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채용 필요 없지만 정부 권고 무시 못해…“불필요한 인건비 지출 배임” 지적도
비대면 은행 업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신규 인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은행 내부의 공공연한 목소리다. 실제 은행권은 수년 전부터 점포수를 줄이면서 온라인 및 스마트폰을 통한 금융 서비스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그럼에도 50~200명 안팎을 채용한다는 것은 높은 인건비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을 알면서도 정부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IBK기업은행은 4월 27일부터 5월 11일까지 상반기 신입 행원 250명의 입사 지원서를 받았다. 그렇지만 기업은행은 코로나19와 현재 인력 구조를 감안할 때 ‘신규 채용은 필요 없다’는 의견이 건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박정훈 기자
#기업은행 “채용 필요없다” 의견 반려
4월 27일부터 5월 11일까지 상반기 신입 행원 250명의 입사 지원서를 받은 IBK기업은행. 신입 행원 모집 분야는 금융 영업과 디지털 분야로 7∼8월 중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기업은행에서는 코로나19와 현재 인력 구조를 감안할 때 ‘신규 채용은 필요 없다’는 의견이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 내부 소식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 사태로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올라갔지만, 기획재정부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함께 채용 규모를 할당받았다”며 “200여 명이 넘는 채용 규모도 기재부가 정해줬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앞장서서 채용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였던 셈이다. 다른 은행들도 기재부와 금융위 등으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채용 규모 등을 지정받았다는 후문이다.
실제 4월 중순, 기업은행과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신규 채용에 팔을 걷어 붙였다. 산업은행은 4월에 이미 신입 행원(5급) 지원 접수를 끝냈는데 채용 인원은 50명 내외다. 수출입은행 역시 비슷한 규모의 채용을 진행할 예정인데 7~8월 중 모집공고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주주가 예금보험공사(17.25%)로 금융위원회의 영향을 받는 우리은행 역시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 공채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 디지털·정보기술(IT)·투자은행(IB)·자금 등 4개 전문 영역에서는 수시 채용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채용에 나서는 은행 내부 분위기는 앞서의 기업은행과 비슷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로 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순환 자택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대부분 부서 업무가 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며 “정부가 힘드니까 국책은행들에게 가장 먼저 채용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겠느냐, 사실 큰 규모의 채용은 필요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4월 중순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신규 채용에 팔을 걷어 붙였다. 산업은행은 이미 4월에 신입 행원(5급) 지원 접수를 끝냈는데, 채용 인원은 50명 내외다. 여의도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사진=임준선 기자
워낙 심각한 채용 난에 국책은행 인사팀은 ‘예년보다 적은 퇴사자 발생’도 걱정하고 있다. 통상 10~15% 안팎의 퇴사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필요 인력의 110% 정도를 채용하는데 이번에는 퇴사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내부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한 금융기관 인사팀 관계자는 “통상 은행 입사자 가운데 많으면 20%가 입사 2년 내외로 그만둔다. 적성에 안 맞거나 조직 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올해는 아예 퇴사자가 10% 미만으로 줄어들까봐 걱정”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특히 “이런 부분을 감안해 더 적게 뽑아야 하는 게 맞는데 정부 눈치를 보느라 그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상장 은행들도 눈치 보기
특히 상장한 일부 은행들의 경우 정부의 이 같은 채용 강행 지시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이나 우리은행은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금융사라지만 명백히 코스피에 상장한 주식회사”라며 “정부 지분이 일부 있다고 해도, 회사 이익에 반대되는 움직임인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게 말이 되냐. 주주들이 돌아가는 사정을 자세히 알면 전혀 납득하지 못할 결정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 역시 “은행에게 가장 큰 비용 지출은 점포와 인건비인데 필요 없는 채용을 하는 것은 주주들에 대한 배임 아니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선 은행들도 정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수시채용이 끝난 뒤 상반기 신입 행원 공채 등을 검토하거나 시작할 예정이고, 주로 하반기에 신입 행원 공채를 진행해 온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채용 시기나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이나 스마튼폰, ATM 통한 영업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면 영업 비중이 크게 줄었다. 사진=임준선 기자
#점포 정리는 빠르게
시중은행들의 점포 전략을 보면, 인력 축소는 불가피하다. 은행들은 빠르게 점포를 줄이고 있다. 심지어 초역세권인 서울 강남권조차 잇따라 영업점을 정리하는 현실이다. 중복점포 효율화가 명분이지만 비대면 서비스 확대와 코로나19로 인한 비용 절감이 은행권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이나 스마트폰, ATM 통한 영업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면 영업 비중이 크게 줄었다.
하나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모두 25개 점포를 통폐합할 예정인데, 서울 강남구 역삼역점과 강남외환센터점, 대치역점, 서초구 반포자이점 등 강남권 점포만 5개를 없앤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올 상반기 없앤 점포 4곳 가운데 2곳(신한 PWM강남대로센터점, 테헤란로기업금융센터점)이 강남에 위치한 점포였다. 우리은행도 통폐합한 13곳 가운데 2곳이 강남구에 위치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해 1월 강남권 영업점 3곳을 포함해 38곳의 점포를 없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 강남권은 점포 한 곳당 예치금이 많아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었는데 이마저도 은행들이 정리에 나선 것이다. 4대 은행들이 올해 상반기에만 통폐합 하는 점포는 107곳. 4대 은행 영업점은 총 3428개로 2015년 말 3924개에서 496개(12.65%)나 줄었다. 5년 사이 10곳 가운데 1곳 이상의 점포가 줄어든 셈이다.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 금융권 관계자는 “적은 지점은 5명, 많은 곳은 15명의 직원이 필요한데 점포가 줄어드는 수만큼 채용이 불필요한 것”이라며 “언택트(untact·비대면) 경제가 활발해지면 은행 경영 차원에서 점포를 더 줄일 수밖에 없는데 정부 눈치를 보면서 채용을 계속 한다는 것은 금융권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