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 폐지 발표 때 구입해 마지막 연습 때 설치…왜 하필 보조배터리 형태 사용했는지 확인 중
경찰 수사는 용의자가 6월 1일 새벽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찾아와 자수하고 피의자 조사를 받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자수를 통해 용의자가 특정됐고, 결정적 증거인 몰카는 디지털 포렌식 분석에 들어갔다. 또한 용의자의 휴대전화도 함께 포렌식 분석 중이다. 자수한 용의자는 KBS 32기 공채 개그맨 A 씨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A 씨 실명을 공개했고, ‘몰카범 KBS 직원‘ 여부를 놓고 조선일보와 KBS의 논쟁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사건은 화제를 양산하고 있다. 관건은 경찰 수사 결과다. 행여 경찰 수사 과정에서 여죄가 드러날 경우 파장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건물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KBS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우선 수거한 몰카와 휴대전화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을 의뢰한 경찰은 A 씨가 몰카 영상을 개인 PC 등에 보관하고 있는지, 외부에 유포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A 씨가 이번에 처음으로 몰카를 설치했다가 적발된 것이라면 더 이상 파장이 커지지 않고 수사가 마무리되겠지만, 이미 수차례 화장실 몰카를 촬영했고 그 영상물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행여 외부에 유포까지 했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이 경우 피해자는 동료 연예인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A 씨는 5월 중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보조배터리 모양의 몰카를 구입했으며 이를 KBS 연구동 여자화장실 선반에 이틀 동안 올려뒀다. 즉, 몰카를 여자 화장실에 설치한 것은 구입하고 10여 일 뒤다. 이번에 수거된 몰카 장비로 한정할 경우 A 씨가 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도촬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구입 시기와 설치 시점이다. 몰카가 적발된 5월 29일은 KBS ‘개그콘서트(개콘)’ 출연진의 마지막 연습날이었다. 당분간 휴식기를 갖기로 한 KBS의 결정에 따라 ‘개콘’은 6월 3일 마지막 녹화가 예정돼 있었고 5월 29일 이를 위한 마지막 연습이 있었다. 몰카가 발견된 KBS 연구동에는 ‘개콘’ 연습실이 마련돼 있다.
현재 A 씨는 ‘개콘’ 외에는 다른 방송 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KBS 공채 개그맨이지만 KBS와 전속계약 기간 1년이 지나 현재는 프리랜서 신분이다.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올 수 있고 ‘개콘’이 방송을 재개해 다시 출연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6월 3일 ’개콘‘ 마지막 녹화 후 A 씨는 한동안 방송국을 떠나야 했다.
게다가 몰카 장비 구입 시점과 ‘개콘’의 잠정 휴식 발표 시점도 맞물린다. 5월 7일 ’개콘‘ 폐지설이 불거졌지만 이를 부인했던 KBS는 5월 14일 잠정적인 휴식을 공식 발표한다. 그리고 이 즈음 A 씨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보조배터리 모양의 몰카를 구입한다.
결국 A 씨는 ‘개콘’의 잠정 휴식 발표 즈음에 몰카 장비를 구입해 ‘개콘’ 마지막 연습 날에 여자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했다. 따라서 A 씨의 범죄와 ‘개콘’ 잠정 휴식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핵심은 범행 동기다. 뭔가 개인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일한 출연 프로그램의 잠정 폐지로 방송 활동이 중단되는 터라 금전적인 이유를 목적으로 몰카를 설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몰카를 찍어서 누군가에게 고가에 판매하려 했던 것이라면 자칫 연예인 화장실 몰카가 유포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연출됐을 수도 있다. 다행히 몰카가 적발돼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됐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만약 본인이 경제적으로 좀 곤란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이런 종류의 유혹에 저항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종로구 한 공공화장실에서 구청 여성안심 보안관들이 몰래카메라 등 불법촬영 장비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편 A 씨에 대한 경찰 조사가 다소 난항을 겪고 있다고 알려졌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자세한 부분을 얘기하긴 어렵지만 A 씨의 진술 내용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피의자가 자수를 한 상황이긴 하지만 혐의 내용을 두고 다툼의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자수를 한 상태로 그가 여자 화장실에 몰카를 가져다 놓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A 씨는 몰카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등을 확인하려 직접 본인의 얼굴을 비춰봤고 그 모습이 몰카에 촬영돼 있었다. 여기까지는 A 씨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입증할 증거도 경찰이 확보했다.
다만 왜 거기에 몰카를 가져다 두었는지 등에 대한 A 씨의 진술 내용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경찰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게 왜 하필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카 장비였느냐다.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카는 2018년 신세경·윤보미 해외 촬영현장 숙소에서 한 차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카는 숙소나 탈의실 등에 두고 도촬할 때 자주 사용되는 기기로, 화장실 몰카 활용 사례는 드물다. 화장실용 몰카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카는 숙소나 탈의실 등에 두고 도촬할 때 자주 사용되는 기기로 화장실 몰카로 활용되는 사례는 드물다. 사진은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몰카 기기들. 사진=임준선 기자
예를 들어 손잡이 부근에 지름 5mm도 되지 않는 작은 구멍을 뜷고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문 경첩에 나사 모양의 몰카를 숨기기도 한다. A 씨는 누군가 깜빡 잊고 보조배터리를 화장실에 두고 간 것처럼 보이도록 몰카를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때에는 자동차키나 여성용품 등의 형태를 가진 몰카가 더 자주 쓰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