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임상 비용·위험 분담 효과 커…반환 사례 적잖아 신뢰성 저하 ‘흠’
사노피의 권리 반환으로 임상시험 진행 여부나 관련 비용 등은 양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 한미약품은 “사노피 측이 이번 결정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유효성 및 안전성과 무관한 선택이라고 밝히고 있다”며 “사노피가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하겠다고 환자와 연구자들 및 한미약품에 수차례 공개적으로 약속했으니 이를 지키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약품은 파트너사인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 반환 의향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사진=임준선 기자
#한미약품이 파트너사 직접 찾아야
사노피가 에페글레나타이드에 대한 권리를 반환하면서 임상시험에 대한 한미약품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진행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 관련 임상을 한미약품이 단독으로 진행하려면 임상 비용에 대한 부담은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며 “향후 사노피와 협상을 통해 임상 완료 여부, 임상 비용에 대한 연구비 부담 이슈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약품의 요구대로 사노피가 임상 3상을 완료하더라도 글로벌 판매사를 찾는 일은 한미약품의 몫이다. 당초 사노피는 임상 3상을 완료한 후 직접 글로벌 판매사를 물색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박재경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급작스럽게 반환 의향을 통보받았다는 것은 판매 파트너사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며 “판매 파트너사는 한미약품이 직접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고, 반환받은 의약품이기 때문에 협상력이 약해졌을 수 있어 에페글레나타이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한 신약 권리를 반환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미약품은 2015년 7월 폐암신약 HM61713을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했고, 2015년 11월에는 당뇨 및 비만 치료신약 HM12525A을 얀센에 기술 수출했다. 하지만 베링거인겔하임은 2016년 9월 HM61713에 대한 권리를 반환했고, 얀센도 2019년 7월 HM12525A에 대한 권리를 반환했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베링거인겔하임은 폐암치료제에 대한 비전 등을 고려해 반환을 결정했고, 얀센은 당뇨가 동반된 비만 환자에서 혈당 조절이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해 반환을 결정했다.
이 같은 반환·회수 현상은 비단 한미약품의 일만은 아니다. 2016년 말 유한양행은 중국 뤄신에 기술 수출한 항암 후보물질 YH25448에 대한 권리를 회수했다. 뤄신이 계약금 지급을 미루는 등 계약을 불이행한 데 따른 것이다. 2017년 11월에는 미국 토비라가 동아에스티에서 획득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 ‘에보글립틴’ 기술 개발 및 판매 권리를 반환했다.
파트너사가 각종 이유로 기술 수출 권리를 반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제약업계에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기술 수출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알약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최준필 기자
#기술 수출 전략의 ‘위험분담 효과’
우리나라 제약사들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제약업계에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기술 수출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해외 판매를 위해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각 당국의 임상시험을 거친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성이 큰 미국에서 먼저 신약 허가를 받고, 국내는 나중에 허가받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약품이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기술 수출한 후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시험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투입되는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 임상 1상, 2상까지는 감당할 수 있어도 수천억 원 이상 들어가는 글로벌 3상까지 독자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며 “비용 부담이 크다보니 전략적으로 수익을 배분할 회사를 찾는 것이며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전략”이라고 전했다.
기술 수출을 통해 위험을 분담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신약개발 성공 확률은 10% 수준에 불과한데 독자적으로 임상을 진행하다가 실패하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비용 손실이 생긴다”며 “기술이 반환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신뢰를 갖춘 파트너사만 찾는다면 임상에 실패했을 때 회사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밝혔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한미약품처럼 기술 수출 반환 사례가 이어지면 회사의 미래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019년 7월 보고서 ‘세계 바이오의약품 산업 동향 및 전망’을 통해 “아직까지 기술 수출을 통해 구미 선진시장에서 상업적 성공 단계로 진출한 신약이 없다”며 “기술 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의 계약 파기, 반환 사례가 이어지는 등 기술 신뢰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 수출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실패할 경우 리스크도 크다. 하지만 임상을 무사히 통과해 상업화로 이어지면 판매 수익을 독점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임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9~2008년 연평균 기술 수출은 3.9건이었지만 2009~2018년에는 7.5건으로 늘었다.
앞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이 발달한 서구권에서는 기술 수출 권리가 반환되거나 임상에 실패해도 크게 개의치 않지만 한국은 임상시험을 성공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며 “제약산업이 미래 산업이 되려면 기술 수출 전략이 가지는 위험분담 효과나 상생의 원리 등이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