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재난지원금 최초 제안 ‘조명’…친문진영 ‘이낙연 대항마’로 내세울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5월 4일부터 시작했다. 앞서 국회는 4월 30일 본회의에서 12조 2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과시켰다. 다음 날 정부는 임시 국무회의에서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배정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전국민 대상으로 1인 가구 40만 원, 2인 가구 60만 원, 3인 가구 80만 원, 4인 이상 가구 100만 원이 지급된다. 기존 생계급여,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수급 가구 등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280만 가구의 경우 우선 대상으로 현금을 받게 된다. 현금 수급 대상이 아닌 국민은 이후 신용·체크카드, 지류·모바일·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카드 중 하나를 선택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신청 단계에서 기부 의사를 밝히거나, 수령 후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할 수 있다. 또한 신청 개시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지 않아도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 기부하면 일정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전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구상을 처음 꺼낸 정치인은 김경수 경남도지사다. 김 지사는 3월 8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내수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 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전국민 지급 이유에 대해서는 “지원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시간과 행정적 비용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정가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기획재정부도 재정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미래통합당은 재원을 국비로 충당하는 문제에 대해 ‘빚잔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지사는 “국가가 빚지지 않으면 국민이 빚져야 한다”며 “아직도 코로나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반박,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은 김경수 지사의 처음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결정됐다.
정치권에서는 김경수 지사가 이번 성과를 통해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이낙연 당선자는 40%대 지지율로 독주하고 있다. 2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10%대로, 이 당선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정치권에선 친문계가 이낙연 당선자 대권 행보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끊이지 않는다. 이 당선자에게는 당대표 역할 그 이상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이재명 지사나 박원순 서울시장도 친문진영과는 거리가 있는 대권 주자다.
김경수 지사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대를 보이고 있지만 친문진영의 거의 유일한 잠룡으로 꼽힌다. 한때 김 지사와 함께 차기 주자로 거론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당분간 정치적 재기가 힘들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여권 주류이자 최대 계파인 친문계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김 지사가 이낙연 당선자와 겨뤄볼 수도 있다는 게 ‘김경수 대망론’의 골자다.
생각에 잠겨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사진=박은숙 기자
실제 김 지사가 지난 3월 정부와 국회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당청 호응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김 지사가 끊임없이 공론화시키자 청와대가 검토를 시작하고,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까지 채택했다. 김 지사의 여권 내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지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정책을 제안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싸워서 수행하고 완수했다. 그 정치적 자산은 무시할 수 없다”며 “김경수 지사는 법적인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큰 과제가 있다. 하지만 무죄를 받게 되면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친문과 비문 계파 구분은 의미가 없다”며 “김경수 지사 대선주자 지지율이 높아지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후보군 선택폭이 넓어져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김 지사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드루킹 사건 재판이다. 김 지사는 지난해 1월 1심에서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공모 혐의(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에 대해서는 징역 2년,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현재 보석 상태로 2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10년간 제한된다. 무죄를 받아내지 못하면 대권은 고사하고 현재 맡고 있는 경남도지사 직위도 상실될 수 있다. 김 지사로서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정치 운명이 좌우되는 셈이다. 만약,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김 지사는 친문계의 차기 후보 영순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친문계 한 재선 의원은 “김경수 지사는 현재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며 “재판 일정이 길게 잡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선 출마를 논하기엔 이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김 지사의 경우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 판단까지 최소 1년은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