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 ‘30시간 스테이’ 등 룸콕 상품 봇물, 언택트 인기…혼자서 홈콕 ‘코쿤족’도 재부각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 집이나 집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은 경기침체와 실용주의 현상으로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유행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유행을 넘어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사진=서울신라호텔 제공
#한국인의 여행 선호도 1위는 한국
항공권 가격비교 플랫폼인 스카이스캐너가 한국, 영국, 미국, 일본의 자유여행객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흥미롭다. 여행에 관한 설문이었지만 키워드는 이례적으로 ‘안전’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이 설문에 따르면 한국인의 48%가 여행이 안전해졌다고 생각될 때 다시 해외여행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4개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 36%, 미국 24%, 영국 19%와 비교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한국인이 안전을 꼽게 된 것이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여행의 방식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58%로 조사 4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숙박예약 플랫폼 부킹닷컴의 최근 설문에서는 한국인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국가 1위로 한국을 선택한 웃지 못 할 결과가 나왔다. 부킹닷컴 한국 유저들의 3~4월 실제 숙박 예약 행태에서는 서울, 제주, 부산, 강릉 등이 선호지역으로 나왔다.
글로벌 여행 예약 플랫폼인 익스피디아도 한국인의 숙소예약에 관한 설문을 진행했다. 이 설문에 따르면 가족 여행을 떠날 때 여행지는 소비주체인 나의 취향으로 선택하지만 숙소는 아이를 중심으로 고르는 경향이 발견됐다. 또 아이가 있는 경우 멀리 가지 않고 근교의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쉬면서 편의시설을 즐길 수 있는 호캉스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돌아다니지 않으면서 먹고 마시고 자고
대표적인 언택트 스테이케이션으로 호캉스가 꼽힌다.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도심이나 근교의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는 인파와 이동시간, 비싼 여행지 물가에 지친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한 곳에 짐을 풀고 여가를 즐기는 방식이다. 멀리 여행을 떠날 때보다 각종 경비와 준비 시간을 줄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호텔의 주요 고객이 외국인에서 국내 여가 고객으로 바뀌면서 각 특급호텔들도 휴가객을 사로잡을 레저 호텔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보물섬투어 제공
글래드호텔이 신용카드 사용실적을 기초로 발표한 ‘2020 트렌드 리포트’는 소비 지역과 호텔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제주, 부산 등으로의 장거리 호캉스 비중도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해외로 나가던 여행자의 한국 귀환 덕분이다. 특히 타 연령대에 비해 호텔의 재방문 주기가 짧고 재구매율과 객단가가 높은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는 호텔에서 단순히 투숙만 하지 않고 레스토랑과 스파 등 부대시설을 함께 즐긴다고 보고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트렌드가 ‘룸콕’인 만큼 호텔들은 12시에 체크인해서 다음날 저녁 6시에 체크아웃하거나 오전 9시에 체크인해서 다음날 오후 3시에 체크아웃하는 ‘30시간 스테이’ 상품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로비에서 대기할 필요 없는 프라이빗 체크인+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고 객실이 인접하지 않도록 객실을 배정하는 방식까지 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신혼여행지로 국내 여행지가 떠오르는 경향도 보인다. 더불어 제주, 강릉, 부산 등의 국내 특급호텔들은 국내 여행지의 장점을 살린 허니문패키지를 출시하고 있다. 또 책 선물을 포함한 북(Book)캉스 패키지, 호텔룸에서 룸콕하는 프리미엄 ‘방콕’ 패키지, 테마파크와 삼시세끼 등 모든 부대시설과 식사비용을 포함하는 ‘올인클루시브 패키지’ 등 기존의 호텔 패키지를 능가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호탤팩’들이 출시되고 있다.
장기 숙박 패키지도 인기다. 호텔이나 리조트에 따라 2박부터 최대 30박까지 가능하다. 보통 7박 이상을 장기 투숙으로 보는데 장기 투숙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객실 1+1 상품’도 흔하다. 호텔 객실 안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월드트립 보드게임’을 대여하거나 넷플릭스를 지원하기도 한다. 호텔 셰프의 음식을 룸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케이터링 박스’를 제공하거나 ‘드라이브 스루’로 서비스하기도 한다.
청결과 위생을 키워드로 한 이색 패키지도 등장했다. 패키지 이용 고객에게 주방세제와 세정제, 손 소독제로 구성된 살균 패키지를 증정하는가 하면 위생 관리를 위한 마스크, 물티슈, 구강 청결제 등으로 구성된 위생 키트를 제공한다.
집콕생활이 답답해진 아이들을 위해 온통 장난감으로 객실이 채워진 키즈펜션이나 애견과 함께 마당에서 뛰놀 수 있는 애견 펜션도 경기도를 중심으로 유행 중이다. 날이 더워짐에 따라 국내 서핑 성지로 유명한 양양 등에서는 20~30대를 중심으로 2일에서 일주일까지 서핑을 배우고 즐기면서 서핑클럽에 머무는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용이한 고택에서 고즈넉하게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안동 죽헌고택의 모습. 사진=아고다 제공
손삼호 경상북도 마케팅정책팀장은 “경상북도에 전국 고택의 50%가 자리해 있다. 가족이 독채를 쓰는 경우도 많아 사회적 거리두기도 용이한 데다 풍수적으로도 명당인 고택 마을에서 고즈넉하게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며 고택 스테이를 추천했다.
#VR해외여행도 인기
주말에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홈캉스도 등장했다. 경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굳이 비용을 들여 호텔이나 펜션에 가지 않고도 집을 휴양지처럼 안락하게 꾸며서 즐기는 경향이다. 셀프 인테리어 등 집꾸미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직접 ‘홈테리어’로 집을 꾸미고 쉬는 것이 여러모로 마음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나 여행경비에 대한 부담 없이 가심비와 가성비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그런 흐름에 따라 집을 구할 때도 전형적인 아파트나 빌라보다는 산책로, 옥상정원, 가든테라스 등을 갖춘 주거환경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구해줘!홈즈’ 같은 집 찾아주는 프로그램에서도 단순한 도심 집합주택보다는 서울과 거리가 좀 있더라도 마당이나 테라스를 보유한 단독주택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아졌다. 주변에 공원이나 녹지가 있는 숲세권을 선호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집을 주거 이상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전형적인 아파트나 빌라보다는 산책로, 옥상정원, 가든테라스 등을 갖춘 주거환경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초동 반포자이아파트 내부의 물놀이 시설. 사진=KB부동산 제공
단순 주거 공간을 넘어 여가와 레저를 누릴 수 있는 복합생활문화공간으로 집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집에 게임룸을 두거나 홈트레이닝룸을 두는 경향도 생기고 있다. 가상으로 해외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VR게임도 인기다.
집돌이와 집순이들을 설명하는 철 지난 신조어도 있다. 집에 ‘콕’ 박혀서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코쿠닝(Cocooning)’, 이를 즐기는 사람을 ‘코쿤족’이라고 하는데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는 단어다. 미국 학자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이 정의한 개념으로 불확실한 사회로부터 단절해 누에고치처럼 안락하게 집안에 머물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거나 해먹는 먹방·쿡방족을 비롯해 밀린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보는 정주행족, 만화책·완구·비디오게임 등을 탐닉하는 키덜트족 등 다양하다.
더불어 패션업계에서도 실내에서 편안하면서도 멋과 개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 룩’이 유행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한 패션을 제안하는 것이다.
코트라 무역관은 “모임과 행사 등을 피하고 최대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원거리 이동 대신 상대적으로 가깝고 붐비지 않는 곳에서 조용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이 당분간 소비자들의 주요 소비 트렌드로 자리할 것”이라 분석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