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혁신 성과에도 DLF·라임사태 처리 책임론…청와대 금감원 감찰 결과 따라 진퇴 결정 관측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2년여 만에 퇴진설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윤석헌 원장은 당초 현 정부와 ‘코드’가 통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관치금융’을 맹렬하게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웠던 윤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승승장구했다. 금융위원장 직속 금융행정인사혁신위원회 위원장과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을 지내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윤 원장이 2016년 3월 진보성향 경제학자들과 함께 펴낸 저서 ‘비정상경제회담’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금융 교과서’로 꼽혔다. 급기야 2018년 금융감독원장에 발탁된 그는 취임 일성으로 금융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개혁성향 학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 후에도 윤석헌 원장은 파격 행보로 기대를 모았다. 2015년 이후 사실상 폐지됐던 금융사 종합검사를 4년 만에 부활시켰고 금융위원회와의 갈등을 무릅쓰고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을 출범시켰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재감리 끝에 ‘고의적 분식회계’라는 판정을 이끌어냈으며 지난해 말에는 키코(KIKO) 사태 배상 권고안도 도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윤 원장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키코 배상 권고안 이후 오히려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금감원이 내놓은 분쟁조정안에 대해 불복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윤 원장의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규모 원금 손실을 초래한 파생결합상품(DLF) 사태와 라임펀드 사태가 잇따라 터지면서 감독 소홀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와중에 DLF 제재에서 금융사 경영진 중징계라는 강수를 두면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 결정은 금감원의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금감원의 권한 남용과 경영 개입 논란으로 이어지며 윤석헌 원장을 곤혹스럽게 했다.
여기에 중징계를 통보받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금감원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 절차에 들어가자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슈퍼갑’으로 불리는 금감원이 금융사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조차 열어두지 않고 몰아세우는 바람에 대결구도가 만들어져 오히려 금감원의 위상을 훼손시켰다는 지적이었다.
금감원 내부의 불만도 조금씩 쌓여갔다. 특히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누적됐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국은행에서 잠시 일했던 윤석헌 원장은 국실장급 인사에서 한국은행 출신을 대거 발탁해 ‘편중 인사’라는 뒷말을 낳았다.
상위기구격인 금융위원회와 갈등은 윤석헌 원장의 발밑이 패어들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윤 원장은 금감원의 권한 확대를 견제하려는 금융위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냈다. 이로 인해 금융위가 올해 초 업무보고 당시 대통령 면전에서 금감원을 ‘저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윤석헌 원장의 사퇴설은 벌써 3~4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금융회사 종합검사, 금감원 예산안, 키코 재조사, 특사경 운영방안 등을 놓고 번번이 마찰이 빚을 때마다 사퇴설이 돌았다. 금융권에서는 윤 원장이 같은 개혁성향 학자 출신으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힘든 심경을 수차례 토로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금융위와의 갈등이 아니라 정치권을 중심으로 교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최근 신라젠과 라임 사태 등 여권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불거진 금융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대응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이미 금융당국은 물론 관련 금융사까지 압수수색에 나서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권 말기에 터져 나오는 권력형 측근 비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에서는 윤석헌 원장의 정무 감각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손발이 맞는 인물로 교체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최근 물러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후임 금감원장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검사장 출신인 김 전 차관은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광주 대동고 동기로 정권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7월을 전후해 윤석헌 원장의 신변이 정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청와대의 금감원 감찰 결과에 따라 진퇴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 3월 특별감찰반을 투입해 금감원 감찰을 진행했다. 연이은 금융사고와 관련해 금감원 책임 여부를 들여다본다는 목적이었지만, 금융권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감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2014년 중도 사퇴한 최수현 전 금감원장의 사례를 떠올리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과 수차례 불협화음을 낸 끝에 이른바 ‘KB 사태’와 동양그룹 사태, 모뉴엘 금융사기사건 등이 이어진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특히 최 전 원장의 경우 청와대에서 경질설이 불거진 후 3개월 뒤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금감원장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라면서 “현 정부와 검찰의 대립구도를 볼 때 금융권 사건사고가 게이트로 번지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금감원장에게 ‘정치적 판단력’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