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박지원 ‘방송가 러브콜’ 쇄도…본업 복귀 표창원 추리소설도 집필…원혜영은 ‘웰다잉 전도사’ 변신
21대 총선 불출마로 국회를 떠나며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하는 국회법’ 을 제안하고 있는 여야 중진의원들. 왼쪽부터 김무성·정병국·원혜영·이석현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의원직은 잃었지만 당직을 맡고 있어 국회에 남은 정치인이 있다. 김해영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부산 연제에 출마해 통합당 이주환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당 최고위원직은 유지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오는 8월 전당대회 전까지 최고위원직을 수행한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에도 최고위원회의 등에 참석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여러 이슈에 대해 당 지도부와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하며 화제를 모았다.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당이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입장을 냈지만, 김 전 의원은 “윤미향 당선자 관련 의혹들을 심각하게 보는 국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릴 게 아니라 신속히 진상을 파악해 결과에 따른 당의 적합한 판단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를 두고는 “국회의원의 직무상 투표 행위를 징계하는 것은 헌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맞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해영 최고위원은 낙선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없고, 당 지도부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알려 추후를 노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여전히 정치권에 머물며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전직 의원들도 있다. 4·15 총선에 불출마했던 김무성 전 의원은 보수재건을 위한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섰다. 국회와 가까운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은 이곳을 계파를 가리지 않고 전직 의원들이 드나드는 ‘정치 공부방’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김성태 강석호 전 의원 등도 힘을 모아 세 불리기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중진 이석현 전 의원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7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경선에서 민병덕 의원에 패하며 의정활동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 전 의원은 안양의 지역구 사무실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인근에 사무실을 하나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서울과 안양을 오갈 계획”이라며 “다만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는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번 총선에서 인천·경기권역 선대위원장으로 지역 지원유세를 한 5선 정병국 전 의원은 청년정치인 양성을 위한 활동에 나선다. 앞서 정 전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를 통해 “바른정당 시절부터 해온 청년정치학교 교장을 여전히 맡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을 교육하고 양성해 새로운 정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토양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계획을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인터뷰] 정병국 의원 “21대 국회, 당리당략 떠나 길게 보는 정치를”). 정병국 전 의원 관계자는 “따로 사무실을 두고 활동할 계획은 없다”며 “청년정치학교 프로그램 확장 및 법인화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세연 전 의원 역시 서울 선유도역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 2016년 국회 내 연구모임으로 시작해 사단법인으로 발전한 ‘어젠다 2050’과 청년정치학교를 통해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은 보수진영 차기 대선주자군으로도 거론되며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오히려 더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의원직을 내려놓고 방송인으로 돌아간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지역구 목포에서 김원이 민주당 의원에게 패해 낙선한 박지원 민생당 전 의원 역시 의원직은 내려놓았지만 방송에는 더 자주 얼굴을 비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의원은 의원 시절에도 각종 정치 현안에 날카로운 비평을 해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향후 방송, 라디오, 개인 유튜브 채널 등에 출연해 정치 평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본업을 찾아간 전직 의원들도 있다. 20대 총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영입인재 1호였던 표창원 전 민주당 의원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 사상 최악 20대 국회 책임을 지고 불출마 방식으로 참회하겠다”고 선언했다. 표 전 의원은 여의도를 떠나 ‘프로파일러’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간다. 그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운영에 집중하면서, 방송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치 관련 추리소설도 집필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21대 총선엔 불출마 선언했지만, 또 다른 선거에 도전한다. 회계사 출신의 경력을 살려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 20대 국회에서 ‘외부감사법’ 개정을 주도한 바 있는 채 전 의원은 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정돼 회계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길을 걷는 의원들도 있다. 5선의 원혜영 민주당 전 의원은 5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30여 년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는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원혜영 전 의원은 ‘웰다잉 전도사’로 인생 2막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웰다잉은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로, 원 전 의원의 평소 관심사였다. 앞서 지난해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웰다잉 기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천에 개인 사무실을 차려 웰다잉 문화 조성에 힘쓰겠다는 계획이다.
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이었던 여상규 전 의원은 12년의 여의도 생활을 접고 법무법인 한백에서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그와 동시에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 전 의원은 5월 2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20대 총선을 마친 직후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머리를 많이 다치고 목뼈가 3개나 분쇄골절 돼 지금도 통증이 많다”며 “의사가 통증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하며 몸을 자꾸 움직이라고 권했다. 마침 서울 근교에 농가주택을 하나 마련해 과일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