다. 만일 수첩에 남겼다면 정말 하수”라고 지적했다. 주가조작과 같은 금융범죄는 투자자 및 로비 대상과의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기억’으로만 남겨둔다는 얘기다. 수사 선처에 유리한 기억들만 꺼내 수사기관에 진술하지 수사기관 손에 통째로 넘기지는 않는 게 일반적인 대응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정치권과도 연결됐다는 ‘설’이 무성했던 이 회장과 김 회장 등이 현재 모처에 잠적해서 어디까지 진술할지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관련 피고인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는 “검찰 역시 이들에게 자수를 권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어디까지 처벌하고 수사할지 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징역 4~5년 이상 나올 게 명백한 상황에서, 뇌물을 줬거나 연결된 정치인이 정말 있다면 어느 정도 선처를 바라고 진술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